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보석상자]
말씀이 들리는 나는
수지맞은 인생입니다.


* 큐티인 큐티책을 통해서 먼지인의 먼지인생 개인 큐티 노트입니다.
로마서 11장1-12절(개역개정)
1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
2 하나님이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나니
너희가 성경이 엘리야를 가리켜 말한 것을 알지 못하느냐 그가 이스라엘을 하나님께 고발하되
3 주여 그들이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으며 주의 제단들을 헐어 버렸고
나만 남았는데 내 목숨도 찾나이다 하니
4 그에게 하신 대답이 무엇이냐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 명을 남겨 두었다 하셨으니
5 그런즉 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6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하느니라
7 그런즉 어떠하냐 이스라엘이 구하는 그것을 얻지 못하고
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가 얻었고 그 남은 자들은 우둔하여졌느니라
8 기록된 바 하나님이 오늘까지 그들에게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다 함과 같으니라
9 또 다윗이 이르되 그들의 밥상이 올무와 덫과 거치는 것과 보응이 되게 하시옵고
10 그들의 눈은 흐려 보지 못하고 그들의 등은 항상 굽게 하옵소서 하였느니라
11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그들이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
12 그들의 넘어짐이 세상의 풍성함이 되며 그들의 실패가 이방인의 풍성함이 되거든
하물며 그들의 충만함이리요
로마서 11장1-12절(쉬운성경)
1 <이스라엘의 남은 자> 그러므로 내가 묻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버리셨습니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나 자신도 이스라엘 사람이요, 아브라함의 후손이며, 베냐민 지파 출신입니다.
2 하나님께서는 전에 택하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여러분도 성경이 엘리야에 관해 한 말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엘리야는 이스라엘을 고소하며, 하나님께 이렇게 호소하지 않았습니까?
3 “주님 그들이 주님의 예언자들을 죽이고, 주님의 제단들을 헐어 버렸습니다.
이제 저 혼자만 남아 있는데, 그들은 저마저 죽이려 하고 있습니다.”
4 그런데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무엇이라고 대답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내가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사람 칠천 명을
나를 위해 남겨 두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5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의 은혜로 택함을 받은 남은 자들이 있습니다.
6 은혜로 하신 것이라면, 그것은 행위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행위에 의한 것이라면, 은혜는 더 이상 은혜가 되지 못할 것입니다.
7 그러면 무엇입니까? 이스라엘이 간절히 바라던 것을 이스라엘은 얻지 못하고,
택함을 받은 자들이 얻었습니다. 반면, 나머지 사람들은 마음이 완악해졌습니다.
8 성경에도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혼미한 영을 주셔서
오늘날까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한다.”
9 다윗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들의 잔칫상이 그들에게 덫과 올무가 되게 하시고,
그들이 걸려 넘어져 멸망 받게 하소서.
10 그들의 눈은 흐려 보지 못하게 하시고, 그들의 등은 영원토록 굽어 있게 하소서.”
11 <이방인들의 구원> 그러므로 내가 다시 묻습니다.
이스라엘이 걸려 넘어져 완전히 망하고 말았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의 죄 때문에 구원이 이방인들에게 이르게 되었고,
이스라엘은 이방인들을 보고 시기하게 되었습니다.
12 이스라엘의 범죄가 세상에 풍성한 복을 가져다 주었고
이스라엘의 실패가 이방인들에게 풍성한 복을 가져다 주었다면,
이스라엘 전체가 하나님 앞에 돌아올 때 그 풍성함은 얼마나 더하겠습니까?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1-6절)
하나님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향해 종일 손을 벌리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자기의 백성을 버리시지 않는다.
바울은 자신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요. 베냐민 지파라고 한다.
미리 아시는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을 버지지 않으셨음을 자신을 빗대어
자신도 버리지 않으신 하나님을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구약의 대표 선지자인 엘리야를 들어 설명합니다.
엘리야가 아합 왕과 이세벨이 통치하던 때
바알선지자와 850명과의 갈렐산 전투에서 승리하였지만,
이세벨의 아성과 두려움이 엘리야에게 엄습하여
로뎀나무 아래에서 죽기를 청하면서 하소연을 하나님께 했다.
그때 하나님께 한 말이 오늘의 본문이다.
