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타이핑]사도행전 6장1절|문제가 열쇠가 됩니다|김완규 담임목사(세종한빛교회)|주일예배 [25.02.02]
https://www.youtube.com/watch?v=Z2zy705xYj0
[행6:1]
1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짐으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니
혹시 명절에 힘들거나 갈등이 일어나진 않으셨습니까? 네, 없으셨군요. 우리 갈등을 어떻게 풀어갈지 예루살렘 교회 안에서 갈등들을 교 성도들이 어떻게 풀어가고 사도들이 풀어가는지를 저희가 2주간 살펴보게 됩니다. 1번 같이 한번 받죠.
1. 당신이 옳습니다는 고백이 열쇠가 되어 문제를 풀어갑니다.
충북 보은에 보나콤 공동체가 있습니다. 강동진 목사님이 오늘이 목회 부목사님으로 계시다가 시골 공동에서 공동체를 하고 싶은 마음에 마음이 맞는 분, 인격적으로 잘 교제가 되는 분들과 함께 내려가서 이제 사역을 시작을 하셨어요. 3년 정도가 됐는데 갈등이 부닥치는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치약을 왜 중간부터 짜냐, 이런 것들, 농약을 왜 위에서부터 뿌리면서 오느냐, 건강에 좋지 않다. 그러면 아래서부터 뿌리면 제대로 농약이 들어가지 않는다 이런 것들이 이제 부닥치게 되는 겁니다. 내 개인 프라이버시 지켜줘야 되는 거 아니냐, 그러면 왜 공동체 생활을 하려고 왔냐, 개인이 먼저냐 공동체가 먼저냐, 뭐 이런 논쟁들을 이제 하기 시작하는 거죠. 그래 우리 한번 이 문제를 가지고 좀 논의해 보자 모였어요. 가정들이 모여서 얘기를 하는데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힘든 거예요.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내 의견이 더 분명해지게 드러나는 거죠. 밤새도록 싸웠어요. 아이들이 밥 달라고 그러면 라면 끓여 먹어. 그러고 또 싸우고 지치면 자기들도 밥 먹고 와서 또 얘기 토론하는 거죠. 토론이 말이 토론이지 거의 이제 분노와 자기 주장과 니가 틀렸다를 계속 확인시켜 주려고 하는 그런 이제 언성이 높아지는 일들, 삿대질하고 욕을 하고 싸우고 3년 동안 같이 있었던 사람들인데 그날 저녁에 짐을 싸서 다 떠나기로 했어요. 여기서 끝이구나 생각했어요.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어요. 한 분이 성령께서 한 분에게 임하셔서 기도를 시키시는데 회개 기도를 시켜주시는 거예요. 지금 싸우는 것 가지고 회개 기도를 하는 것 정도가 아니고 6살 때 남의 집 망쳐놓은 것까지 다 기억나게 하시면서, 그냥 속에 있는 것을 꾸역꾸역 다 드러내서 회개케 만드시는 거예요. 그러면 그 한 분의 회계가 다른 분들에게 다 튀어갔어요. 다른 분들 속에서 나도 그렇다. 나는 이런 마음이 있다 이러면서 다 토해 놓으면서 이제 회개가 일어나는데 눈물, 콧물 흘리면서 몇 시간을 뒹굴면서 같이 울기 시작했어요. 회개하면서 서로를 용납하고 용서하고 치유가 일어나고 은사가 임하고, 이 공동체를 시작하신 분, 이 공동체의 주인이 하나님이신 것이 막 그게 이제 인정이 되어지고 깨달아지고 밤새도록 찬양하고 기도하면서 같이 중보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근데 놀라운 사실은 회개를 하고 났는데 싸우고 부딪혔던 의견들은요. 하나도 바뀐 게 없어요. 회개를 했는데 계속 내 의견이 맞아요. 더 놀라운 건 내 의견이 분명히 맞는데 회개를 했더니, 너의 의견도 맞아가 되더라고요. 나도 맞는데 너도 맞아. 야 니가 이해가 돼. 서로를 받아주기 시작했어요. 여러분 교회는 똑똑한 사람들이로 진행되는 게 아니라 용납받고 용납해 주는 관계성 속에서 교회가 진행이 되거든요. 예수님이 나를 받아주신 것처럼 나를 싫어하는 내가 싫어하는 저분도 예수님이 용납하고 참아주셨기에 나도 그분에게 이제 마음을 열고 기다리고 용납하고 기다려주고 들어줄 줄 아는 게 이제 공동체 생활이 진행되는 과정이다라고 얘기해 주시는 거죠.
예루살렘 교회 공동체가 갈등에 빠졌어요. 어떤 갈등인지 한번 같이 볼까요?
