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재목사님의 큐티노트] 바로가기입니다.
* 이 아래의 묵상은 먼지인의 먼지인생 개인 큐티 묵상입니다.
잠언 7장1-9절(개역개정)
1 내 아들아 내 말을 지키며 내 계명을 간직하라
2 내 계명을 지켜 살며 내 법을 네 눈동자처럼 지키라
3 이것을 네 손가락에 매며 이것을 네 마음판에 새기라
4 지혜에게 너는 내 누이라 하며 명철에게 너는 내 친족이라 하라
5 그리하면 이것이 너를 지켜서 음녀에게, 말로 호리는 이방 여인에게 빠지지 않게 하리라
6 내가 내 집 들창으로, 살창으로 내다 보다가
7 어리석은 자 중에, 젊은이 가운데에 한 지혜 없는 자를 보았노라
8 그가 거리를 지나 음녀의 골목 모퉁이로 가까이 하여 그의 집쪽으로 가는데
9 저물 때, 황혼 때, 깊은 밤 흑암 중에라
(우리말성경)
1 내 아들아, 내 말을 지키고 내 계명을 네 속에 간직하여라.
2 네가 내 계명을 지키면 잘살게 될 것이니 내 가르침을 네 눈동자처럼 지켜라.
3 그것을 네 손가락에 매고 네 마음 판에 새겨 넣어라.
4 지혜에게 “너는 내 누이”라고 말하고 통찰력을 “내 친구”라고 불러라.
5 그것이 너를 외간 여자에게서, 말로 아첨하는 이방 여자에게서 지켜 줄 것이다.
6 내 집 창문에서 창살 틈으로 내다보니
7 어리석은 사람들 가운데, 그 젊은이들 가운데서 지혜 없는 청년이 내 눈에 띄었다.
8 그가 모퉁이 근처 길로 내려가 그 여자의 집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9 때는 어스름할 무렵, 날이 저물고 밤의 어둠이 내릴 무렵이었다.
하나님,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길 원합니다.
말씀이 없으면 안되는 불쌍한 인생에 주의 말씀으로 인도해주시길 원합니다.
내 안에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죄를 보여주시고
오늘도 그 죄와 싸울 힘과 용기와 지혜를 허락해 주옵소서.
오늘도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삶을 겸손한 마음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오늘 하나님은 나에게 나의 말을 지키라고 하시며
계명을 간직하라고 하십니다.
나의 말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그 말씀을 지키라는 것이며,
나의 계명 또한 하나님의 법, 말씀을 나타냅니다.
그 말씀 자체는 소멸되거나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그 말씀을 받고 그 말씀을 간직하며 살아가는 내가
그 말씀의 가치를 잊어버리고 소홀히 간직해서 잃어버리기 때문에
지키라고 간직하라고 말씀해 주신다.
나는 어제 받은 말씀을 잘 간직하고 있나 생각해보면
잘 지키지 못하는 것 같다.
말씀을 지키라는 것은 보호다가와 또 다른 의미에서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
말씀대로 믿어야 그 말씀 대로 살아갈 수 있다.
말씀을 지킨다는 것은 그 말씀에 내가 동의한다는 것이고,
그 말씀에 가치를 둔다는 것이다.
나는 얼마나 그 말씀에 가치를 알며,
나는 얼마나 그 말씀에 동의하며 살아가는 가?
문제는 내 안에 끊임없이 올라오는 죄성이
나를 말씀대로 살아가지 못하도록 한다.
또한 세상의 현란한 것들이 말씀보다 더 가치있는 상품성을 자랑하며
얼마나 나의 시선과 마음을 흔드는 지 모른다.
그래서 끊임없이 나는 말씀을 내 안에 간직하기 위해서
말씀대로 믿고 살아가기 위해서 힘 써야 한다.
하나님은 그렇게 말씀대로 믿고 간직하고 지키려고 몸부림 치는 자들에게
잘 사는 복을 허락하신다. 그런데 그 잘사는 비결 역시 말씀이 눈동자처럼 지키기 때문이라고도 말씀하신다.
잘 산다는 것은 바로 말씀대로 사는 복이다.
솔로몬은 무엇을 보고 잘 산다고 했을까?
인간적인 물질의 복, 권세의 복, 명예의 복일까?
그렇지 않을 것 같다.
물질이 많으면 말씀 따라 살아가는 것이 더 어려워지지 않을까?
권세가 높고, 명예가 크면 그게 복일까? 그렇지 않을것 같다.
죄를 지을 가능성이 더 많은 것 같다.
잘 산다는 환경에 상관없이 기준은 말씀대로 살아가는 삶일 것이다.
