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타이핑] 베이직교회 조정민 목사님 | 새벽예배
느헤미야 5:1-19 | 문제 해결의 바른 순서 [2016.06.08]

[5:1-13]

1 그 때에 백성들이 그들의 아내와 함께 크게 부르짖어 그들의 형제인 유다 사람들을 원망하는데

2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우리와 우리 자녀가 많으니 양식을 얻어 먹고 살아야 하겠다 하고

3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우리가 밭과 포도원과 집이라도 저당 잡히고 이 흉년에 곡식을 얻자 하고

4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우리는 밭과 포도원으로 돈을 빚내서 왕에게 세금을 바쳤도다

5 우리 육체도 우리 형제의 육체와 같고 우리 자녀도 그들의 자녀와 같거늘

이제 우리 자녀를 종으로 파는도다 우리 딸 중에 벌써 종된 자가 있고

우리의 밭과 포도원이 이미 남의 것이 되었으나 우리에게는 아무런 힘이 없도다 하더라

6 내가 백성의 부르짖음과 이런 말을 듣고 크게 노하였으나

7 깊이 생각하고 귀족들과 민장들을 꾸짖어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각기 형제에게 높은 이자를 취하는도다 하고 대회를 열고 그들을 쳐서

8 그들에게 이르기를 우리는 이방인의 손에 팔린 우리 형제 유다 사람들을 우리의 힘을 다하여 도로 찾았거늘

너희는 너희 형제를 팔고자 하느냐 더구나 우리의 손에 팔리게 하겠느냐 하매 그들이 잠잠하여 말이 없기로

9 내가 또 이르기를 너희의 소행이 좋지 못하도다 우리의 대적 이방 사람의 비방을 생각하고

우리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운데 행할 것이 아니냐

10 나와 내 형제와 종자들도 역시 돈과 양식을 백성에게 꾸어 주었거니와 우리가 그 이자 받기를 그치자

11 그런즉 너희는 그들에게 오늘이라도 그들의 밭과 포도원과 감람원과 집이며 너희가 꾸어 준 돈이나 양식이나

새 포도주나 기름의 백분의 일을 돌려보내라 하였더니

12 그들이 말하기를 우리가 당신의 말씀대로 행하여 돌려보내고 그들에게서 아무것도 요구하지 아니하리이다

하기로 내가 제사장들을 불러 그들에게 그 말대로 행하겠다고 맹세하게 하고

13 내가 옷자락을 털며 이르기를 이 말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모두 하나님이 또한 이와 같이

그 집과 산업에서 털어 버리실지니 그는 곧 이렇게 털려서 빈손이 될지로다 하매 회중이 다 아멘 하고

여호와를 찬송하고 백성들이 그 말한 대로 행하였느니라

14 또한 유다 땅 총독으로 세움을 받은 때 곧 아닥사스다 왕 제이십년부터 제삼십이년까지

십이 년 동안은 나와 내 형제들이 총독의 녹을 먹지 아니하였느니라

15 나보다 먼저 있었던 총독들은 백성에게서, 양식과 포도주와 또 은 사십 세겔을 그들에게서 빼앗았고

또한 그들의 종자들도 백성을 압제하였으나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이같이 행하지 아니하고

16 도리어 이 성벽 공사에 힘을 다하며 땅을 사지 아니하였고 내 모든 종자들도 모여서 일을 하였으며

17 또 내 상에는 유다 사람들과 민장들 백오십 명이 있고 그 외에도 우리 주위에 있는 이방 족속들 중에서

우리에게 나아온 자들이 있었는데

18 매일 나를 위하여 소 한 마리와 살진 양 여섯 마리를 준비하며 닭도 많이 준비하고

열흘에 한 번씩은 각종 포도주를 갖추었나니 비록 이같이 하였을지라도

내가 총독의 녹을 요구하지 아니하였음은 이 백성의 부역이 중함이었더라

19 내 하나님이여 내가 이 백성을 위하여 행한 모든 일을 기억하사 내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

 