[행6:1]
1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짐으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니
여기서 갑자기 헬라파와 히브리파가 나왔어요. 이게 무슨 이게 어떤 파들인가? 다윗과 솔로몬 이후에 르호보암 왕 때, 이스라엘은 북 왕국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나눠지는 일이 벌어지게 되죠. 그리고 북이스라엘은 기원전 722년에 앗수르에게 멸망하고 남유다는 빛이 586년에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하게 됩니다. 그때 흩어지게 되고 끌려가게 되고, 자의든 타의든 또 자발적으로 이 힘든 삶을 좀 벗어나고 싶었어. 아수르, 바벨론, 알렉산더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에 이르는 계속되는 이 폭정과 억압에서 살고 싶어서 그냥 내가 살 길이 어디 있을까 생각해서 또 자발적으로 떠나고 포로로 끌려가서 떠난 그들. 그러나 자기의 신부는 유대인인 그 사람들을 우리가 어떻게 부르냐면 디아스포라라고 부른단 말이에요. 자연스럽게 흩어져 있는 이 사람들은 해외에 살고 있으니까, 그 당시에 가장 공통어였던 헬라어를 자기의 공용으로 쓰면서 모국어로 쓰면서 그러나 나의 신분은 유대인 그래서 이 사람들을 헬라파 유대인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고국을 떠나지 않고 그 땅을 지켜가면서 전통을 지켜가면서 그 자리에서 머물러 있으니, 그들이 사용하는 바로 예루살렘 근처에서 계속 있는 이 사람들 히브리어를 쓰겠지만 조금 더 정확하게는 아람어라고 볼 수 있죠. 이 아람어를 모국어로 쓰면서 견디고 있는 이 사람들을 히브리파 유대인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디아스파라로 흩어져 있던 헬라파 유대인들이 하나둘씩 돌아오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기거하기 시작하죠. 소수지만. 그래서 예루살렘은 히브리파 유대인과 헬라파 유대인들이 혼합해서 있는 그러한 공동체가 되고, 초대교회 예루살렘 교회 역시 그렇게 두 공동체가 비율은 맞지 않았지만, 두 공동체가 존재하는 교회로 이렇게 성장하게 되어 있는 걸 보게 되는 거죠. 여기에 문제가 생겼는데 구제를 하는 일에 있어서 헬라파 유대인들이 소외되기 시작하는 겁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히브리파 유대인들이 많기 때문에, 서로 계속 살았기 때문에 서로 잘 알고 지내기 때문에, 사정들을 아니까 그들을 더 잘 챙겨줄 수가 있는데, 소수였던 헬라파는 누가 누군지도 어떻게 해야 되는지도 모르니까 자연스럽게 소외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왜냐하면 구제를 담당했던 사람들이 다 히브리파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그래요. 우리 한번 이 구절 같이 봤죠.
[행6:2-3]
2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
3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열두 사도가 접대를 일삼았대요. 중심을 잡았는데 이제 이 일 구제하고 섬기는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겠다. 그러면 지금 구제와 섬기는 이 일은 계속 누가 해오고 있었던 얘기예요? 열두 사도가. 지금 헬라파 유대인들에게 정확한 분배가 가지 못하게 한 그 중심에 서 있는 사람들은 누구예요? 열두 사도인 거예요. 그 엄청난 열두 사도 죽은 자를 살려내고 기도해서 옥문이 열리게 하고 귀신이 떠나고 이적과 표적이 오게 만드는 열두 사도가 그걸 못한 거예요. 지금 왜냐하면 본인들도 히브리파 유대인이기 때문에 헬라파 유대인들을 모르니까 잘 분배의 문제입니다.
여러분 분배의 문제가 쉽지 않습니다. 노사 문제가 쉽던가요? 회사의 이득을 어떻게 나눠 갖는 게 쉽던가요? 어마어마하게 힘듭니다. 이 분배 문제 가지고 정치 형태가 나오잖아요.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에게 이런 소외감이 있고 이런 불만이 있다라는 것을 지금 얘기했을 때 가장 코어에서 들어야 될 사람들은 열두 사도인 거예요. 열두 사도는 당신들이 지금 잘못하고 있어요가 들릴 때 어떨까요? 여러분 여러분들에게 이거 잘못하신 것 같아요라고 얘기할 때 어떠세요? 기분이 어떤 마음이 드세요? 유쾌하진 않죠 힘들죠. 그래서 잘못했다는 말을 들으면 변명하고 싶어지는 마음이 올라오. 그 저 잘 모르셔서 그러시는데 여기는 이렇게 합니다. 아 참 모르시네 를 하든지 감추고 싶든지 그런 걸 얘기를 하고 그러세요. 그럼 그런 걸 왜 이렇게 공론화시키고 그러세요? 막 이렇게 덮든지 아니면 그걸 지적하신 분을 향해서 어떤 마음을 품어요? 당신이 얘기했지? 여러분 당신이 잘못됐어요를 얘기하면 어떤 마음이 드세요? 속에서 .1부 때는 앞에 계신 분이 한마디 딱 해주셔 욱하고 올라온대요. 내가 당신 이거 이거 잘못하신 것 같은데요. 이 말을 듣는 순간 근데 사도들이요. 이런 소리를 듣자마자 객관화해서 자기를 보기 시작합니다. 어떤 화 객관화 객관화 쉬울까요? 엄청 어렵습니다. 남 얘기는 엄청 분명하게 객관화시킵니다. 제가 아는 분도 그렇습니다. 그 부부 문제 생기면 이분은 너무 적나라하게 객관하게 그건 남편이 이렇게 잘못했고 아내가 여기까지 했어야 되는데 잘못했고 애들한테 이렇게 했으니까 잘못했고 명확하게 제가 그분의 지혜에 탐복합니다. 근데 놀라운 건 본인 문제는 해결을 못합니다. 여러분 남 얘기는 명확하게 합니다. 근데 내 얘기는 너무 힘듭니다. 저는 50 넘어야서 제가 마마보이인 걸 알았으니까 지금도 벗어났다고 볼 수는 없어요. 그래서 제가 결혼 주례할 때 주례하다 말고 양가 부모님께 고백을 시킵니다. 잘 떠나보내시겠냐고 그럼 거기서 막 끄덕끄덕하죠. 그리고 돌아가서 야 사돈댁이 말이다 이러고 이제 얘기 꺼낼 거 아니겠어요? 끊어지지가 않는 거예요.