그 말씀이 내 삶의 기준이 되어 두려운 환경 속에서도
말씀이 평안함이 나를 이끌어 가는 참 평안을 누리는 삶일 것이다.
내가 하는 것 또한 아니다. 말씀이 나를 이끌어 주셔서 그것이 가능하다.
물질의 단계를 뛰어 넘어, 권력과 명예의 단계를 뛰어 넘어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 속에서 그분의 뜻으로 가득채워지 삶,
사명으로 살아가는 삶, 생명을 살리는 삶이 정말 잘 사는 삶이다.
그렇게까지 가기가 어디 쉬우랴. 어렵다.
그래서 계속해서 강조한다. 네 손가락에 매라고,
하나님의 영원한 약속이라는 것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결혼 반지와도 같은 개념이다.
너의 마음 판에 새기라고 하십니다.
잊지말라고 하십니다.
결혼을 하면 결혼 반지를 낍니다.
그런데 결혼 반지를 빼는 경우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배우자가 아닌 다른 마음에 드는 이성이 나타날때 만약 결혼 반지뺀다면
내가 그 결혼약속을 갖고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를 나타낸 것과 같이
혹 우리는 하나님의 이 약속을 나의 육적인 것을 채우기 위해서
잊어버리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도 생각해 봐야 한다.
그래서 지혜의 말씀을 너는 내 누이라고 할 정도로 가족같이 여기라고 하신다.
말씀의 통창력을 또 내 친구라고 나와의 친근할 정도로 여기라고 하신다.
말씀을 떠나지 말씀과 날마다 말씀을 묵상하고 적용하며 몸부림치는
너와 생활하고 너와 친근한 것으로 삼으라는 것이다.
(질문)
- 나는 주님이 알려주신 지혜의 계명을 간직하고자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 말씀이 나의 가족과 같이 친구하게 여겨 지시나요?
(묵상)
말씀과 이제 조금씩 친해지는 시간인 것 같다.
매일 말씀을 놓치지 않으려고 큐티한 것을 그동안에는 큐티책에 끄적끄적했었는데,
때로는 눈티(눈으로 읽고 묵상만), 귀티(김양재목사님의 큐티노트)했었는데,
이제 구체적으로 완전히 솔직하지는 않지만 익명으로 가능하면 내 마음의 있는 것을
솔직하게 고백하려고 몸부림을 치고 있는 중이다.
나는 어릴적부터 내 안에 항상 고질적으로 다가온 것은 끈기에 관한 것이었는데,
언제가지 갈지 모르겠지만 잘 못했도, 중간에 끊어졌어도, 다시 일어나 큐티하길 원한다.
무엇보다 오늘 주신 말씀에서 가족과 같이 말씀이 여기질 수 있도록
큐티가 내 삶의 정말 소중한 가치가 될 수 있도록,
배우자처럼, 자녀들처럼, 부모님들처럼 여길 수 있는 수준에 이르길을 원한다.
(적용)
- 날마다 큐티를 멈추지 않겠습니다.
- 큐티를 하면서 너는 내 가족이라고 생각하는 친근함을 가질 수있도록 생각을 바꾸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간직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왜 지키는 것이 좋은가?
왜 그 말씀을 마음판에 새기라고 시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왜 친족처럼 가까이지라고 하시는가?
바로 너를 유혹하는 음녀(거룩하지 않은 가치관들)에게서
분별력 없는 너로 하여금 혼란스럽하려는 이방 여인의 호리는 말(세상의 말)에
빠지지 않게 한다고 하신다.
우리가 얼마나 말씀을 붙잡아야 사는 인생인지,
얼마나 유혹에 쉽게 넘어갈 인생인지를 말씀해 주신다.
음녀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깝게 만들지 않는다.
하나님과 우리를 멀어지게 만든다.
그러나 그 음녀의 유혹은 참으로 강력하다.
그래서 지혜의 말씀, 명철의 말씀, 훈계의 말씀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그것을 우리의 마음판에 새겨야 하는 것이고,
친족처럼 가깝게 지내야 하는 것이다.
우리도 약하고 연락한 옵사리온이지만,
악하고 음란한 세대 속에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질문)
- 말씀 묵상에 힘쓰다 보니 저절로 유혹이 끊어진 경험이 있나요?
- 그럼에도 내가 가장 쉽게 빠지는 유혹은 무엇인가?
(묵상)
말씀 묵상을 하다보면 자연스레 내 안에 불쑥불쑥 올라오는 혈기와
음란함이 힘을 잃는 것을 경험한다. 그래서 큐티한 날과 큐티하지 않은 날이 정말 다르다.