인생의 문제는 파도처럼 다가옵니다. 한 가지 문제가 해결되면 또다른 문제가 반드시 뒤따르게 됩니다. 문제 없기를 바라지 마십시오. 잠잠하기만을 바라지 마십시오. 늘 문제는 있게 마련이기 때문에 문제를 바라보면 문제 빠져서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점점 잃게 됩니다. 어떤 문제가 오더라도, 어떤 문제가 닥치더라도 문제 너머의 계신 하나님을 먼저 바라봐야, 그 문제 가진 문제의 본질을 이해하게 돼요. 모든 문제를 해결 될 수 있습니다. 그 문제가 닥친 까닭은, 그들이 믿음의 사람들에게 그 문제가 계속해서 일어나는 까닭은, 하나님께서 문제를 해결하실 능력이 없는 분이어서도 아니고, 문제를 방치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그 문제를 바라보는 우리의 중심을 주님께서 보고 계시기 때문이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서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지를 지켜보고 계신 것이고, 우리가 그 문제는 해결 과정을 통해서 우리의 믿음이 어떻게 다 젖어 가는가를 보기 원하시는 것이죠. 그래서 회사이건, 가정이건, 부모건, 직장 상사건. 어쩌면 때로는 일부러 문제를 그들 앞에 놓아 봅니다. 자녀들에게도 문제를 내서 그 문제를 어떻게 풀어 나가는 지를 보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어쩌면 느헤미야라는 사람을 통해서 이 주어진 문제를 푸는 과정을 보게 하셨고, 우리가 또한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 인생에 주어진 파도와 같은 문제, 이 문제가 하나 해결 된다 싶으면 또 닥쳐오는 그 문제들을 우리가 어떻게 맞닥뜨리고 해결해 갈 것인가에 대한 하나님의 소중한 격려의 말씀이기도하고 또 사랑의 권면이 기도 합니다.

 

오늘 보니까 성벽 공사는 정말 궤도에 올랐습니다. 어려움을 다 겪어 내고, 만나를 겪어 내고, 삼발랏과 도비야와 같은 그 악의를 가진 사람들의 계획을 정말 포기하도록 만들어 가면서, 그 넓은 곳에서 일어나는 동시다발적인 일들을 지혜롭게 잘 해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늘 밖에 문제보다도, 안에 문제가 더 중요해요. 밖에서 일어나는 문제보다도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제가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보니까 지금 안에서 또다시 터진 문제를 보게 됩니다. 어쩌면 곪아 있던 문제이기도 하고 이 문제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다시 한번 우리 자신을 성찰해 도록 하는 문제이기도 하죠. 1절 2절 말씀 같이 볼까요.

 

[5:1-2]

1 그 때에 백성들이 그들의 아내와 함께 크게 부르짖어 그들의 형제인 유다 사람들을 원망하는데

2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우리와 우리 자녀가 많으니 양식을 얻어 먹고 살아야 하겠다 하고

 