어떻게 해야 객관화를 시킬 수 있을까요? 일단 내 자존심이 정리가 되어야 됩니다. 자존심이 걸리면 무조건 싫습니다. 무조건 반대하고 무조건 담을 쌓고 무조건 내가 옳고 무조건 니가 틀리고 무조건 내 말을 들어야 되고 객관화를 하고 싶은 마음 자체가 사라집니다. 자존심 어디 두고 와야 됩니다. 생색 나는 거 정리해야 됩니다. 명예 내 자리 멈춰야 됩니다. 내 위치가 그러니까 그거 멈출 수 있어야 됩니다. 쉽지 않습니다. 결코 쉽지 않습니다. 사도들이 분배 문제가 잘못됐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렇게 생각할 거란 말이에요. 그럼 분배를 잘할 수 있도록 헬라파 유대인들의 과부의 명단을 뽑고 그들의 가정 수를 뽑으며 그들의 연수 그들이 어떻게 가야 될지에 대해서 데이터베이스를 쫙 뽑으면 되지 이렇게 접근해야 되는 게 맞죠. 시스템화 시키면 되는 거잖아요. 맞습니다. 그렇게 가야 됩니다. 그런데 오늘 사도들은 접근을 좀 다르게 합니다. 이 문제를 일으킨 본인들을 객관화해서 봅니다. 우리가 여기 있으면 안 된다입니다. 우리 2절 말씀 같이 봤죠
[행6:2]
2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
우리가 지금 이렇게 구제하는 일에 우리가 손대는 거 아니야. 지금 내가 우리가 할 일이 있고 하지 않아야 될 일이 있는데 하지 않아야 될 일을 하고 있고 해야 할 일을 못하고 있어라고 자기들의 잘못을 인정해 버립니다. 사도들이 지금 자기 사도들의 옛 성품이 어때요? 여러분 예수님이 십자가 지러 가실 때 사도들의 오직 오직 하나의 목적은 뭐예요? 예수님의 우편 좌편 앉는 거예요. 높은 자리에 앉는 거예요 명예 욕이 있을까요? 머리 끝까지 있어요. 명예욕이 있고 높은 자리에 앉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으로 꽉 차 있어요. 그거는 모든 사람이 마찬가지예요. 바리새인들의 기도가 어때요? 자기를 옳게 보이기 위하여라고 기록되어 있잖아요. 모두 다 자기를 옳게 보이고 나의 이름을 높이고 싶지, 다른 거 하고 싶지 않아요. 그런데 오늘 사도들이요. 이 문제가 터졌어요. 그러는 순간 자기를 객관화해서 얘기하는 거예요. 우리가 잘못하고 있어요. 우리가 하지 않아야 될 일을 지금 하고 있어. 우리부터 정리하는 거야. 나부터 객관화시켜서 보기 시작합니다.
[질문]
- 여러분 문제 앞에서 내가 보일까요?
문제가 생기면 여러분은 남을 보세요. 나를 보세요. 그러게 애들 교육을 그렇게 시켰으니 당신이 집에 있으면서 말이야. 누구가 보여요? 너가 보여요. 학교에서는 뭐 하길래 그렇게 시켰디? 남이 보여요. 아빠인 내가 할 일이 하나도 안 보여요. 모든 문제는 너예요. 니 탓이에요. 너가 잘못한 거예요. 회사가 잘못한 거예요. 정권이 잘못한 거예요.
- 내가 객관화해서 봐야 될 문제는 뭐가 있을까요?
- 문제가 생길 때 감정에 갇혀 있으세요?
억울하고 분하고 창피하고 속상하고 피하고 싶고 감정이 나를 사로잡으면 객관화시켜 볼 수 없어요. 여러분 우리에게 객관화시켜서 내 죄가 보이는 순간 회개하며 주께 나가는 은혜가 있기를 축복하는 거예요.
예루살렘 교회의 주된 구성원인 히브리파 유대인들 이 문제를 어떻게 푸느냐 사도들은 우리가 잘못했다. 우리를 고쳐야 된다. 우리가 여기서 뛰어 여기서 벗어나야 된다. 이거 내려놔야 된다 이렇게 얘기하고 있어요. 성도들 히브리파 유대인들이 대부분인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은 어떻게 했는지 같이 읽습니다.
[행6:5-6]
5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했던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6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
7명이 전부 다 헬라파 헬라식 이름이에요. 헬라파 유대인들이 세워졌어요. 이게 공평해요? 히브리파 유대인들이 거의 대부분인데 이들은 다 빠졌어요. 그리고 소수였던 헬라파 사람들 중에서 7명이 뽑혀서 이렇게 세팅이 된 거예요. 여러분 히브리파 사람들은요. 남왕국, 북왕국이 멸망할 때 600년 동안 그 어려움 속에서 그래도 그 땅을 지키고 전통을 지키고 성전을 지키면서 끙끙대며 살아왔던 사람들이고, 자이든 타이든 헬라파는 어찌 됐든 간에 나라가 어려울 때 등지고 떠난 사람들이잖아요. 그들이 이제 몇 명이 돌아와서 앉아 있는 거기 때문에, 나라가 어려울 때 견디고 있었던 히브리파 사람들이 말하고 목소리를 높일 때 헬라파는 목소리를 높일 수가 없어요. 일단 이 사람들이 주도권을 잡고 또 끝까지 땅을 지켰던 사람들이니까. 근데 그 히브리파 사람들이요. 그럼 헬라파 사람들 다 세워요. 그러고 7명을 헬라파 사람들 다 세워버린 거예요. 자기들이 설 수 있는 자리, 자기들이 할 수 있는 너무 당연한 위치를 싹 빠져버린 이게 이게 가능할까 싶어요. 사도들은 우리 잘못이다. 우리가 하지 않아야 될 일을 하고 있다고 잘못을 인정하고 성도들은 기득권을 내려놓고 소수파 헬라파를 싹 세우는 일을 하는 게 지금 예루살렘 교회가 되는 거죠.