3-4절
3 주여 그들이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으며 주의 제단들을 헐어 버렸고
나만 남았는데 내 목숨도 찾나이다 하니
4 그에게 하신 대답이 무엇이냐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 명을 남겨 두었다 하셨으니
그러면서 바울이 또 이같이 말한다.
5절(쉬운성경)
5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의 은혜로 택함을 받은 남은 자들이 있다.
은혜로 남은 자가 있다고 말합니다.
선지자를 죽이려고 하는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계획은 진행되고 있고,
하나님의 뜻 펼칠 남은 7000명을 남겨 두셨다.
예수님을 죽이고 모든게 끝나버린 것 상황에서도
12제자와 120여 문도와 500여명의 형제와
사도바울과 같은 사람들을, 초대교회를, 교부들을,
칼빈과 루터와 츠빙글리와 본회처와 같은 사람들을
하나님은 남겨놓으셨다.
그렇다면 우리 상황에서도
우리 가정에도 남겨진 자가 있다는 말씀이다.
나만 홀로 신앙생활하고 나만 홀로 말씀 적용하고
나만 은혜를 입고 살아가는 것 같지만
하나님의 계획은 여전히 진행되고 있으며
여전히 나에게 남겨진 자들이 있음을 믿어야 하는 것이다.
[묵상질문]
- 우리 가정과 공동체에 하나님의 은혜로 택하신 남은 자가 있음을 믿으십니까?
- 행위가 아닌 은혜로 된 그 남은 자를 믿음의 눈으로 보고 있습니까?
우리 공동체 안에서 나만 리더고,
나만 남은자라는 착각 속에 빠져 살아갔었다.
그래서 외롭고 힘들었고 속상했다.
그런데 하나님이 나에게 '남은 자'가 있다고 말씀해 주신다.
바알에게 무릎꿇지 않은 자,
너보다 더 훌륭하게 말씀 앞에 엎드린 자들이 있다고 말씀하신다.
그 남은 자들의 삶과 모습을 나는 어떤 모습으로 바라봤나
생각해보면 그렇게 크게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그렇게만, 나와는 크게 상관없게? 개별적이게 생각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남은 자', '남겨 놓은 자', 특별히!라고 말씀하신다.
그냥 너무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던 분들인데 오늘 그 남은 자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왔다.
가족에서도 하나님은 남은 자가 있으니
그 남은 자의 불씨를 잘 가꾸라고 하시는 것 같다.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세우고 일으키라고 하신다.
귀를 기울이고, 눈을 보고, 온전히 세우라고 하신다.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지 구하길 원합니다.
하나님 남은 자를 살리길 원합니다.
지혜와 영감과 능력을 부어 주셔서 감당할 힘을 주옵소서.
혼미한 심령으로 우둔해진 자(7-10절)
남겨진 자가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하지만 남겨졌다는 본래의 것이 존재한다 것인데,
보통은 본래의 것은 전쟁 중 격력하게 전사하는 그림인데,
이스라엘의 경우는 다르다.
본래의 이스라엘이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고 받아드리지 않았다.
그리고 남겨진 자들도 우둔하져서 예수를 받으드리지 못하고 있다.
본래에 택함을 받은 자들이고, 남겨진 자들이지만,
혼미한 심령이 되어 듣지도 보지도 깨닫지도 못합니다.
눈 앞에 홍해가 갈라지고,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고,
죽은 자가 살아나도 그들은 깨닫지 못한다.
하나님께서 혼미한 심령을 주셨다는 것이다.
다윗이 말하는
밥상의 올무가 되고 덫이 된다는 말은 무엇일까?
그들이 걸려 넘어지길 바라고 무너지길 바랬습니다.
그들의 눈이 계속 어두워 보지 못하고
등은 계속 궅은 채로 펴지 못하게 해달라는 저주를 한다.
다윗의 솔직한 심정이다.
그러나 정말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인가?
다윗의 저주에 살아남을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그렇다 할지라도 그들이 돌이키고 주님께로
돌아오기리를 바라는 것이 주님의 뜻인 것이다.
[묵상질문]
- 혼미한 심령으로 우둔해진 나를 일깨우고자 내 밥상이 엎어지고 몸이 상하게 된 일이 있습니까?
치열하게 살아가는 현장 중에서도
가장 일깨워지고 밥상이 엎어지고 몸이 상하는 곳이 직장일 것이다.
