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아래의 묵상은 먼지인의 먼지인생 개인 큐티 묵상입니다.
[먼지인생_큐티노트]
잠언5장 1-14절(개역개정본)
1 내 아들아 내 지혜에 주의하며 내 명철에 네 귀를 기울여서
2 근신을 지키며 네 입술로 지식을 지키도록 하라
3 대저 음녀의 입술은 꿀을 떨어뜨리며 그의 입은 기름보다 미끄러우나
4 나중은 쑥 같이 쓰고 두 날 가진 칼 같이 날카로우며
5 그의 발은 사지로 내려가며 그의 걸음은 스올로 나아가나니
6 그는 생명의 평탄한 길을 찾지 못하며 자기 길이 든든하지 못하여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느니라
7 그런즉 아들들아 나에게 들으며 내 입의 말을 버리지 말고
8 네 길을 그에게서 멀리 하라 그의 집 문에도 가까이 가지 말라
9 두렵건대 네 존영이 남에게 잃어버리게 되며 네 수한이 잔인한 자에게 빼앗기게 될까 하노라
10 두렵건대 타인이 네 재물로 충족하게 되며 네 수고한 것이 외인의 집에 있게 될까 하노라
11 두렵건대 마지막에 이르러 네 몸, 네 육체가 쇠약할 때에 네가 한탄하여
12 말하기를 내가 어찌하여 훈계를 싫어하며 내 마음이 꾸지람을 가벼이 여기고
13 내 선생의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하며 나를 가르치는 이에게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였던고
14 많은 무리들이 모인 중에서 큰 악에 빠지게 되었노라 하게 될까 염려하노라
(새번역본)
1 내 아들아, 너는 내 지혜에 주의를 기울이고 내 명철에 너의 귀를 기울여서,
2 분별력을 간직하고, 네 입술로 지식을 굳게 지켜라.
3 음행하는 여자의 입술에서는 꿀이 떨어지고, 그 말은 기름보다 매끄럽지만,
4 그것이 나중에는 쑥처럼 쓰고, 두 날을 가진 칼처럼 날카롭다.
5 그 여자의 발은 죽을 곳으로 내려가고, 그 여자의 걸음은 스올로 치닫는다.
6 그 여자는 생명의 길을 지키지 못하며, 그 길이 불안정해도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
7 내 아들아, 이제 너희는 내 말을 잘 들어라. 내가 하는 말에서 벗어나지 말아라.
8 네 길에서 그 여자를 멀리 떨어져 있게 하여라. 그 여자의 집 문 가까이에도 가지 말아라.
9 그렇지 않으면, 네 영예가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고, 네 아까운 세월을 포학자들에게 빼앗길 것이다.
10 다른 사람이 네 재산으로 배를 불리고, 네가 수고한 것이 남의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우리는 예배를 마치시고 어떤 마음이 드나요? 은혜 충만한 마음인가요?
혹, 우리의 마음에 '주일 예배 잘 마쳤다'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나요?
"하나님께 예배 드렸다"로 어느정도 채워짐으로 마침표를 찍지 않으셨나요?
사실 주일 예배를 통해 은혜를 받고 힘을 얻어 채워짐을 공급받아
우리의 삶이 새롭게 시작 되는 시간이 바로 예배인 것이죠.
그런데 저는 예배가 마치고 말씀으로 다시 충만해주는 것이 참 쉽지 않았습니다.
지혜의 말씀을 주의하라, 내 명철을 기울여라
이 말씀이 가슴으로 내려오는 게 참 어려웠습니다.
은혜는 받은 것 같은데 더욱 말씀 앞에 엎드리고 싶은데 그게 잘 안되더라고요.
왜일까? 하나님 말씀의 그릇이 크지 않은 모양입니다.
습관적으로 이만하면 됐어라는 식의 믿음이 여전히 제 안에 있습니다.
솔로몬은 계속해서 아들에게 내 지혜에 주의를 하라고 말하며,
근신을 지키며 네 입술로 지식을 지키도록 하라고 합니다.
근신을 지키다라는 말은 큐티인 책에 단어 해석으로
경거망동하지 않고 말과 행동을 삼가서 신중히 행동하는 뜻입니다.
또한 입술로 지식을 지키다라는 말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나오는 말을 하는 것을 뜻합니다.
음녀의 유혹으로부터 말씀에 주의하고 귀를 기울여
자신을 지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죠.
음녀의 입술은 꿀을 떨어뜨린데요. 기름보다 미끄럽다고 해요.
얼마나 부드럽고 달콤하게 유혹하겠어요?