어떻게 이런 적용을 할 수 있고 이런 결단을 할 수 있는 건가? 사도행전을 처음부터 쭉 읽어오셨다면 이게 좀 더 이해가 되실 거라 생각이 들어요. 먼저 사도들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과 성령의 임재를 경험하죠. 성령께서 오시자 이들은 이렇게 외치기 시작합니다. 같이 읽죠.
[행2:32]
32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우리가 다 이 일에 뭐예요? 증인이로다. 그러면 하나님이 살렸다. 왜 죄가 없으시니까 죄의 값은 사망인데 죄가 없는 분이니까 부활했다. 그러면 죄가 없는 분을 왜 십자가에 달았냐? 유대인 너희들이 잘못 판단했기 때문이다. 너희들이 로마에 잘못 보고했기 때문이다. 로마의 판결이 잘못됐기 때문이다. 유대인 너희가 잘못됐고 로마의 법이 잘못됐고 이제 우리는 그렇게 부활하신 예수를 증거한다. 그러면 예수가 죄인이라고 얘기했는데 예수가 죄인이 아니라고 하면서 따르면 정치범으로 죽은 예수를 따른다라는 건 너희도 같이 죽겠다는 얘기냐 그렇다. 우리도 죽겠다. 예수를 증거하는데 이 사람들이요. 삶을 거는 거예요. 예수와 똑같은 십자가형에 처해질 수 있어요. 그런데 그거 감당하겠다라고 증거하기 시작하는 사람들입니다. 성전 미문에 앉아 있는 앉은뱅이를 일으키자 사람들이 몰려옵니다. 그러자 산헤드린 공의회에서 베드로와 사도들을 불러놓고 이렇게 경고합니다. 같이 읽죠.
[행4:17-18]
17 이것이 민간에 더 퍼지지 못하게 그들을 위협하여 이 후에는 이 이름으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게 하자 하고
18 그들을 불러 경고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니
위협했단 말이에요. 그러자 교회가 어떻게 반응했는가 같이 읽죠.
[행4:29-30]
29 주여 이제도 그들의 위협함을 굽어보시옵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시오며
30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시옵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
우리 잘 도망갑시다. 이제 말하지 맙시다. 선택해서 조용조용 전합시다. 이게 아니고 이제 그 위협을 주님 봐주십시오. 우리가 이 위협 속에서도 예수의 이름을 위해서 우리 이름이 아닌 예수 이름 때문에 모든 걸 걸고 이 길을 가겠으니 이제부터 막히지 않고 막으면 죽으면 죽지요. 그렇게 복음 전하지요라고 초대교회가 결단하기 시작한 겁니다. 다시 또 잡아넣어놓고 위협합니다. 그들의 그때 반응입니다. 또 읽죠.
[행5:40-42]
42그들이 옳게 여겨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으니
41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42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
이들은요. 채찍질 당하는 걸 야 예수님을 위해서 당할 수 있어? 우리가 우리가 그런 신분이 된 거야. 이걸 자랑스러워했다라는 거예요. 고난받는 거, 나 고난 받고 왔어. 부러워 내가 이런 예수님 때문에 이런 대접을 받았어 이러고 막 칭찬하고 부러워하기 시작했다는 거예요. 합당한 자로 여김을 너무 감격스럽게 여겼다는 거예요. 그들은요. 교회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말하는 걸 멈추지 않았다. 이게 무슨 말인지 아세요? 여기 앉아 있을 때만 집사님 기도하는 모습 너무 예쁘다. 그럼요. 이러고 이 교회에서만 이렇게 한 게 아니고 침대에 가서도 부인한테도 여보 이렇게 했다라는 거예요. 아멘 할 수도 없고 가정 교육할 때도 이렇게 했다는 거예요. 물건 팔 때도 이렇게 했다는 얘기예요. 그들이 모였을 때든지 가정으로 모였을 때든지, 동일하게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물건을 떼울 때도 물건을 팔 때도, 일을 할 때도 종업원에게 일을 시킬 때도 똑같이 했다라는 얘기야. 그들은 여기서 신앙생활이 아니고 삶이 신앙이었다라는 거예요. 그럼 예루살렘 성도들의 삶의 형태 중에 물질 문제는 어땠을까? 같이 한번 읽죠.
[행2:44-45]
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상대방이 뭐가 필요한지 생각했을 거 아니겠어요? 그렇죠. 필요를 따라 나눠서 또 읽어볼까요?
[행4:32]
32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내 거거든 이러고 얘기하지 않았대요. 여러분 생색을 냈어요. 안 냈어요? 안 냈어요. 또 한번 읽어볼까요?
[행4:34]
34 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35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
그러니까 지금 이 나눔이 진행이 잘 되다가 3천 명 5천 명 남자 만이에요. 여러분 남자만 3천 명 5천 명이면 여자, 아이 노인을 합치면 몇 명이 모여드는 거예요? 지금 눈만 뜨면 몇만 명씩 모여드니 어떻게 감당을 하겠어요? 그러니까 이 분배가 어느 정도는 되다가 너무 덩치가 커지니까, 누구에게 갔는지 안 갔는지 열두 사도가 그 몇만 명 중에서 연약한 사람 골라내서 분배가 잘 됐는지 체크하기가 너무 힘든 것 그런 상황이 됐다라는 걸 알려주시는 거죠. 여러분 이 분배 문제에 갈등이 일어나기 시작하는 겁니다. 어느 공동체나 이 문제는 있습니다. 참 정말 감사하지 않습니까? 어느 공동체나 문제는 있습니다. 훌륭한 공동체는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느냐라는 거예요. 그게 훌륭한 공동체가 되는 거죠.