내가 붙자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가 분명해 지는 시간이다.
날마다 나는 죄를 향하여 사망을 향하여 달려가는 불나방과 같다.
그런 내가 말씀이 없이 살간다는 것은 불속으로 매일 뛰어드는 삶을 사는 것이다.
말씀은 나로 하여금, 어디를 향해 가는지를 말해 준다.
"너 혈기내고 싶지?, 너 음욕을 품고 싶지?, 너 니 뜻 펼치고 싶지?"라고 내게 묻는다.
그 물음이 내게 있지 않으면 난 괜찮은 줄알고 내 쾌락을 위해 오늘도 달려간다.
음녀의 유혹으로 끌려간다. 그래서 주님의 긍휼과 도우심이 내게 필요하다.
말씀을 붙잡을 힘 주시길, 말씀 앞에 정직하게 받을 수 있는 은혜 주시길,
말씀이 들려 어둠이 떠나가는 능력 주시길 원합니다.
(적용)
- 말씀 묵상의 힘의 느끼기 위해서 매일 큐티하겠습니다.
- 주변에 불나방처럼 악하고 음란한 세대 속으로 달려가는 사람들에게 큐티의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간직하지 않으면 우리는 어리석을 수밖에 없다.
지혜도 명철도 한계에 봉착하고 능력이 나타나질 않는다.
그래서 악하고 음란한 세상의 유혹에 끌려갈 수 밖에 없다.
하나님은 오늘 말씀을 통해 한 어리석은 자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신다.
그를 가리켜 어리석은 젊은이라고 한다.
하나님의 눈에는 그 어리석은 자가 보이는 것다.
하나님은 얼마나 안타까울까? 하나님은 얼마나 애통해하실까?
그가 모퉁이 근처 길로 내려가 음녀의 집 쪽으로 걸어간다고 하신다.
그런데 그때의 환경을 설명해 주시는데
날이 저물 때, 노을이 지는 황혼의 때, 깊은 흑암 중에라라고 하신다.
날이 저물때, 노을이 지는 황혼의 때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때 아닌가?
인간의 아름다움의 감성이 폭팔할때 젊은이는 음녀의 집을 찾아간다고 한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황혼의 때라서, 노을이 지는 때라서 갔겠는가?
일과가 마치면, 어떻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그의 마음에 중심에 있었던 것 아니겠는가?
그말은 하루종이 이 젊은이의 가치관에는 음녀의 생각이 있었던 것이다.
더나아가 흑암 중은 어떤가?
누가 알아볼까, 누가 볼까 조마조마하며 조심스럽게 행도하는 모습이 아니가?
어둠이 펼쳐지면 사람의 인적이 보이지 않으면
그곳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처럼 살아가는 모습인 것이다.
며칠 전 큐티를 통해서 말씀은 반대로 등불이요. 빛이라고 한다.
어둠을 비추는데 밝은 곳을 지향하지만,
음녀는 어둠 속으로 초청한다.
말씀의 빛을 꺼버리라고, 준비하지 말라고, 부끄럽다고 간사한 말로 우리를 호린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들은 어둠이 아니라,
숨어서 눈치보며 사는 사람이 아니라.
비록 어둠 가운데 있다고 할지라도 빛이신 주님꼐서 나아가는 사람들이며,
빛을 사모하는 사람들이다.
그 빛이신 예수, 빛의 말씀에 거해야 한다.
(질문)
- 어리석게도 지금 내가 가려고 하는 유혹받기 쉬운 장소는 어디입니까?
- 혼자 파단하지 않고 말씀으로 물으며 믿음의 지체들의 권면을 듣고 결정합니까?
(묵상)
나의 가장 쉽게 유혹 받기 쉬운 장소는 가정인것 같다.
가정은 가족들이 보고는 있지만 남들이 보지 않기 때문에
나에게 가장 어두운 장소이다.
그래서 가정에서 내가 제일 풀어지고 늘어진다.
거친 혈기의 말도 나오기도 하고,
내 뜻 펼치기 위해서 애쓰기도 하고,
하나님을 가정에서 잘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어두운 것이 가정이라는 것이 새삼 충격이다.
밖에서는 그럴싸해보이는 괜찮은 사람으로 포장은 잘하지만
나의 가장 어두운 곳이 가정인 것 같다.
(적용)
- 가정을 말씀이 빛으로 환하게 비출 수 있도록 아이들과 큐티하며 나아가겠습니다.
- 가정에도 하나님이 계시다는 생각을 잊어버리고 너무 편하게 살고 있었는데
가정에도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기 위해서 허튼짓이 아니라 영적인 생활을 이어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