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보석상자]
나의 가지치관이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는 바가 없다면
아직 내게 환난이 부족한 것입니다.


* 큐티인 큐티책을 통해서 먼지인의 먼지인생 개인 큐티 노트입니다.
로마서11:13-24(개역개정)
13 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 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
14 이는 혹 내 골육을 아무쪼록 시기하게 하여 그들 중에서 얼마를 구원하려 함이라
15 그들을 버리는 것이 세상의 화목이 되거든
그 받아들이는 것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리요
16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 가루가 거룩한즉 떡덩이도 그러하고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니라
17 또한 가지 얼마가 꺾이었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가 되었은즉
18 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랑하지 말라 자랑할지라도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니라
19 그러면 네 말이 가지들이 꺾인 것은 나로 접붙임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리니
20 옳도다 그들은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21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22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준엄하심이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머물러 있으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 바 되리라
23 그들도 믿지 아니하는 데 머무르지 아니하면 접붙임을 받으리니
이는 그들을 접붙이실 능력이 하나님께 있음이라
24 네가 원 돌감람나무에서 찍힘을 받고 본성을 거슬러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받았으니
원 가지인 이 사람들이야 얼마나 더 자기 감람나무에 접붙이심을 받으랴
로마서11:13-24(쉬운성경)
13 이제 이방인 여러분들에게 말하겠습니다.
나는 이방인의 사도로서 내가 맡은 직분에 대해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14 다만 바라는 것은, 내 동족에게 시기심을 일으켜, 그들 중에 몇 명만이라도 더 구원하고 싶은 것입니다.
15 내 동족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버림을 받게 되어 세상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다면,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받아들여지는 것은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16 처음 떼내어 드린 반죽의 일부분이 거룩하면 반죽 전체가 거룩하고,
나무 뿌리가 거룩하면 가지도 거룩한 법입니다.
17 참올리브 나무의 가지 중에서 얼마를 잘라 낸 뒤,
야생 올리브 나뭇가지인 여러분을 원가지에 접붙이면,
접붙여진 가지는 참올리브 나무로부터 올라오는 양분을 받게 됩니다.
18 그러니 여러분은 잘려 나간 가지를 향해 자랑하지 마십시오.
자랑하더라도 명심할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뿌리를 지탱하는 것이 아니라,
뿌리가 여러분을 지탱한다는 사실입니다.
19 여러분은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나를 접붙이기 위해 가지들이 잘려 나갔다”라고 말입니다.
20 이것은 백 번 지당한 말입니다.
그 가지들은 믿지 않았기 때문에 잘려 나갔고,
반대로 여러분은 믿었기 때문에 나무에 붙어 있습니다.
그러니 자만하지 말고, 오히려 두려워하십시오.
21 하나님께서 원래 나무에 붙어 있던 가지들도 아끼지 않으셨다면,
여러분도 아끼지 않으실 것입니다.
22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엄격하심을 깊이 생각하십시오.
넘어진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엄격하심을,
여러분에게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보이셨습니다.
여러분이 계속해서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머물러 있으면,
하나님께서도 인자함을 베푸실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계속 머물러 있지 않으면,
여러분도 잘리게 될 것입니다.
23 그리고 잘려 나간 가지가 다시 믿게 되면
그들도 다시 접붙임을 받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는 그들을 다시 접붙이실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24 여러분은 본래 붙어 있던 야생 올리브 나무에서 잘려,
여러분이 속한 종자와는 다른, 좋은 올리브 나무에 접붙여진 가지입니다.
그렇다면 원래 좋은 올리브 가지였던 유대인들이
원래 그들이 붙어 있던 좋은 올리브 나무에 접붙여지는 것은
얼마나 쉬운 일이겠습니까?
이방인의 사도(13-15절)
바울은 로마교회 성도들을 향해,
이방인이 대다수인 그들을 향해 말한다.
그리고 자신이 그들을 향해 나아가는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한다.
그만큼 그는 이 사역이 얼마나 귀하고 대단한 것인지 자부심이 있었던 것이다.
그는 오히려 자신의 이 모습을 보고,
많은 이방인들이 예수 믿고 돌아오는 모습을 들을 보고
복의 통로가 되는 것들을 보고
골육인 이스라엘이 몇 명이라고 구원받는 일이 일어나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그렇게라도 동족의 구원을 받기를 바랬다.
그들은 혼미한 심령이기에
눈이 어두워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기에
하나님이 약속한 메시야,
선지자들이 예언한 예수를
받아드리지 않았고 배척하고 버렸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이 예수를 죽은 가운데서 살리셨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 이스라엘을 향한 마음을
포기하지 않으셨고, 이방인을 향한 구원의 길로 여셨다.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고 영광스럽게 복음을 전하면서도
여전히 그들이 돌아도록하는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있다.
[묵상 질문]
- 내가 지금 하는 일이 아무리 중요하고 영광스러워도
내 가족의 구원을 잊지 않고 그것을 위해 부단히 애쓰고 있습니까?(14절)
이 질문 앞에 상당히 많이 부끄러움을 느낀다.
내 자녀, 내 아내를 향한 마음은 있지만,
아버지의 영혼을 위해서, 어머님의 영혼을 위해서,
가족의 영혼을 위해서는 정말 말하기가 주저해지는,
부단히 애쓰고 있지 않고 있다.