탈북한 후 목회를 하고 있는 연광규 목사님의 나눔을 들었어요. 탈북해서 백두산 근처로 도망을 갔는데 수용소에서 정말 3년 동안 있으면서 모든 근육이 다 빠졌대요. 수용소에 1년 있는데 800명 수용하는 수용소에 3천 명을 집어넣는대요. 1년에 1500명씩 죽어간대요. 그곳에서 자기도 이제 완전히 이제 탈진 상태가 돼서 이제 이제 간신히 너무 이제 몸이 안 좋으니까, 그냥 내보내버린 거예요. 죽을 것 같으니까, 정신 차리고 이제 중국에 가서 밥을 좀 먹어야겠다. 왜냐하면 수용소에서 중국 가면 흰쌀밥 먹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나도 지금 가고 싶다. 그래서 무조건 압록강을 건너서 가다가 걸리는 거예요. 경비대의 추격을 받으면서 그렇게 힘이 없는 사람이요. 경비대의 추격을 받는 순간 순식간에 산을 두 개를 넘어버렸대요. 정신이 진짜 뭐 다른 에너지가 나온 거죠. 갔는데 백두산 근처에 집이 있길래 들어갔대요. 알고 봤더니 그게 선교사님이신 거예요. 일부러 거기에다가 집을 놓고 사는 거예요. 넘어올 사람들을 살려내려고. 밥을 차려주고 그 낡은 옷을 다 불에 태우고 옷을 다시 주고 신발을 모든 걸 다시 하면서 풍성하게 하는데 밥을 먹으려고 처음 처음 보는 식단이죠. 그런 풍성한 걸 처음 봤잖아요. 밥을 먹으려고 하는데 기도하자고 그러시더래요. 길게. 죽는 줄 알았대요. 너무 너무 먹고 싶은데 나를 위해 기도하고 북한 땅에 있는 자기 가족을 위해 기도해 주고, 굶주린 북한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고, 근데 그게 감동이 됐대요.
그리고 며칠 있는데 또 탈북한 아빠, 아들, 삼촌이 또 탈북해서 왔더래요. 그래서 이분들을 또 자기랑 똑같이 먹여주고 옷을 또 새로 입혀주고 이들에게 또 신발까지 새 신발을 다 신겨주고, 그리고 자기는 또 물품을 구하러 시내로 내려가고 이들은 이제 다시 또 북한으로 돌아가고 자기는 소를 좀 치는 걸 돕고 있는데, 아무래도 느낌이 이상해서 가보니까 역시나 이 세 사람이 갔다가 다시 와서 창고를 털어간 거예요. 주인이 선교사님이 왔을 때 다 다 북한 사람들인데 이 사람들은 갖고 갔고 나도 북한 사람들이 나 도와준 것 같이 느껴질까 봐 이거 잡아야겠다. 이분은 군인 출신이거든요. 보위부 출신이래요. 그래서 추적해서 갔더니 아직 해가 지기를 기다리고 있더래요. 물건을 가지고 가서 위협해서 때리고 묻고 해서 다 끌고 온 거예요. 뿌듯한 마음으로 선교사님 칭찬하겠다. 나 잘했다. 야 밥값했다 이런 마음으로 선교사님이 왔어요. 도둑이 들었다는 말에 놀랐고 그 도둑을 잡았다는 말에 또 놀라고 그 도둑이 지금 묶여 있다는 말에 또 놀라고 가보니까 이분들이 피투성이가 돼서 묶여 있는 거예요. 지금 그 추위에 덜덜덜덜 떨면서 얼마나 세게 묶었는지 피도 안 통하니까 굶주리고 그냥 그 추위 속에 그냥 그 창고에 묶어놨으니까, 그냥 여러분 며칠 전 추웠죠. 북한은요. 강원도가 제일 따뜻하대요. 강원도에서 근무하는 북한 병사들은 최고 고위급 병사들이래요. 제일 따뜻한 데서 군복무 하니까 우리는 제일 추운 데로 간 거고. 근데 여러분 백두산면 어떻게 되겠어요? 명절 구정이 어때요? 그냥 2월 지금 딱 이 시즌에 얼마나 춥겠어요. 달달달달 떨고 있는 선교사님이 들어가자마자 묶여 있는 사람들을 풀어주면서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더래요. 내가 당신들이 원하는 걸 줬어야 되는데, 내가 주고 싶은 걸 줘서 이렇게 됐군요. 당신들께 묻지 않았군요. 죄송해요. 날 용서해 줘요. 그러니 아니 도둑질하다가 잡힌 이 가족들은 또 얼마나 당황스러워요. 그러니까 저희가 용서를 빌어야죠. 서로 용서를 구하고 있는 걸 누가 보고 있는 거 있는데 지금 이 사람이 저 이거 도대체 이게 뭐 하는 건지 모르겠다. 이게 예수 믿는 거냐? 이게 예수 믿는 거면 내가 예수 믿겠다. 그 자리에서 예수님 영접합니다.