문제는 안에서 터졌는데 이 안에 문제는 소득 불균형의 문제고, 빈부격차의 문제고, 그리고 정상적으로 삶을 영위할 수 없는 사람들의 문제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벽을 재건하기 전에 느헤미야는 사람들의 마음이 먼저 하나 되어서 사람들이 성벽을 재건하고자 하는 의지를 먼저 재건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성벽이 올라가고 성벽이 이제 완공을 향해서 가고 있는데, 문제는 이 성벽 안에 살아야 할 사람들의 마음이 또다시 무너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밖에 오늘 담처럼 높이 싸움은 뭐합니까? 대궐 같이 높은 담을 지금은 뭐하겠습니까? 부부의 담이 높아서, 부모와 자녀 간의 담이 높아서 정말 서로 간의 교제가 불가능하고 교류가 불과 나오고 대화가 불가능 하다면, 집에 담을 아무리 높이 쌓아도 그 담이 가정을 지키게 씁니까? 가정 안에서부터 무너지고 있는 것 아닙니까? 저는 그 시간 가정들이 오늘날 이 시대도 믿지 않는 사람들의 가정과 다를 바 없이 흔들리는 것을 봅니다. 그래서 우리가 정말 먼저 밖으로 나가기 전에, 밖에 문제를 바라보기 전에, 우리가 이토록 아침마다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교회로 들어와 보고 하는 까닭은 우리가 세상으로 나가기 앞서서 이 문제를 다져 놓고 나가는 것이죠. 왜 우리가 말씀부터 보기로 이렇게 교회가 온 마음을 쏟고 있습니까? 우선 그 말씀으로 우리가 다져지지 않으면, 우리가 먼저 기도로 다져지지 않으면, 밖으로 나갈수록 원심력이 커질수록, 구심력이 강하지 못하면, 그 원심력 때문에 모든 것이 다 해체되는 것을 보는 것이죠. 그래서 밖의 일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안에 그 원심력을 버텨주는 구심력이 분명히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보니까 이 구심력의 구심점이 되는 그 백성들의 하나됨을 깨뜨리는 가장 큰 문제는 빈부의 격차라고 하는 것이죠. 어쩌면 바벨론 땅에서 돌아올 때 다 별로 뭐 가지고 온 게 큰 차이가 없었을지도 몰라요. 뭐 남의 나라에서 싸오면 얼마나 쌓았고 가져오면 얼마나 가져왔겠씁니까? 그러나 문제는 돌아온 사람들 간의 금방 또 소득격차가 벌어지는 것이죠. 사회가 격동기 있다는 것, 사회가 불안한 시기에 있을 때는 늘 눈치 빠른 자, 요령이 빠른 자, 그리고 도내 재주가 있는 자들은 단숨에 재물들을 거머쥐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정말 나라가 망할 수밖에 없었던 그 이유가 다시 돌아온 백성들이 해서 고스란히 재현되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이죠. 그래서 사회는 악순환을 거듭하는 것입니다.

 

공산주의는 70년 만에 허물어졌지만 그러나 공산주의보다 더 문제가 있는 그런 이념적인 발호를 보지 않습니까? 우리가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인류가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흔히 정말 아담 스미스를 자유 경제론자로 분류하고, 그렇게 경제 원조들을 자유경제, 시장경제, 옹호자로 보지만은 그 사람들 또한 다 이 문제 때문에 경제적 관심을 가졌던 사람이고 칼 마르크스 또한 이 자본론을 오늘 쓸 당시에, 이 사회가 어떻게 하면은 이 빈부의 격차 자본이 자본을 더 많이 가져가고, 자본의 리턴이, 자본의 수익성이 노동을 늘 상회하는 이 경제적 구조를 어떻게 타파할 것인가? 그 문제를 가지고 고민했던 데 따른 것 아니겠습니까? 그 사람이 무슨 뭐 이런 무슨 전체주의적 독재적 국가를 만들려고 한 것도 아니고, 사실은 그런 고민을 처절하게 있고, 그 자신이 일생동안 그런 고민의 자기 자신을 바쳤던 사람이죠. 그 시대적 고민을 놓치면 우리는 동일한 고민을 또 이 시대 하게 될 것입니다, 저는 이 느헤미야가 이 문제에 맞닥뜨려서 흉년이 또 닥치고 돌아온 사람들의 빈부격차는 그 전보다도 더 심각하게 벌어지는 이 현실적인 문제를 도대체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오늘 느헤미야가 해결하는 그 방식을 통해서 사실 시대를 초월한 문제 해결에 방식을 보게 되는 것이죠. 한번 3절 4절 다시 읽을까요,

 

[5:3-4]

3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우리가 밭과 포도원과 집이라도 저당 잡히고 이 흉년에 곡식을 얻자 하고

4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우리는 밭과 포도원으로 돈을 빚내서 왕에게 세금을 바쳤도다

 

여러분 빚을 내서 세금을 바쳤다는 거에요. 페르시아와 왕에게 그 나라에서부터 오는 세금, 그 세금을 바치기 위해서, 내기 위해서, 빚을 내서 세금을 냈다고 말합니다. 흉년에 먹고 살기 위해서, 모든 포도원과 집이라도 다 밭과 이걸 저당 잡히고 먹고 사는 그런 어려운 일들을 겪고 있는 것이죠. 그들은 말합니다.