안 넘어갈 사람이 있겠어요? 당해낼 자가 있겠어요?
생명의 평탄한 길을 찾지도 못한데요.
그의 삶이 든든하지도 못하는데도 깨닫지 못한데요.
계속해서 죽음으로 스올로 향하는 걸음인 것이죠.
나중에 찾아올 쓴 쑥과 칼을 알지 못하니 끌어가게 된다는 것이죠.
당장의 부드럽고 달콤한 즐거움에 넘어가는 거죠.
말씀을 날마다 주의하고 분별하여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죠.
그런데 문제는 그 속은 쑥 같이 쓰고 두 날 가진 칼과 같이 날카롭고
그 발은 죽음을 향해 끌고 내려가고 결국은 스올로 치단는다고 해요.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한 시라도 말씀 앞에 근신하고 깨어 있지 않으면
부드럽고 달콤한 유혹에 넘어 갈 수 밖에 없는 것이죠.

유혹은 이렇게 다양하고 부드럽고 달콤하게 우리에게 찾아 옵니다.

그래서 주의 지혜와 명철의 말씀에 주의하며 귀를 기울어야 합니다.
겸손한 환경만 있고, 겸손한 사람이 없는 것 처럼
우리는 다 넘어질 수 밖에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주일 예배를 드렸다고, 은혜 받았다고 거기서 머물러 있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배당 문을 나가면서부터 아니, 나가려고 하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것이죠.
(질문)
- 한번 주일 예배를 드렸다고 해서, 은혜 받았다고 끝냈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나요?
- 다시금 말씀 앞에 정직하게 서야하는, 얼마든지 나는 유혹 받을 수 잇는 존재인 것이 인정이 되시나요?
(묵상)
저는 얼마든지 넘어 갈 수 있는 사람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얼마든지 유혹에 넘어 갈 수 있는 사람입니다.
교회 밖을 나가서는 말할 것도 없이 유혹에 넘갈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주의 지혜의 말씀, 명철의 말씀이 잘 들지 않는 안타까운 사람입니다.
그래서 더욱 주의 말씀 앞에 엎드리길 원합니다.
은혜 받았는데 더욱 사모하는 마음이 왜그리 생기는 게 힘든지
은혜의 연속성이 참 힘든 사람인줄 이제야 깨닫습니다.
이는 필시 제가 은혜가 넘쳐서가 아니라, 은혜를 받을 마음의 상태가 안되어 있기 때문이것 같습니다.
교만하게 말씀을 들은 것 같습니다. 분주하게 말씀을 들은 것 같습니다.
사모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받지 않으니 말씀이 내 안에 촉촉하게 적시지 못하고
팍팍하게 와닿는 제 모습, 제 상태인 것이죠.
그러니 얼마나 다음 말씀이 힘들게 와닿았겠습니까.
정말 은혜가 필요한 자임에도 은혜를 대충 받고 받아다고 하는
어리석은 자가 저임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다시금 말씀 앞에 서도록 하겠습니다.
(적용)
- 주일 주신 말씀을 다시 한번 듣도록 하겠습니다.
- 기도하며 지혜와 명철을 구하며 말씀 앞에 서겠습니다.
그러면서 우리의 길을 음녀의 길에서 멀리하고,
집 근처에도 가까이도 가지 마라고 하십니다.
아무리 말씀 앞에 있어도 유혹의 환경을 가까이하면 어떻게 될까요?|
마음을 빼앗기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인간의 당당하고 영광스러운 모습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존영을 읽어버리는 것입니다.
가장 아름다운 인간의 모습일 때
낭비하게 되고 허탈하게 보낸다고 하는 것입니다.
수한, 즉 타고난 수명이 빼앗긴데요. 재물도 탕진하게 되고요.
수고하고 애쓴 것이 외인의 집에 있게 된데요. 허무하고 허탈한 것이죠.
그러다가 결국 어떻게 되요? 네 몸이 망가진다는 거죠.
한탄밖에 나올 것이 없다고 하시는 거죠.
살전5:22
악은 어떤 모앙이라도 버리라오늘 주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거죠.
네가 가까이 하지 않아도 될 것에는 가까이 하지마.서성이지마. 근처에도 가지마. 라고 하시는 거죠.
(질문)
- 요즘에 유혹을 받고 있는 것과 환경은 무엇인가요?
- 나는 왜 그 유혹의 환경 주위를 서성이고 있을까요?
- 유혹에 넘어가면 내 안에 한탄밖에 나올 것이 없다는 것이 인정이 되시나요?