여러분 내가 왜 사람들에게 손해 보고 내 자리를 내주고 기다려줘야 되는 이유가 뭘까요? 목적이 예수님이기 때문에 그래요. 내가 살아가는 목적 내가 이 땅을 살아가는 가장 핵심 목적이 명예면 내 명예를 건드려 내 자리를 건드려 나한테 험담을 해 가만 두면 안 되죠. 내가 이 땅을 살아가는 목적이 뭐예요? 여러분 이 땅을 살아가는 목적이 뭐예요? 먹이는 돈 버는 거지 당신은 돈 벌기 위해 태어난 사람 해야죠. 돈을 벌어야죠. 근데 내 돈의 흐미가 내 돈을 갖고 가 내 돈을 이런 식으로 건드려 용납하면 안 되죠. 근데 지금 이분의 목적은 뭐예요? 예수 전하고 생명 살리는 것의 목적이 1순위가 된 거죠. 그러니까 억울해도 내 물건이 없어져도 그냥 그게 용납이 되는 거예요. 여러분 내가 억울하고 생색이 올라올 때가 그때 내 목적이 어디 있는지를 보시는 가장 좋은 시간이 될 거예요. 내 안에 예수의 생명이 있는가? 내가 이 땅을 살아가는 목적이 뭔가? 죽었던 나를 살려주신 하나님이 나를 왜 이 땅에 두셨는가? 왜 다시 살려주셨는가 돈 벌기 위해 나 이 땅에 왔나 내 이름 석자 올리려고 이 땅에 왔나 초대교인들은요. 철저하게 예수 이름이라고 얘기하잖아요. 내 이름이에요. 예수 이름이에요. 아멘? 그래서 어디 가서 목사 자랑하는 거 아니에요. 물론 제가 좀 얼굴이 돼요. 그러나 아닌 거예요. 예수 자랑하는 거예요. 어디 가서 나는 예수 만났어. 나는 예배를 통해 예수 경험하고 있어. 너무 행복해 예수 전하는 거예요. 정확하셔야 돼요. 교회는 예수 자랑하는 거예요. 아멘. 한빛 교회가 제일 가는 교회 되게 해주세요. 아니에요. 그런 기도 하지 마세요. 한빛 교회가 예수 전하는 교회 되게 해주세요. 이것 이상도 하시면 안 돼요. 제일 가는 교회의 목적이 뭐예요? 최고의 교회가 되려는 목적이 뭐예요? 도대체 여러분들은 상관없겠지만 우리 이름이에요. 목회자 이름이에요. 한빛교회는 예수 전하는 교회예요. 왜 최고가 돼야 돼?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그게 목적인 순간부터 동원하기 시작할 거예요. 그게 목적이 되는 순간부터 사람들을 이용하기 시작할 거예요. 여러분 교회는 예수 전하는 거예요. 교회에서 높아질 분은 예수님밖에 없어요. 뭐 어디에 마음을 둬야 되는지 알아야 될 거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교회 안에 갈등이 계속 있다라는 건 아직도 뭐가 있다라는 거예요? 내 이름 내 명예, 내 거, 나. 이게 아직도 남아 있기 때문에 이렇게 없는 거예요.
예루살렘 교회가 기득권을 딱 내버리고 12 사도가 자기가 잘못했다고 딱 인정해버리는 정말 자기 것 다 내려놓을 수 있는 그 힘이 어디 있어요? 예수 전하려고 목숨을 걸었으니까, 예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마. 그러는데 예수 이름 드러나게 해달라고 결단하고 갔으니까, 내 이름 아니니까, 예수 이름이니까, 내 명이 아니니까, 목숨보다 귀한 물질을 내놓을 수 있으니까, 예수님 때문에. 여러분 예루살렘 교회는 분배의 문제 때문에 힘든 거예요. 여러분 분배 문제 쉽지 않아요. 모든 문제의 끝에는 돈이 있어요. 돈 걸리면 끝나는 거예요. 우리가 힘들고 어려운 건 오직 하나예요. 돈이에요. 돈 많이 주면 다 좋아요. 내 돈이 적어진다. 이게 이제 문제가 되는 거 아니겠어요?
저는 이번 명절 때 저를 봤어요. 정말 돈이 돈이고 명예고 그랬어요. 제가 저의 실체를 또 정확하게 봤어요. 생색이고 진짜 그래요. 그러니까 손해도 안 돼. 손해 보면 내가 이렇게 했는데 이건 생색이 올라오고. 예수 생명이신 예수 전하려고 목적이 사람을 만났나 아니었어요. 아닌 게 너무 많아요. 제 안에도 그래요. 목적이 예수가 아니니까 힘든 거예요. 목적이 내 이름이니까 힘든 거예요. 목적이 내 돈이니까 힘든 거예요.
87세 할머니가 마을버스에서 이렇게 넘어지셨어요. 어깨 뼈가 골절이 됐어요. 입원을 했는데 그분이 이런 결단을 했어요. 버스 기사 이 젊은 사람한테 앞길을 막으면 안 된다. 그래서 기사한테 아무것도 안 받겠다고 적용을 했어요. 이게 생활이 되시는 분이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나서 이런 말을 했다고 예수 믿으세요? 이랬다는 거예요. 그런데 말도 안 했는데 이 기사분이 어떻게 알았는지 퇴원할 때 식비하고 병원비 100만 원을 가지고 오시고 위로금이라고 300만 원을 들고 오신 거예요. 근데 그걸 보고 있던 큰 딸이 예수 믿지 않던 큰 딸이 딱 보더니 얼마가 들어온 거예요? 지금 400만 원이 들어왔잖아요. 400만 원이 딱 보는 순간 마음속에 한 500은 받아야 되는데 아무 말도 없다가 일단 돈을 보고 세워보는 순간 400이 나아요? 500이 나아요? 백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한 500은 받아야 되는데 예수 믿는 다음 작은 딸이 와가지고 기사님께 연락했대요. 100만 원 안 받는다고 우리 언니 실수한 거냐고 죄송하다고 우리 그렇지 않다고.
여러분 우리는요. 돈 앞에 그렇게 돼요. 기득권 앞에 그렇게 돼요.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생색이 올라오고 있다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섬김과 봉사는 연기인 거예요. 쇼예요. 결국은 나 드러내려고 했던 거예요. 나를 나를 인정을 안 해 다 연기하고 있었던 거예요. 지금까지 저희가 저는 이번에 제가 연기하고 있는 저를 봤어요. 얼마든지 제 말할 수 있지만 제 아내 살리려는 목적이 없어요. 생명 살리려고 낮아지고 겸손해지고 내 거 내려놓을 각오도 안 돼 있어요. 하는 척 연기했어요.
[질문]
- 여러분 복음 때문에 손해 보고 복음 때문에 낮아져 본 적이 있으세요?