 

[5:5]

5 우리 육체도 우리 형제의 육체와 같고 우리 자녀도 그들의 자녀와 같거늘

이제 우리 자녀를 종으로 파는도다 우리 딸 중에 벌써 종된 자가 있고

우리의 밭과 포도원이 이미 남의 것이 되었으나 우리에게는 아무런 힘이 없도다 하더라

 

이런 현실 가운데서 느헤미야가 이 현실에 대한 것을 듣자마자 그는 크게 분노하게 됩니다. 그래서 성은 올라가고 있고 예루살렘 성벽은 번듯하게 세워져 가고 있지만, 사실 그 안에 살아야할 백성들의 삶은 그야말로 처참한 지경이 되어버린 것이죠. 아니 지켜줄 것이 없는데 성곽을 싸움은 뭐겠습니까? 가진 것이 없는데 그 성을 쌓은들, 그 성이 무슨 역할을 하겠습니까? 그래서 문제의 본질을 다시 꿰뚫어보는 느헤미야는 다시 이렇게 생각합니다. 깊이 생각합니다. 7절 말씀입니다.

 

[5:7]

7 깊이 생각하고 귀족들과 민장들을 꾸짖어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각기 형제에게 높은 이자를 취하는도다 하고 대회를 열고 그들을 쳐서

 

문제가 이 보니까 이 저당을 잡히고 있고 이런 어려운 상황들을 겪고 있는데, 가진자들이 부어 주면서 높은 이자를 받고 있다는 거예요. 형제들에게, 바로 이웃에게 어떻게 그 이웃들의 그런 걸 받고 있냐는 것이죠. 그렇죠. 뭐 가진 자들의 입장은 늘 고리대금 아닙니까? 어떻게든 더 많은 것들을 가져오려고 하는 것이죠. 그래서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어제 오늘의 현상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서 지금 느헤미야가 내놓은 해결책입니다. 8절 말씀입니다. 시작.

 

[5:8]

8 그들에게 이르기를 우리는 이방인의 손에 팔린 우리 형제 유다 사람들을 우리의 힘을 다하여 도로 찾았거늘

너희는 너희 형제를 팔고자 하느냐 더구나 우리의 손에 팔리게 하겠느냐 하매 그들이 잠잠하여 말이 없기로

 

아니, 힘껏 포로로 잡혀간 형제들을 구해 왔더니, 그 형제들이 다시 이스라엘 땅, 자국 땅에 돌아와서, 고국에 돌아와서 또 다시 노예가 되는 이런 일들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느냐? 노예로 살던 사람 건저놨더니 어떻게 또 노 예로 들어가느냐? 이전 형편보다 더 나빠지게 만든다는 게 말이나 되냐? 그런 얘기죠. 이게 당시의 현실이었다 는 것입니다. 고국으로 돌아올 때, 그 먼길을 올 때, 얼마나 큰 희망과 그런 기쁨으로 돌아왔겠습니까? 그래서 정작 돌아온 현실은 다시 어려움을 겪게 되고, 흉년이 겹치면서 가진 걸 다 팔아야 되고, 저당 잡혀야 가까스로 양식을 구할 수 있고, 그리고 돈을 좀 빌리면 높은 이자의 시달리게 되고, 세금을 내야하는데, 그 세금이 또 부가 될 때 그 세금을 내기 위해 빚어내는 이런 악순환에 꼬리에 접어든 것이죠. 그래서 오늘 느헤미야는 이럴 수는 없다고 말합니다. 9절 말씀입니다. 시작.

 

[5:9]

9 내가 또 이르기를 너희의 소행이 좋지 못하도다 우리의 대적 이방 사람의 비방을 생각하고

우리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운데 행할 것이 아니냐

 

10절 말씀 중요한 자기 고백입니다. 자기부터 회개를 시작합니다.

 

[5:10]

10 나와 내 형제와 종자들도 역시 돈과 양식을 백성에게 꾸어 주었거니와 우리가 그 이자 받기를 그치자

 

여러분 여기 보니까, 자기도 자기 형제들도, 내 같이 일하는 동역자들도, 집에 있는 종자들까지도, 돈과 양식을 백성의 꿔줬거니와 우리가 그 이자 받기를 그치자. 꿔 주고 높은 이자는 아닐지 몰라도 꿔 주고 이자를 받았다는 것이죠. 이거 자체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준으로는 죄에 해당하는, 해서 안될 일입니다. 왜냐하면은 신명기 23장을 보면은 신명기 23장을 제가 읽어 드릴께요. 하나님께서 그것을 금하셨습니다. 신명기 23장 19절, 20절 말씀. 제가 읽어 드릴게요.

