[김양재 목사님의 큐티노트_타이핑]
마태복음 2장13-23절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가야할 때와 있어야 할때를 분별할 수 있도록 신실하신 하나님의 인도를 받기 원합니다. 말씀해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려면,
첫째, 즉시 순종해야 합니다. 오늘 13절에 보니, 동방 박사들이 "떠난 후에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이르되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 하시니"라고 합니다. 동방 박사들이 와서 아기 예수께 대단한 예물을 드리고 경배하고 갔지요. 그런데 갑자기 헤롯이 아기를 죽이러 쫓아오니 애굽으로 피하라는 것이에요. 우리가 언제 떠나고, 언제 머물러야 할지 참 분별하기가 어렵습니다. 정말 한 치 앞을 모르는 인생이기에 당장 눈앞에 놓인 선택지를 두고 어찌할 바를 모를 때가 많이 있지요. 그럴 때는 말씀을 통해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세상적으로 이래라 저래라 하는 말에 팔랑 귀가 되어 정작 들어야 할 말씀을 놓쳐버리면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주님의 음성을 들은 요셉이 어찌합니까? 14절에, "일어나서 밤에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애굽으로 떠나"갔다고 해요. 즉시 순종하는 요셉입니다. 그리고 요셉의 이 순종이 인류를 살렸습니다. 15절에 보니, "헤롯이 죽기까지 거기 있었으니 이는 주께서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애굽으로부터 내 아들을 불렀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라"고 합니다. 이 장에만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를 이루려 하심이라"는 이 구절이 3번이나 나와요. 그렇습니다. 어떤 상황에 있든지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삶이야말로 최고로 축복받은 삶입니다.
(적용)
- 여러분은 가야 할 때와 있어야 할 때를 날마다 말씀으로 인도함 받고 있습니까?
- 내가 즉시 순종하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려면,
둘째, 영적 자녀를 키워 내야 합니다. 16절에 보니,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 줄 알고 심히 노하여"라고 해요. 헤롯은 정작 자신이 박사들을 속여놓고는 도리어 자신이 속았다고 합니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요. 의인은 속았어도 내가 죄인이라고 회개하는데, 악인은 이처럼 자기가 속이고도 오히려 속았다고 해요. 헤롯은 아기 예수로 인해 자신의 왕위가 흔들릴까 봐 두려웠지요. 그래서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아이를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입니다." 너무나도 비극적인 일이지요. 그러나 이 죽음은 구원을 위해 쓰임받은 아름다운 죽음이었습니다. 내가 죽고, 내 자녀가 죽어도 예수님 때문에 쓰임받는 죽음이라면, 죽고 사는 일이 얼마든지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저도 남편이 하루아침에 죽었지만, 그 죽음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죽게 돌아왔습니다. 남편이 회개하고 주님을 영접한 이 간증을 통해 얼마나 많은 영혼이 구원으로 인도되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니 얼마나 아름다운 죽음입니까? 모든 것을 하나님의 입장에서 구속사적으로 보지 않기 때문에, 내 자녀가 죽은 것이 해석이 안 되고, 내 배우자가 죽은 것이 해석이 안 되는 것입니다. 죽음을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17-18절에 보니, 헤롯의 영아학살 사건이 예레미야를 통하여서 말씀하신 바가 이루어진 것이라고 하세요. 예레미야 31장 15절에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라마에서 슬퍼하며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 때문에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어져서 위로 받기를 거절하는도다", 이 예레미야 31장 15절 말씀은, 이스라엘이 우상 숭배를 하다가 바벨론 포로로 잡혀갈 때 겪은 슬픔을 라헬의 슬픔으로 비유했어요. 영아 학살 사건은 가고 오는 세대에 가장 빠지기 쉬운 자녀 우상에 대한 경고입니다. 우리는 육신의 자녀가 힘들면 힘들어서, 잘나면 잘나서 자식을 우상처럼 섬깁니다. 그런데 내 자녀를 영적 자녀로 키우지 않았기 때문에, 내 자녀가 바벨론 포로, 의 포로, 음란의 포로로 잡혀가서 죽임 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육신의 자녀가 죽어서가 아니라, 영적 자녀가 없는 것을 애곡해야 해요. 라헬에게 대단한 요셉이 있고 베냐민이 있어도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받기를 거절했다고 했어요. 왜 그렇습니까? 그의 아들들이 예수님의 계보를 잊지 못했기 때문이지요. 라헬이 아닌 레아의 아들, 그것도 며느리와 간음한 유다가 예수님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잘나고 못 나고가 아니라, 예수님의 계보를 잇는 자녀, 믿음의 대를 잇는 영적 자녀가 최고입니다.
(적용)
- 가까운 가족과 지체의 죽음으로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까?
- 내 자녀를 영적 자녀로 키우기 위해 내가 내려놓아야 할 우상은 무엇입니까?