내가 하는 일이 중요하고 소중하고 사명 감당하는 일이라고 여기며
열심을 다하지만 가정에 대해서, 가족에 대해서 구원을 위해서
얼마나, 부단히, 애쓰고 수고하고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자랑하지 말라(16-21절)
사도 바울은 원 곡식 가루가 거룩하니 떡덩이도 거룩하고
뿌리가 거룩하면 줄기와 가지도 거룩하게 된다고 말한다.
그래서 거룩한 뿌리로부터 나온 참 감람나무가 있는데,
그 참 감람나무에 붙어 있던 가지 이스라엘(유대인)들이 떨어져 나와서
그 떨어진 자리에 종자도 가지 돌 감람나무인 이방인이 접붙임이 되어
참 감람나무의 진액을 공급받는 넘치는 생명력으로 살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이방인이 유대인도다 너 나아서, 더 대단해서 아니라,
오로지 그들이 하나님을, 말씀을 듣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들이 내가 접붙임이 되었다고
자랑할게 하나도 없다고 바울은 말한다.
이스라엘을 향해서 비난할 것도 없다.
내가 내세울 것이 하나도 없다.
하나님을 믿을 뿐만 아니라 교만하지 않고
경외하다. 두려워하는 마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왜냐면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기 때문이다.
곧 교만한 마음은 하나님으로부터 우리를 멀저이게 한다.
작은 교만의 누룩이 참 감람나무에 접붙임 되어 있는
우리를 꺽이게 만드는 원인이 될수 있다는 것이다.
[적용질문]
- 나는 교회에서 인정받는다고 자랑하지는 않습니까?
- 높은 마음을 품지 않고 두려워하고자 내가 보고 고백해야 할
열매 없는 돌감람나무는 무엇입니까?
요즘 스스로 큐티 좀 한다고 생각한다.
뭐라도 된것인냥, 생각하고 착가하는 경향이 다분하다.
제대로 하고나 있나?
말씀이 내면으로 들어와 내 삶을 뚫고 나오나?
정말 할말 없을텐데 왜 그럴까.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내가 교만하다.
죄인이 분명하다. 언제든 꺽일 가지가 분명하다.
접붙여주신 은혜를 망각할 가능성이 충분하다.
교만의 옹이가, 교만의 싹이 꿈틀 거린다.
다시금 주의 말씀 앞에 서야하는 인생이다.
다시 겸손하게 나아가야 하는 삶이다.
잘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날 불쌍히 여겨주시고,
내 마음의 중심에 겸손의 은혜를 주옵소서.
말씀 아니면 안되는, 뿌리로부터 나오는 진액을
날마다 공급 받아야 사는 인생인 것을 고백하게 하옵소서.
때때로 비전을 품는다. 이렇게 되었으면 하는 상상을 한다.
그리고 그 일을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하는 생각에 잠긴다.
그런데 과연 그 생각들이 하나님으부터 온 것인지 분별이나
하고 꿈꾸고 생각하는 것인지 나 스스로에게 묻고 싶다.
내가 품는 높은 꿈, 내가 이런 비전을 품고, 이 뜻을 펼치겠다가 아니라,
그날 그날 주시는 말씀을 이뤄가며 살아가고 살아내는 자가 되고 싶다.
그래서 주님이 인정하시는 충성된 접붙임바 된
"잘 붙어 있었구나", "잘했다"라고 인정 받는 종이 되길 원한다.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22-24절)
오늘 말씀의 결론과도 같다.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보라고 바울을 말한다.
인자하심은 헤세드의 영원하신 사랑이다.
죄인에게 값없이 베풀어주신 십자가 사랑이다.
준엄하심은 아포토미아라고 하는데,
단호함, 엄격함, 준엄함을 말한다.
'자르다'에서 파생된 단어이다.
부모자 자식에게 엄하고 단호하게 훈육할때 사용하는 단어이다.
잘 못한 것을 더 이상하지 못하도로 멈추도록 할때 사용한다.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은
한쪽에만 치우치지 않았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차별이 없이 모두에게나 동일하게 임한다.
여기서 '머물다'라고 하는 에피메노라는 하는 단어는
지속하라, 계속하다, 제채하다는 의미가 있다.
그래서 그렇게 머물러 있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려면 내가 누구인지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내가 어떤 존재이고, 어떻게 접붙임이 되었는지?
지속적으로 잊지 않는게 중요하다.
어떻게 알수 있나? 오직 말씀 앞에 서 있을때 가능하다.
나를 깨닫게하는 말씀으로
내 정체성과 인생의 방향과 사명에 눈을 떠야
오늘을 살아가는 목적에서 흔들리지 않고
지속적으로 인자하심을, 엄준함을 경험할 수 있다.
[묵상 질문]
-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머물러 있고자 오늘 내가 믿고 순종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22절)
여전히 말씀 앞에 서라고 하신다.
정직하고, 진실하게, 들뜨지 않고, 나를 말씀을 돌아보라고 하신다.
그리고 오늘을, 내일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물으신다.
너 왜 살고 있냐고 물으신다.
너 무엇으로 살고 있냐고 물으신다.
몇번의 장례를 통해 너도 그길을 갈 거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니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준엄하심에
잘 머물러 있으라고 말씀하신다.
오늘도 나는 말씀대로 믿고 살고 누리는 삶이 내 삶 가운데 펼쳐지길
내 혈기가 죽고, 내 생각이 죽고, 내 의가 죽고,
예수가 살고, 말씀이 살고, 사명으로 사는 자가 되길
그래서 나도 살고, 가정이 살고, 가족이 살고,
교회가 살고, 주변을 살리는 삶을 살아내는 접붙임 되는 삶이 펼쳐지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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