 

[23:19-20]

19 네가 형제에게 꾸어주거든 이자를 받지 말지니 곧 돈의 이자, 식물의 이자, 이자를 낼 만한 모든 것의 이자를

받지 말 것이라

20 타국인에게 네가 꾸어주면 이자를 받아도 되거니와 네 형제에게 꾸어주거든 이자를 받지 말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들어가서 차지할 땅에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복을 내리시리라

 

형제들 간에는 이자를 받지 말라는 거예요. 내 백성들 간에, 내 형제들 간에,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는 아버지 야곱으로부터 나온 12형제들 아닙니까? 집안 형제들끼리 꿔 주고, 뭐 되돌려 받지 않아도 될 것인데, 이자까지 받아야 되겠습니까? 그러나 외국인들에게, 이방인들에게 꿔줄 때는 이자를 받아도 좋다고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형제 범위가 어디까지냐 하는 것이죠. 어쩌면 그들은 그 형제 범위를 친족으로만 한정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래서 심지어 느헤미야 자신도, 자기 느헤미야의 형제들도 자기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도 꿔 주고, 이자를 받았다는 것을 솔직히 고백하는 것이죠. 나도 사실 받았다. 그러나 이제부터 지금부터 받지 말자. 받지 말자. 그리고 다시 얘기합니다. 11절 말씀입니다. 시작.

 

[5:11]

11 그런즉 너희는 그들에게 오늘이라도 그들의 밭과 포도원과 감람원과 집이며 너희가 꾸어 준 돈이나 양식이나

새 포도주나 기름의 백분의 일을 돌려보내라 하였더니

 

오늘이라도, 지금이라도, 지금부터라도 이자를 받지 말자. 돌려줄 수 있다면 돌려주자. 어떻게 보면 정말 극적인 조치를 취하는 것이죠. 이런 변화는 슬금슬금도 일어나긴 하지만, 정말 은혜받은 사람들의 변화는 극적인 변화의 요. 나 지금 이순간부터 안하겠다는 것입니다. 그걸 은혜받은 사람은 지금부터 안 해요. 구원받은 죄는 지금부터 죄 안 지으려고 결단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한 가지 죄만 해결하고, 내일은 한 가지 죄만 해결하고, 그래서 평생 죄 문제를 다 끌어안고, 해결도 못하고 가는 게 아니라, 죄란 뿌리가 빠지면 그전 것들이 한꺼번에 해결되는 것이죠, 중독도 그게 뿌리가 있는 것이고, 거짓말도 거기에 뿌리가 있는 것이고, 남을 속이는 것도, 폭력적인 것도, 그 뿌리가 있는 것이고, 음란도 거기 뿌리가 있는 것이고, 모든 것들이 그 뿌리에 있기 때문에, 구원에 의해 그 뿌리가 빠지는 경험을 하게 되면, 여러분 은혜가 오면 즉각 그만두게 되는 것이죠. 깨달은 즉시 실행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게 잘못됐다 하면 즉각 돌이키는 것이죠. 그게 회개 아닙니까? 어쩌면 지금까지는 몰랐어요. 느헤미야 자신도 몰랐던 것이죠, 왜 백성들이 하나되지 못하는지, 왜 성곽은 지어져 가고 있는데 불평불만을 사라지지 않는지, 보니까 문제 뿌리는 우리 안에 있는 불균형이고, 그런 소득격차고, 빈부의 격차가 심각해져서 먹고 살 수 없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는데 성곽을 지어서 뭘하겠습니까? 그 안에서부터 성곽을 무너뜨리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이죠. 그랬더니 12절, 13절 말씀입니다. 시작.

