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보석상자]
고난을 통해,
때마다 하나님의 곳간에서
새것과 옛것, 신구약 말씀을
마음대로 내오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 큐티인 큐티책을 통해서 먼지인의 먼지인생 개인 큐티 노트입니다.
로마서 3장1-20절(개역개정)
1 그런즉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뇨
2 범사에 많으니 첫째는 저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이니라
3 어떤 자들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어찌하리요 그 믿지 아니함이 하나님의 미쁘심을 폐하겠느뇨
4 그럴 수 없느니라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지어다
기록된 바 주께서 주의 말씀에 의롭다 함을 얻으시고 판단 받으실 때에 이기려 하심이라 함과 같으니라
5 그러나 우리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하면 무슨 말 하리요 내가 사람의 말하는 대로 말하노니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이 불의하시냐
6 결코 그렇지 아니하니라 만일 그러하면 하나님께서 어찌 세상을 심판하시리요
7 그러나 나의 거짓말로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 풍성하여 그의 영광이 되었으면 어찌 나도 죄인처럼 심판을 받으리요
8 또는 그러면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을 행하자 하지 않겠느냐
(어떤 이들이 이렇게 비방하여 우리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하니) 저희가 정죄 받는 것이 옳으니라
9 그러면 어떠하뇨 우리는 나으뇨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10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12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13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14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15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16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17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18 저희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19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
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쉬운성경)
1 <하나님의 신실하심> 그렇다면 유대인이 이방인보다 더 나은 것은 무엇입니까? 또 할례의 가치는 무엇이겠습니까?
2 모든 면에서 많이 있습니다. 첫째로 중요한 것은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다는 사실입니다.
3 그런데 만일 유대인 중에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이 사람들이 믿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무효가 되겠습니까?
4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설령 모든 사람이 거짓말쟁이라 하더라도, 하나님은 참되십니다.
성경에도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께서는 주님의 말씀으로 의로우심을 나타내시고, 심판하실 때 주님께서 이기실 것입니다.”
5 내가 사람들이 사용하는 논리의 방식대로 말해 보겠습니다.
우리가 의롭지 못한 것 때문에 하나님의 의로우심이 더욱 밝히 드러날 경우, 뭐라고 말하겠습니까?
우리에게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을 의롭지 못하다고 하겠습니까?
6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의롭지 못하시다면, 어떻게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시겠습니까?
7 사람들 중에는 “내가 거짓말을 하여, 그 때문에 하나님의 참되심이 드러난다면 오히려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데,
왜 내가 죄인 취급을 받아야 하는가?”라고 우기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8 이것은 마치 “선한 결과를 얻기 위해 악을 행하자”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들은 우리가 그렇게 가르친다고 우리에 대해 비난을 하고 다닙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정죄를 받아 마땅합니다.
9 <의인은 하나도 없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 유대인들에게 이방인들보다 나은 것이 있습니까?
전혀 없습니다. 이미 말했듯이, 유대인이나 이방인들이나 모두가 죄 아래 있습니다.
10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의인은 한 사람도 없다.
11 깨닫는 사람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사람도 없다.
12 모두가 곁길로 나가 하나같이 쓸모없게 되었다. 선한 일을 행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13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고, 혀로는 사람을 속인다.” “그들의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다.”
14 “그들의 입은 저주와 독설로 가득 찼다.”
15 “그들은 사람을 죽이려고 바쁘게 움직이며,
16 그들이 가는 곳마다 멸망과 비참함이 있다.
17 그들은 평화의 길을 알지 못한다.”
18 “그들의 눈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없다.”
19 우리가 알기로는, 율법에 기록된 내용은 그 무엇이 되었든 율법 아래 사는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변명할 말이 없게 되고, 온 세상은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됩니다.
20 그러므로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인정받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율법은 우리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유대인의 나음(1-8절)
바울은 유대인이 괜찮은 점에 대해서, 할례의 괜찮은 점에 대해서
가장 먼저 손 꼽는 것은 바로 바로 말씀을 맡은 사명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은, 먼저 말씀이 들렸다는 것이고,
말씀 앞에 섰다는 것이고, 말씀을 먹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에게는 먹은 말씀이 소화되어 살이되고 양분이 되어
열매를 맺는 말씀을 전해야 하는 사명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말씀을 맡은 자인 것이다.
그런데 말씀을 들어도 속에서 소화하지 못하고
뱉어내는 자들이 우리 주변에는 참 많이 있다.
그래서 말씀대로 살기를 거부하며 내 뜻대로 살고 싶고,
내 원대로 살고 싶은 욕망이 말씀을 거부하게 만든다.
그결과 말씀을 주시는 하나님 마져도 원망하게 한다.
잘되면 내 탓, 안되면 하나님 탓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들은, 먼저 말씀을 들은 자들은
분명 하나님이 참되심을 아는 자들이 이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자의 사명이 있다.
믿지 않는 자들을 향한 감당해야 할 몫이 있다.
그것이 꼭 전도의 말로, 복음 전파의 말로서만은 아니다.
말씀으로 살아내는 삶으로 죄를 이기는 살아냄으로
메시지를 전해야 하는 것이다.
(질문)
- 나는 먼저 말씀 맡은 자로 어떻게 사명을 감당하고 있나요?
- 거짓과 죄를 합리화하는 이들을 살리고자 하나님의 말씀에 더욱 귀를 기울이나요?