- 그때는 생색이 올라와요. 아니면 쓰임 받았다는 감사가 올라오세요
두 번째입니다. 같이 읽죠.
2. 나의 적용이 열쇠가 되어 생명을 살리는 일을 열어가십니다.
헬라파 유대인들을 일곱 집사로 딱 세우고 났을 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어요. 사도행전 6장 7장에 어떤 집사가 등장하냐면 헬라파 유대인의 집사님이셨던 스테반 집사님이 등장합니다. 여러분 스테반 집사님의 설교 엄청 길게 하잖아요. 그분이 유대인들에게 뭐라고 선포합니까? 히브리파 유대인들에게 예루살렘 성전에 하나님이 갇혀 계시지 않는다. 온 세상에 하나님이 거기 계신다. 왜 거기에만 있고 너희만 선민이고 너희만 잘났다고 얘기하는 너희들의 사고가 뭐냐라고 지금 정면으로 들이대잖아요. 이거 왜 얘기할 수 있을까요? 히브리파 유대인들이 이 얘기할 수 있을까요? 히브리파 유대인들은 오직 이 땅에서 오직 예루살렘 성전 하나만 보면서 여기에만 주님 계시다고 거기에만 푹 빠져 있는 분들인데요. 말 못 합니다. 그런데 누구는 할 수 있어요? 헬라파 유대인들은 할 수 있어요. 왜 온 천지에 살다가 돌아왔잖아요. 돌아왔기 때문에 자기 같은 사람도 예수 믿을 수 있다라는 걸 알기 때문에, 하나님 어디에도 계셔를 얘기할 수 있고 예루살렘 성전 다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거예요. 여러분은 버스 타시던지 어디를 가다가 여러분 아파트 문을 띵똥 하고 중이 와서 스님이 오셔서 이게 목탁을 두면서 이렇게 합장을 하시면 여러분 어떻게 하시겠어요? 교회 한번 교 교폐 붙여야 되는데 진짜 왜 그래? 막 이러고 막 들어가실 거예요. 그러면 불자였던 분들은요. 내가 몇 년 전까지 불자였던 분들 불자였는데 예수 믿은 분들은요. 스님한테 어떻게 할까요? 여러분 스님하고 같이 타면 어때요? 병원균이 없습니까? 밤 중에 뭐가 나타납니까? 아 수고하시죠. 얼마나 애쓰세요? 명절인데 육전 붙였는데 어떻게 한 고기라 못 드시는구나. 아 안타깝네요. 아우 스님 저희 쌀 드릴게. 그리고 이 책도 한번 읽어봐요. 성경책 막 넣어줘. 이렇게 내가 불자였으면 스님한테도 복음 전할 수 있어요. 근데 3대째 모태 신앙은 못해요. 엄마 중이 탔어. 히브리파 유대인 안 돼요. 벗어나면 죽는 줄 알아요. 예루살렘 벗어나면 헬라파 유대인들은요. 원래 살던 데가 그쪽 동네야. 나 같은 자를 불러서 복음을 듣게 하시고 예수를 믿게 했으면 우리 다 믿어야 돼. 열려 있어요. 예루살렘 교회는 흥원하고 부흥하고 하루에 3천 명 5천 명씩 늘어나지만 복음 전할 수준이 안 돼 있고 준비가 안 돼 있어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 갈등을 일으키셔서 여러분 헬라파 유대인들을 세워서 본격적으로 나가게 하시는 거예요. 헬라파 유대인들 그 부분이에요. 스데반 집사가 얘기했던 거 같이 읽죠.
[행7:48-49]
48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시나니 선지자가 말한 바
49 주께서 이르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으며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냐
솔로몬에게 했던 말을 그대로 인용해서 얘기하는 거예요. 거기에 어떻게 하나님이 있겠어? 그냥 하나님을 예배할 뿐이지 하나님을 기념할 뿐이지 거기에 어떻게 하나님이 거기 묶여 계실 수 있어? 이렇게 지금 얘기할 수 있는 거죠. 8장에는요. 헬라파 유대인인 빌립 집사가 등장해 버려요. 유대인들이 가기를 싫어해서 돌아다녔던 사마리아 가서 성령의 역사 속에 복음을 증거하고 거기가 난리가 나버려요. 그리고 성령께서 이끄셔서 광야에서 에티오피아 내시를 만나서 복음을 전하고 그가 그걸 복음을 듣고 다시 또 에티오피아로 돌아갈 수 있도록 생각 유대인들이 사마리아 이방인 갈 수 없는데 누구는 갈 수 있어요? 헬라파 유대인은 갈 수 있는 거예요.
여러분 사도행전 9장에 누가 등장해요? 헬라파 유대인의 최고봉인 바울이 등장해요. 그는 가말리엘 문하생이고 로마 시민권자예요. 그가요. 예수를 잡아 죽이려고 하다가 예수님이 나타나서 예수님을 믿고 받아들이고 예수를 증거하는 사람으로 확 바뀌어 버리는 거예요. 땅 끝까지 내가 복음 전하겠다고 달려가는 거 아니겠어요? 주님이 예루살렘 교회를 쓰고 싶은데 예루살렘 교회의 거의 대부분은 안 움직이는 분들이세요. 움직이면 죽는 줄 알아요. 이분들은 근데 헬라파 유대인들은 그 일을 감당할 수 있어요. 근데 그 일을 이쪽으로 드러나게끔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분쟁을 드러내 주신 거예요. 근데 히브리파 유대인들이 자기 방식대로 문제를 풀지 않고 자기 것 내려놓고 하나님께 의지하면서 나갔더니 그 사람들을 세우는 것으로 하나님의 인도를 받게 된 거예요. 공식적으로 이분들이 마음껏 사역할 수 있도록 길이 열려버린 거고 나중에 박해가 오는 순간부터 어떤 일이 벌어져요? 헬라파 유대인들이 본격적으로 복음 들고 땅 끝까지 가는 거 아니겠어요? 히브리파 유대인들은요. 어시스트 공을, 스트라이커는 누가 한 거예요? 지금 헬라파가 한 거예요. 여러분 이런 은혜가 우리에게 있기를 바라는 거예요. 나는 나대로의 일이 있고 히브리파는 히브리파 대로의 일이 있고 헬라파는 헬라파대로의 그 일이 사명이 있다고 지금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는 거죠.