 

[5:12-13]

12 그들이 말하기를 우리가 당신의 말씀대로 행하여 돌려보내고 그들에게서 아무것도 요구하지 아니하리이다

하기로 내가 제사장들을 불러 그들에게 그 말대로 행하겠다고 맹세하게 하고

13 내가 옷자락을 털며 이르기를 이 말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모두 하나님이 또한 이와 같이

그 집과 산업에서 털어 버리실지니 그는 곧 이렇게 털려서 빈손이 될지로다 하매 회중이 다 아멘 하고

여호와를 찬송하고 백성들이 그 말한 대로 행하였느니라

 

오늘 문제 해결의 첫 단추는 누가 꿰었습니까? 느헤미야입니다. 첫 단추를 꿰는 방식을 어떤 것입니까? 느헤미야 의 솔선수범입니다. 나 자신부터 이자를 받지 않겠다. 돌려줄 것 있으면 돌려주겠다. 그렇게 했더니, 모든 사람들이 거기에 ‘아멘’ 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래 놓고 나서도 샅샅이 파보면 또 약속대로 이해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겠죠. 그러나 오늘 우리 지도자의 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후에 말은 이후에 기록된 느헤미야의 삶을 보면 그런 12년 동안 총독직에 있는 동안 월급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 전임 총독 뜰은 정말 수탈에 가까운 일들을 자행했지만 그런 본인이 총독의 월급을 받지 않았다고 고백합니다. 물론 뭐 재산 있었을 수도 있고 또 페르시아 왕 으로부터 받는 것도 있었겠지만, 어쨌든 그는 그 일을 감당하기 위해서 백성들 앞에서 나름대로 솔선수범했던 사람입니다. 그 정도 맨 할 만큼 했습니다. 남 안 하는 일을 했으니 할 만큼 한 것이죠. 그러나 오늘 느헤미야가 다시 국민적인 아픔과 고통 앞에서 보낸 자신이 자기의 것을 희생하고 내려놓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크리스챤이란 누구입니까? 느헤미야란 누굽니까? 믿음의 사람이란 어떤 사람입니까? 좀 특히 부담스러우시겠지만 무한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받은 은혜가 무한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 세상 속에서 무한한 책임을 지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만하면 됐습니다. 이만하면 나는 할 만큼 했습니다. 이만하면 나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렇게 말하지 마십시오. 주님은 우리가 하는 것보다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힘과 능으로 는 감당할 수 없겠지만은 주님이 저와 여러분 안에 계시면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나보다도 더 큰 일을 행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믿으십니까? 주님 때보다 우리의 지경은 더 넓어졌습니다. 주님 때보다 우리의 문제는 더 복잡해 졌습니다. 주님 때보다 우리의 문제는 더 풀기가 어려워졌습니다. 그래서 주님에게 지금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했던 일보다 너희들이 더 큰 일을 담당해 줘야되겠다. 내가 다녔던 때보다는 더 많이 다녀 줘야되겠다. 내가 폈던 선보다 너희들 손을 더 멀리 펴줘야되겠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죠, 주님 됐습니다. 교회나 잘 지키겠습니다. 그렇게 주님이 우리에게 감동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어쩌면 세상을 잊어 버렸기 때문에 교회에서 이렇게 빠져 있는지도 몰라요. 세상에 문제에 대해서 우리가 눈을 돌리지 않았기 때문에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문제에 어쩌면 침전되어 있는지도 모릅니다.

 

