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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타이핑]
사무엘상 6:1-12
베이직교회_조정민 목사님_14.02.11_아침예배 설교
여호와의 궤를 다곤 신전에 갖다 놨더니 이상한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우리는 어떤 예측하지 못한 일이 일어나는 이게 우연인지
어떤 일인지를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법궤가 들어온 이후에 법계를 옮길 때다다
사람들이 독종 종기가 나기 시작하고
병이 전염병처럼 퍼지기 시작할 때 그들의 불안이 가중된 것이죠.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될 것인가?
그래서 믿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가 전쟁은 승리 했으니까.
다곤 신이 승리했으니까. 이미 끝난 것인데
이스라엘의 신에 왔다고 해서 이런 일들이 일어나니까
도저히 믿기지가 아니 않았겠죠.
왜 그래요? 우리가 전쟁에 이겼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이 일들을 보면서
블레셋쪽의 지도자들에게는 큰 고민이 생긴 것입니다.
일곱 달 동안 고민이 계속 됐어요.
그러면 적지 않은 시간입니다.
일곱달은 결코 적지 않은 시간입니다.
조류독감이 한번 휩쓸고 가면
온 나라가 불안해 하고
그게 장기가 계속된다면 어떻습니까?
살처분이라고 하죠?
어쨌든 지금 이 상황도 비슷한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신속히 조치를 취해야 하는 것이죠.
그러나 블래셋 지도자들은 믿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버틴 것입니다.
일곱 달 동안이나 버틴 거에요.
고집스럽게 버틴 것입니다.
이걸 보면서 일곱 달 동안 블레셋 사람들이 얼마나 불안했을까?
아니, 그 악한 독종이 생겨서 온 몸이 가려웠겠으며,
그게 한두 사람이 아니고 한두 집도 아니고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여러분 지도자 잘못 만나면 고생하는 거 아시죠?
아직 그런지도 잘못 만난 났나요?
북녘땅을 보면 지도자 3대를 거쳐 잘못 만나서 지금 얼마나 죽을 고생을 합니까?
사실 그래서 지도자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마음 한 번 잘 못 먹으면 백성들 고생이 오래 갑니다.
빨리 돌이켜 다면 좋았을 일을 고집스럽게 버티다가
일곱 달 동안 백성들이 고생하는 것이죠.
옛날에 듣고 자란 말 중 하나가
맨날 죽는 건 조조군 사람이라는 그런 말이 있었는데
여러분 전쟁이라도 윗사람을 잘 안 죽습니다.
숨을 때, 숨고 피할 때, 피하고 애꿎은 백성들만 정말 큰 피해를 당하는 것이죠.
오늘 보니까 브레셋 지방의 있은 지 일곱 딸이 됐는데
그때 비로소 이 사람들이 사람을 불러요.
의논을 하기 시작 합니다. 누구를 부릅니까?
2절 말씀 한번 보십시다.
[삼상6:2]
2 블레셋 사람들이 제사장들과 복술자들을 불러서 이르되
우리가 여호와의 궤를 어떻게 할까 그것을 어떻게 그 있던 곳으로 보낼 것인지 우리에게 가르치라
드디어 이 사람들이 이 법궤 때문에 이 난리가 났다는 걸
인정하기 시작한 것이죠.
어떻게 처리를 할 것인가?
복술자들을 불렀다고 되어 있어요.
자기들의 제사장도 부르고 점쟁이 같은 자들도 부른 것 입니다.
이 백성들에게 몰아닥친 고난은
하나님께서 이 백성들을 깨우고 자는 고난이었던 것이었습니다.
우상에게 붙들려 있는, 다곤 신에게 붙들려 있는
이 백성들을 깨우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케 한 사건입니다.
CS루이스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인간에게 불어닥친 고통과 고난은 하나님의 확성기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고난이 와야, 고통스러워야, 그제야 귀를 기울입니다.
이게 왜 생겼나? 생각해보고 돌이킬 수만 있다면 고난이 축복이 되는 것이죠.
그래서 고난도 축복입니다.
그런데 돌이킬 수 없다면 고난은 고생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고난을 고난답게 만들고
고난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은
돌이킬 때야 비로소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그 둘째가 실험정신이 많았던지
어느 날 집에 들어갈 때 얼굴이 벌겋게 부어 있어요.
왜 그렇게 되었냐? 그랬더니.
차돌을 구어 가지고, 이게 뜨거운가, 안 뜨거운가를 알아보기 위해서 얼굴에 이렇게 대본 거래요.
아무리 어리지만 좀 안타깝기도 하고 또 그래요.
그러나 어떻습니까?
고통스러웠기 때문에 두 번 다시 그런 일을 안 하는 것 아니에요.
이런 고통이 얼마나 큰 선물입니까?
그게 고통스럽지 않았으면 계속 이걸 하다가 살갗이 떨어지지 않았겠어요?
여러분 하나님이 고통을 주는 이유를 묵상해야 합니다.