책상 머리에서 벌어지는 동료들과의 관계 속에서 벌어지는 대화 중에
서로를 향한 말들이 쉽지 않다.
나 조차도 밥상을 엎는 말들을 던지고 상하는 말들을 한다.
혼미한 심령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나다.
하나님이 정신차리라고 이 말씀을 주신다.
너 혼미하다고, 너 눈이 어둡다고, 너 귀가 안들린다고,
주님 이런 저를 불쌍히 여겨주시고, 일깨워주시고,
사랑의 언어가, 생명의 언어가, 살리는 언어가,
아픈 말이 날라와도, 공격적인 말이 날라와도,
방어가 아닌, 변호가 아닌, 날을 세우는 말이 아닌,
내 영역, 내 것, 나나나나하는 것을 좀 멈추고
이 시간을 허락하신 하나님을 볼 수 있도록 영적으로 깨어 있도록 도와 주옵소서.
그 꼴이 보고 품어지게 하시고,
성품으로 참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열려지도록 도와 주옵소서.
그 영혼이 보여지고 체휼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이스라엘의 충만함(11-12절)
하나님이 그들을 혼미한 심령으로 우둔해진 자로 만드시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신 본래의 이스라엘이지만,
다윗이 원수를 저주하고 망하는 이방인 원수라고 하지만,
하나님은 결국에는 넘어지게 하지 않으시고, 실족하게 아니하셨다.
구원이 원수인 이방인에게로 나아가게 하셨고,
결국 이스라엘에게로 향하게 하신다는 것이다.
그들의 넘어짐과 같은 우둔함과 보지 못함, 듣지 못함이
이방인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풍성함이 되신다.
이방인의 풍성함이 또한 이스라엘의 충만함으로 이끄신다.
결국 주의 뜻이 이 땅 가운데 펼쳐진다는 것이다.
내 계획이, 내 생각이, 내 마음이, 내 판단이 아니라,
오직 여호와의 말씀, 살리시겠다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뜻이 주님의 뜻이
이 땅 가운데 펼쳐진다.
찬양 중에
"나 이제 주님의 새 새명 얻은 몸"이란 찬양이 있는데,
그 가사 중에 이런 고백이 있다.
"산천도 초목도 새것이 되었고"
"죄인도 원수도 친구로 변한다"
"새 생명 얻은 자 영생을 누리니"
"주님을 몸신 맘 새 하늘이로다"
조인도, 원수도 친구로 변한다...
넘어지는 이스라엘과
원수같은 이방나라가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며,
형제가 되어 친구로 변하는 은혜를 누리며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묵상질문]
- 나는 돈과 외모와 인정받는 것을 시기합니까?
- 구원의 은혜를 받고 말씀대로 믿고 살고 누리는 것을 시기합니까?
나보다 인정받는 것, 칭찬 받는 것을 보면 난 참 부럽다. 옆에서 나는한다.
나도 칭찬 받고 싶고, 높임 받고 싶다.
인정받지 못하고 칭찬해주지 않으면 속상 할때도 있다.
그래서 그 감정을 이기려고 과하게 칭찬하는 사람을
오히려 마음에도 없으면서 내가 더 칭찬하는 것 같다.
사실은 내가 더 높임을 받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감추며 그렇게 한다.
가끔은 그 꼴이 보기 싫은 때가 있다.
그리고는 그렇지 못한 내 자신을 보며 속상하고 우울해 한다.
심지어 질문처럼 말씀 앞에 은혜 가운데 펼쳐지는 삶을 누리려고
사람을 봐도 영혼으로 보지 못하니 바리새인이 되어
옳고 그름을 정죄하려고 하는 모습도 있다.
이게 나다. 어쩔줄 몰라하는 나다.
나는 대인배도 아니고 옹졸하다.
100% 죄인이 분명하다.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와 보혈의 피가 아니면 안된다.
주님의 은혜와 긍휼이 너무 필요한 존재다.
성령께서 나를 한순간도 놓지 말아주시길 원한다.
계속해서 나를 이끌어주시길 기도한다.
내 속에서 치졸함과 옹졸함으로 인도함을 받는 것이 아니라,
살리시는 영, 생명의 역사로, 하나님으로 말이암아
살아내고 살려내는 사명 감당하길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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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동방송 큐티노트(로마서11:1-12)은혜로 입은 택하심/김양재목사님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 1.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 그럴 수 없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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