제가 어제 아침 마당에 나가서 보신 분들 있고, 못 보신 분들이 많겠지만, 평소에 여러분들에게 나오는 말씀을 정말 짧은 시간이지만 처음에 조금 시간을 더 줄 것 같더니, 앞에 잘라 먹고 뭐 이렇게 해가지고 한 20여분 밖엔 말을 못했지만, 그래도 전해야 할 복음은 다 전했습니다. 그래도 KBS 공중파에서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는 게 하나님께서 마련해 주지 않았다면 어떻게 가능한 일이겠습니까? 동성애는 죄라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동성애는 죄입니다. 그러나 그 죄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들은 크리스챤 밖에 없습니다. 정말 진정한 사랑만이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그 문제 우리가 정직하게 부딪칠 때, 또한 우리가 동성애자보다 더 더한 죄인이라는 것 우리가 더 정말 죄인이라는 것을 그들에게 고백할 수 있고 그들을 품을 수만 있다면 이 문제는 해결될 수 있는 문제입니다. 심각합니다. 학교에서도 지금 동성 간의 성폭력 일어나고 있고 군대에서도 상사 부하들 간의 성폭력이 동성 간의 일어나고 있고 정말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입니다. 우리가 한 사람 끼어 안고그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그런 각오가 없다면,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을 이미 넘어 쓰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가 현실의 문제,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문제, 그 문제를 외면한 채 우리가 우리 자신의 개인의 문제, 내 사랑 타령, 내 돈 타령, 내 자리 타령, 그거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에요. 저는 우리 자신이 좀 더 눈을 크게 뜨고, 하나님께서 무엇을 슬퍼하고 계신지, 이 백성들이 무슨 일로 고통받고 있는지, 그걸로부터 친지 하게 기도해야 할 것이고, 또 진지하게 우리가 태클하지 않으면 우리 자신을 어쩌면은 하나님께 그야말로 무한 책임을 맡겨 주신 그리고 그 무한 책임을 감당할 수 있는 무한 특권을 주신 것을 우리가 다 포기하고 마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이 시대를 향한 부르심에 여러분들이 같이 귀를 기울이시기를 바라고, 기도할 때 그런 문제가 여러분들 마음에 주신 부담이라면 기도하고 그 현장으로 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느헤미야가 총독으로 그만하면 됐어요. 월급 안 받고 열심히 했으면 되었습니다. 새벽부터 밤까지 일했으면 됐어요. 그러나 고통받고 있는 백성, 빚에 시달리는 백성, 쪼들리는 백성, 그 백성들의 경제적인 어려움, 그 어려움 조차도 해결하고자 하는, 그 의지를 보면서, 우리 크리스챤에게 주신, 그 무한한 책임 때문에 주님께서는 무한한 그런 특권을 약속하셨다고 믿습니다. 담대 하십시오. 용기를 내십시오. 죽으면 죽으리라. 각오하지 않으면 어떤 일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오늘 침에 그런 믿음의 결단이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기도나눔]

같이 기도합시다. 마음에 주신 부담을 따라 오늘 기도하십시오. 각자에게 주신 부담이 다릅니다. 하나님, 그러나 내가 내 문제, 내 가정의 문제, 내 주변의 문제에만 국한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정말 먼 땅을 둘러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라고 하셨사오니, 하나님 열방 가운데 있는 고통도 우리의 고통이고, 선교지에 있는 문제도 우리의 문제이고, 그리고 이웃들이 겪고 있는 그 모든 어려움이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문제, 우리가 정말 배려해야 할 문제, 우리가 달려가야 할 문제임을 주님 고백하오니 힘을 주시옵소서. 능력을 주시옵소서. 정말 우리 마음 가운데 거룩한 부담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으면 어떤 것도 해결할 수 없음을 압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감동을 주시고 믿음을 주시고 능력을 주실 때, 하나님 어떤 문제도 주님 안에서 주님의 능력으로 해결될 줄로 믿습니다.

 

[마무리기도]

풍랑이 이는 뱃전으로 다가오셔서 “내니 두려워 말라” 말씀하셨던 주님, 풍랑을 바라보지 않고 풍랑 넘어 다가오시는 주님을 바라보게 하여 주옵소서. 끊임없이 파도처럼 닥처럼 세상의 문제들을 바라보기에 앞서 먼저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과 함께 이 문제 속으로 뛰어드는 그리하여 배 밖으로 뛰어나와 와서 물 위를 걷는 기적적인 인생들이 시작되게 하여 주옵소서.

 

[축도]

이제는 십자가에서도 기적을 시작하신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성령의 충만케 하심이, 하나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 무한한 은혜와 능력과 특권이 이 세상의 문제들을 해결하라고 부르신 소명임을 깨닫고 그 자리에 달려가기로 결단 이 자리에 고개 숙인 모든 믿음의 지체들 위해 지금부터 영원까지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조정민목사님 설교] 바로가기 ↓ ↓ ↓ ↓ ↓  

https://www.youtube.com/watch?v=p4ySex0Zv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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