먼저 말씀 맡은 자로 사명을 잘 감당하고 있지 못한 것 같다.
아직은 나 혼자 살아내기도 참 버겁기도 한다.
하지만 이 살아내는 과정이 또 누군가를 살리는 일이라면
그렇게라도 사명 감당하고 있는 것이겠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매일 끙끙대며 구속사를 보며 살아가려고 발버둥치고 있다.
하지만 종종 내 죄도 못보고, 말씀도 못듣고, 허접할 뿐이고,
죄인일 뿐이다. 주의 은혜와 용서와 인도 아니면 안되는 인생이다.
소망에 관하여 이유를 묻는 자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을 보면 더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내 말이 나가고, 내 경험이 나가겠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내 지식과 경험이 얼마나 대단하겠는가?
오히려 세상의 사람들이 더 났지 않겠는가?
그런데 주의 말씀이 내게 오면 하나님의 지혜와 권위와 능력의 말이
나가게 되니 살리는 생명의 말들이 나오게 된다.
그래서 큐티해야 하고, 그래서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살리는 자가 아니라, 죽이는 자가 된다.
다 죄 아래 있음(9-18절)
오늘 하나님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모두다 죄 아래 있다고 말씀하신다.
이는 다 불의한 자였으며, 진노와 심판의 대상자였다는 것이다.
일평생 죄의 멍에 아래에서 죄의 종노릇할 수밖에 없는 자들이었다.
사형에 해당하는 자들이었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다.
세상에는 의인이 어디있는가? 하나도 없다고 성경은 말한다.
그럴싸해 보이는 죄인이 있을 뿐이다.
선하게 보이는 시커먼 죄인일 뿐이다.
죄가 우리를 지배하여 철저히 부패하게 하여
생각으로, 입으로, 발로 죄를 향하여 달려가게 한다.
이렇게 죄를 짓고도 죄를 짓는지고 깨닫지도 못한다.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깨닫는 자도 없다.
심지어는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도 않다.
점점 더 담대히 악을 행할 뿐인게 우리인 것이다.
(질문)
- 하나님 앞에서 내가 죄인임을 얼마나 인정합니까?
- 아직도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삶의 영역은 무엇입니까?
내가 분명 죄인이라고 믿는다. 100% 죄인이라고 고백한다.
하지만 삶에서 펼쳐지는 많은 것들은 내가 아직도 죄인인줄
깨닫지 못할때가 많다. 그래서 교만하다. 우쭐된다. 높아지고 싶다.
그래서 억울하고, 분하고, 그는 나보다 옳도다가 인정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내 뜻을 펼치고 싶어 기복산에 올라가는 모습을 본다.
팔복산을 향하여 가는 인생이 되어야 하는데,
말씀이 나를 이끌어 주시길 기도한다.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는 삶의 영역은
내가 지위와 위치에서 말하고 행동할때이다.
가정과 교회에서 내가 맡은 직분과 지위로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내 지식으로 경험으로 편리대로 내 죄를 마구 드러내며 살아간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이 힘들고 아파한다.
그래서 나도 속상하고 힘들고 그렇다.
그 시간들 속에서 내 뜻이 아니라, 내 혈기가 아니라,
내 육체가 원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을 통해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이 임하는
시간들이 펼쳐지길 원한다.
그래서 나도 살고, 주변 사람들도 살려내는 자가 되길 원한다.
율법의 목적(19-20절)
유대인들은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율법을 행위로 받아드려서 형식과 절기를 목숨같이 지켰다.
그리고는 하나님께 당당히 자신들의 의로움으로 나아갔다.
그런데 율법의 기능이 의롭게 할 수 있을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율법은 우리를 의롭게 하기위해서
죄를 깨닫게 하는 기능을 한다고 말씀하신다.
율법의 본래의 목적은 내가 하나님의 수준에 도달할 수 없는
죄인인 것을 깨닫게 하는 데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율법을 알면 알수록 깨달아지는 것은 한가지다.
내가 전적으로 부패하고 전적으로 타락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내가 가능성이 없는 존재인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구나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 이런 날 위해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시고 사망권세를 깨뜨리고 부활의 새새명을 우리리에게 허락하셨구나가
더 실감나게 느껴져야 하는 것이다.
도덕적인 '의'가 아닌, 오직 예수님의 '의' 예수 십자가 사랑과 보혈 뿐임을 알아야 한다.
(질문)
- 나는 도덕적인 행위로 생색내는 대신 십자가 사랑으로 섬겨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특히 직장에서 더욱 판단하고 정죄하는 모습이 많다.
가정에서 아내에게 더욱 그러한 것 같다.
나중에는 자식들에게 더욱 그러할 것 같다.
나 자신에게도 예외는 아니인것 같다.
정말 내가 오직 예수인것을 알길 원한다.
내가 죄인인 것을 알길 원한다.
도덕적이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예수로 거듭나는 의가
내 안에 펼쳐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예수 때문에 도덕적이 되고,
예수 때문에 매너가 있고,
예수 때문에 따듯하고,
예수 때문에 위트가 있고,
예수 때문에 수고하는 자가 되고 싶다.
내 의는 십자가 못박히길 원한다.
아무런 쓸모없는 생색 낼수도 없는 가짜 의가 떠나가길 소망한다.
오직 예수의 십자가의 의, 보혈이 나를 살리고 영원한 생명으로
이끄심을 찬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