(묵상)
요즘 유혹에 서성이고 있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보면 유튜브와 SNS의 유혹에 서성입니다.
순간 지나가는 그림인데도 데미지가 있어 눈길이 갑니다.
그런데도 저는 서성입니다.
제 안에 음란이 자리 잡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근처에도, 가까이도 가지 말라고 하시는데
지식, 정보, 세상재미, 즐거움, 음란이 좋아
여전히 유튜브를 끊지 못하고 있습니다.
물론 유튜브는 순기능을 훨씬더 많이 사용하기는 합니다만,
악의 근처가 된다면 가까이 하지 않아야 하는데 힘듭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유튜브와 SNS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적용)
- 한탄밖에 나올 것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며 스마트폰을 절제하겠습니다.
- 세상의 즐거움과 직식, 정보 보다 SNS을 통해서 은혜의 통로로 사용하겠습니다.
유혹의 환경에 가까이에, 근처에 서성이는 것이 문제인데,
그보다 근본적인 우리의 마음이 참 악해서 악한 것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 청종하지 않고 귀를 기울이지 않죠.
청종하고 기울인다 한들 내 속에 올라오는 죄들을,
유혹으로 인해 흐리멍텅한 생각에 빠져 분별하지 못할 때 너무 많은 거죠.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 꾸지람의 메시지, 훈계의 메시지가 필요한데,
그 메시지를 듣기를 싫어합니다. 들을 마음이 없습니다.
좋은 말씀만, 위로의 말씀만, 소망의 말씀만 듣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그 쓴 말씀을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느껴져야 하는데,
쓴 말씀만 듣기 싫어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품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오늘 하나님은 우리리에게
너의 소중한 것들을 잘 지키려면,
훈계의 말씀, 꾸지말의 말씀을 잘 들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그렇지 않으면 많은 무리들이 모인 중에서
큰 죄악에 빠지게 된다고 하십니다.
가정 공동체가, 교회 공동체가 죄악에 빠지게 되는 것이죠.
우리의 모습, 상태가 보여지는 은혜가 있길 원합니다.
말씀의 훈계에 귀를 기울이며 꾸지말의 말씀도 잘 듣기를 원합니다.
(적용)
- 오늘 내게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훈계의 말씀과 꾸지람의 말씀은 무엇입니까?
- 내가 듣고 싶은 말씀에 귀를 더 열고 싶지는 않나요?
(묵상)
꾸지람이 들릴때, 늘 나는 억울했다.
훈계를 들을 때 늘 나는 아니라고 핑계를 댔다.
하나님의 꾸지람과 훈계에 있어서는 다를까?
다르지 않다. 늘 그런 소리는 듣고 싶지 않아 한다.
내가 원하는 것만 듣고 싶어 한다.
그러면 분별력이 있을까? 없다.
훈계의 소리도, 꾸지람의 소리도 잘 들어야 한다.
왜? 말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 떄문이다.
그분이 말씀이시면 옳은 것이고, 정답이다.
그분은 나를 살리기 위해서, 사랑해서 말씀하신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잘 들을 마음이 없는 완악한 것이 문제다.
훈계의 말씀도, 꾸지람의 말씀도 감정으로 혈기로 듣는 것이 아니라,
주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듣는 은혜를 주옵소서.
(적용)
- 훈계의 소리, 꾸지람의 소리를 들을 때 귀를 기울이며 잘 듣겠습니다.
- 감정으로, 혈기로 판단하며 듣지 않고 말씀하시는 분의 사랑을 느끼며 듣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악하고 음란한 세대 속에서 저희가 죄인이기에 유혹에 빠지기도 쉽고 넘어가기도 쉽습니다.
그 유혹이 참으로 부드럽고, 참으로 달콤하다고 하는데,
주의 지혜와 명철의 말씀을 주의하여 귀를 기울이지 못하는 저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당장 눈에 즐거움이 너무 매력적으로 보여서
쑥같이 쓰고 칼날이 되어 돌아 온다는 것이 분별이 되지 않습니다.
이러한 환경속에 계속 노출되어 저희는 살아갑니다.
어찌해야 할까요?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악한 것과 환경의 근처도 가지 않도록, 가까이 하지 않을 수 있는 은혜를 주옵소서.
나에게 주신 가장 귀한 시간과 재물,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이 듣기 싫은 훈계와 꾸지람의 말씀이라고 할지라도
주님의 사랑의 마음을 알고 잘 들을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그래서 악하고 음란한 세대 속에 사는 죄인이 생명의 길로 가는 은혜를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