(큐티 묵상 나눔)
믿지 않는 오빠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며, 먼저 화해의 손을 내밀 수 있기를 기도한다는 한 청년의 큐티인 묵상 간증이에요. 아버지는 어릴 적부터 제가 원하는 것은 다 들어주셨어요.하지만 오빠에게는 유독 엄격하셨지요. 이런 아버지의 편애로 오빠는 사춘기에 접어들면서부터 저를 미워했습니다. 때로는 "너만 없으면 내 인생은 행복하다"며 모진 말로 제게 상처를 주기도 했지요. 그러다 제가 대학생 때 외할아버지가 폐암 판정을 받고 요양차 저희 집에 오셨어요. 어느 날 제가 화장실에 있는데, 외할아버지가 다른 화장실을 쓰고 있는 것을 알고는 오빠가 어머니에게 화장실이 급하다고 했어요. 그러자 어머니는 오빠 눈치를 보며, 저보고 빨리 나오라고 재촉하셨지요. 밖의 상황을 모르고 있던 저는 화장실이 2개인데 빨리 나오라고 하는 것에 화가 났어요. 그리고 엄마는 언제나 오빠 편만 든다는 생각에 서운했지요. 그래서 화장실에서 나오자마자 어머니에게 화를 냈는데, 갑자기 오빠의 손바닥이 제 얼굴로 날아왔어요. 오빠에게 맞고 화를 주체할 수 없었던 저는 어떻게든 보복하고 싶은 마음에 결국 오빠를 경찰에 신고했답니다. 결국 이 일로 오빠와 저는 둘 다 큰 상처를 받았어요. 그날 이후 저희 남매는 서로 투명인간 취급을 하며 남처럼 지내고 있답니다. 그런데 오늘 14절에, 애굽으로 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즉시 순종하는 요셉을 보면서 이런 제 모습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요즘 제게도 믿음이 조금씩 자라면서 아직 하나님을 믿지 않은 오빠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생겼어요. 이제는 오빠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며 먼저 오빠에게 화해에 손을 내밀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 오빠의 구원을 위해 일주일에 3번 자기 전에 5분씩 기도하겠습니다.
- 큐티 말씀이 적용으로까지 이어지도록 매일 아침 묵상한 내용을 부모님과 나누겠습니다.
피해자가 용서하는 것이 훨씬 구원이 이루어지는 비결이라고 했잖아요. 꼭 가서 오빠를 껴안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19절과 20절에, "헤롯이 죽은 후에 주의 사자가 애굽에서 요셉에게 현몽하여 이르되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라 아기의 목숨을 찾던 자들이 죽었느니라 하시니"라며 드디어 다시 돌아갈 때를 알려주세요. 그러자 21절에서, 적용 잘하는 우리의 "요셉이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니라"고 해요. 그런데 이렇게 순종했으면 이제 꽃길만 걸어야 할 것 같은데, 22절에 보니, '그러나'가 딱, 기다리고 있네요. 아버지 헤롯이 죽으니 그의 아들이 임금이 되어 기다리고 있는 겁니다. 우리는 이런 일이 오면 왜 나에게만 자꾸 이런 일이 오는가? 탄식할 것이 아니라 내가 받아야 할 훈련이 더 남아 있구나하고 깨달아야 합니다. 왜 훈련이 더 필요합니까? 22절에, "거기로 가기를 무서워하더니"라고 하잖아요. 여전히 사람이 무섭기 때문에 훈련이 더 필요한 거예요. 저도 어려서 사랑을 못 받으니 시댁이 무섭고, 남편이 무서웠지요. 그런데 주님을 만나고 남편의 구원을 위해 생명을 내놓고 기도하게 되니, "죽으면 죽으리라. 욕을 하면 욕을 듣자." 이런 마음이 들고 더 이상 무섭지가 않으면 참 너무너무 좋겠는데, 아직도 두려운 것이 조금 남아 있습니다. 우리가 천국 가는 그날까지 아직도 이루어야 할 구원이 저에게 남아 있기 때문이에요.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예수님도 갈릴리 나사렛의 사람이라는 비천한 칭호를 받고, 공생의 기간에 정말 숨 쉴 틈 없이 훈련을 받으셨어요. 그러니 나만 겪는 고난이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이 또한 실수가 없으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임을 믿고, 하루하루 잘 살아내시길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가야할 때와 있어야 할 때를 알지 못하는 저희들이기에 날마다 주님의 인도하심이 너무나 필요한 것을 고백합니다. 요셉이 순간순간 그렇게 말씀의 인도함을 받아 순종한 것 때문에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고 우리가 구원받는 은혜를 누렸습니다. 오늘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헤롯의 영아 학살 사건이 더는 억울하고 슬픈 일이 아니라, 또 다른 생명을 낳는 구원의 일이 되다는 것을 구속사적으로 깨닫게 주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여전히 우리는 세상이 좋고 사람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더 훈련을 받아야 할 것이 있음을 또 압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 낮아짐의 본을 보이신 주님처럼, 저희도 마지막까지 훈련 잘 받고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