2주간 2월 16일까지 저희가 선교 목적 헌금을 받으려고 그래요. 참 베드로는 히브리파 유대인이 왜 안 될까? 그 증거 하나 좀 보여드릴게요. 베드로가 이방인들과 식사하는 자리가 있었어요. 그런데 야고보에 속한 할례 받은 정통 유대인들이 온다고 하니까 밥 먹다가 도망가요. 그걸 사도 바울이 막 지적하거든요. 같이 읽죠.
[갈2:12-13/쉬운말]
12 그때 베드로는 야고보가 보낸 몇몇 사람들이 오기 전까지만 해도
할례받지 않은 이방인 형제들과 어울려 즐겁게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13 하지만 그들이 오자 베드로는 갑자기 태도를 바꿔 이방인 형제들과 식사를 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나갔습니다. 베드로는 할례 받은 유대인들을 의식하여 그들을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하고 싶어도 안 되는 거예요. 이게 히브리파 유대인들의 한계인 거예요. 여러분 2주간 2월 16일 주일까지 저희가 목적 헌금을 좀 받으려고 그래요. 필리핀 땅에 선교하러 가는데 한 장로님 한 집사님이 결단하고 이 지역으로 떠나세요. 때마침 필리핀 방송 선교하시는 곳과 연결이 됐어요. 여러분도 한번 들으셨겠지만 정기환 선교사님 필리핀 지역에 이제 이 선교센터가 세워지면 방송 시스템이 세워지면 그 지역 근처에 있는 모든 분들에게 목회자들에게 신학 교육을 시킬 수가 있어요. 저희가 이제 그거 하러 떠나는 거죠. 그래서 이분들 가실 때 여러분 후원도 해 주시고 옷, 인형 학용품, 여름 옷입니다. 필리핀 안 돼 얇은 거 지원해 주시면 같이 나누고 이분들은 몇 달 동안 그곳에서 이제 방송 장비 시스템이 아닌 그 사무실 자체를 만드는 일에 쓰임을 받으실 겁니다. 두 번째는 태국에서 이번 2024년 9월 10월에 치앙마이에서 유래를 알 수 없는 홍수가 났거든요. 선교사님이 고아원을 하고 계신데, 지하수를 끌어다가 식수로 사용했는데 홍수가 나면서 이게 다 오염이 됐대요. 그래서 식수를 댈 수가 없는 거예요. 식수 공사를 하려면 돈이 필요한데 그게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이라 도움을 구하고 있더라고요. 우리가 필리핀 못 가고 태국 못 가도, 히브리파 유대인들이 헬라파 유대인들을 후원해서 세워서 나가게 한 것처럼 여러분 여러분들이 좀 도와주셨으면 좋겠어요. 그 선교 헌금에 필리핀 쓰시면 거기로 갈 거고, 태국 쓰시면 이렇게 갈 거예요. 16일까지예요. 여러분 2월 한 달 동안 아동 부서 겨울 큐페와 청년부 겨울 큐페가 진행이 됩니다. 제가 어제 들은 얘기예요. 유아부 전도사님이 그 얘기하시더라고요. 오늘부터 부모님과 떨어져서 예배 드리는 날이래요. 그래서 그 얘기하시더라고 아마 복도가 통곡이 될 겁니다. 제가 1부 때 앉아 있는데 올라오기 10분 전에 한 아이가 시작하더라고요. 예배 싫어. 예배 싫어.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어린 양은 조용했다. 하여튼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나 이런 것처럼. 복도에서 버티고 예배 싫다는 거야. 내가 왜 여길 들어가 울고 불고 여러분 그 울고 불고 보채는 거를요. 한 10초에서 15초까지는 들을 수 있지만 5분에서 10분을 들으시기는 쉽지 않아요. 오죽했으면 내 새끼니까 키우지 이런 말 하겠어요? 근데 그걸 다 받아내야 돼요. 그거 다 받아내야 돼. 내가 유아부 유치부 아동부 청년부 못 가도 여러분 히브리파 유대인이 되어 주셔서 여러분 이분들 후원해 주셨으면 참 좋겠어요. 애쓴다고 그래서 히브리파 유대인이 할 일이 있고 헬라파 유대인이 할 일이 있는 거예요.
[질문]
- 내가 히브리파 유대인처럼 섬기고 세워져야 될 사람이 혹시 있으세요?
- 헬라파 유대인처럼 주신 자리에서 찾아가서 복음을 전해야 될 사람이 있나요?
- 주어진 갈등, 이 문제 앞에 나를 낮추고 잠잠히 하나님 어떤 계획이 있으신지 그 인도를 받아야 될 혹시 사건들이 좀 있으세요?
여러분 한 주간 하나님 내 목표가 나지 예수인지, 내 삶이 목표가 생명인지 내 이름과 내 물질인지 하나님 분별하게 하옵소서. 여러분 그래서 힘들고 갈등이 일어나고 아프고 좋은 겁니다. 주님이 드러내 주시고 나를 보라고 하시는 부르심입니다. 이 아픔을 피하지 마시고 주님의 인도를 받으면서 이 길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찬양하며 하나님께 나가실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