그래요. 우리 생명이라고 하는 것은 고통과 불가 분이에요.
모든 생명은 고통 속에 자랍니다. 고통이 없다면, 인간은 존재할 수가 없어요.
하나님이 생명이라는 선물을 고통과 함께 주셨듯이
인생의 성숙이라는 선물을 고난과 함께 주십니다.
고난 없는 성숙이 없습니다.
그러니 그 고난이 고난 되게 하는 것,
고난의 의미 있게 하는 것,
그야말로 고난을 받아 들이고 고난 가운데 돌이키는 거란말이예요.
돌이키는 거란말이에요.
고통스러워서 손을 빼 버리고, 돌을 떼어 버리듯이,
고난의 들어가면 고난에서 이걸 빠져나올 길을 모색해야 하는데,
그 길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길이란 말이예요.
그래요. 블레셋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이겼다면 어떻겠습니까?
법계를 보낼 것도 없죠. 법궤 잘 왔습니다.
블레셋의 큰 축복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기다가 옮겨놓은 것처럼
큰 축복이 어디 있겠어요?
그러나 복이 화가 되게 하고 고난을 고난으로 끝나게 하고
고생으로 끝나게 하는 까닭은 그들이 돌이킬 줄 몰랐다는 것입니다.
지도자들은 모여서, 다섯 방백들이 주로 모여서 회의를 하지 않았습니까?
연합체입니다. 5개의 도시국가 같은 스타일의 연합체입니다.
처음에 아스돗에 왔다가 그 다음에 가드에 옮겼다가
에그론으로 옮겼다가 에스글론, 가사까지 합쳐서
5개 도시의 방백들이 모여서 블레셋 일을 결정하고 처리한 것이죠.
그들의 회의한 끝에 누구를 불렀어요? 점쟁이를 불렀다는 거예요.
한마디로 귀신에 씐 사람을 부른 겁니다.
근데 여기 보면은 이 귀신들린 사람들이 뭐라고 합니까?
3절 말씀 보니까
[삼상6:3]
3 그들이 이르되 이스라엘 신의 궤를 보내려거든 거저 보내지 말고 그에게 속건제를 드려야 할지니라
그리하면 병도 낫고 그의 손을 너희에게서 옮기지 아니하는 이유도 알리라 하니
여러분 귀신이 귀신같이 아는 것 아시죠?
그냥 귀신이 아닌데 귀신도 아는 게 많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잘 못 알아볼 때가 있어도,
귀신은 귀신같이 알아본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9장 보면
스게와의 아들들이 나오는데
사도 바울의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도 병이 낫기도 하니까
그걸 보고 이제 마술하는 사람들이 사도바울 흉내를 낸 거예요.
“사도 바울의 이름으로 귀신을 나가라” 이렇게 했단 말이예요.
그랬는데,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들이 마술사들이 하는 걸 보고
그걸 따라하다가 귀신한테 온통 당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행19:14-16]
14 유대의 한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 이 일을 행하더니
15 악귀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16 악귀 들린 사람이 그들에게 뛰어올라 눌러 이기니 그들이 상하여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하는지라
여러분, 귀신들이 하나님을 더 잘 알아 본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관련된 사복음서에 보면
귀신이라는 단어가 백 번이 넘게 나와요.
성경의 복음서를 보면서 이 귀신 이야기가
많이 나온는걸 우습게 보면 안됩니다.
지금은 없겠어요?
지금은 귀신이게 촌스럽게 다니지 않습니다.
굉장히 우아하게 다녀요. 이단이 이단 스럽게 교회 침투하지 않습니다.
아주 대단한 신앙심으로 침투합니다.
그래요. 그 귀신들이 예수님이 오면은 벌벌 떨잖아요.
내가 이렇게 하도록 내버려둬라.
군대 귀신이 뭡니까? 사란 하나에 2000개의 귀신이 들어가 있어요.
그러니 우리가 귀신이 없다고 하는 것도 귀신 밥이 되는 지름길이고
귀신을 두려워서 벌벌 떠는 것도 밥 되는 지름길이예요.
귀신은 내어 쫓으면 그만이고 외면해 버리면 그만이에요.
그걸 달랠 일도 아니고, 타협할 일도 아니고
그걸 대접할 일은 더더구나 아닌 것이죠.
어쨌든 귀신들린 점점이 들여와서 정확히 아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 같으면 ‘속건제’를 드리는 일이다.
그 당시 ‘속건제’ 라는게 보면은 속건제를 드리는 조건이
->1)사람에게 해를 끼쳤거나,
2)하나님의 규례를 어겼거나,
3)성전에 있는 성물들을 이걸 손상시켜 쓸 때
4)거기다가 죄를 지었을 때
이걸 또 알았어요. 그래서 그렇게 해야 된다는 거예요.
속건제 드려야 되는데 그 다음에 재물은 어떻게 해야 될까요? 했더니
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이 지도자들 숫자대로 5개,
독종으로 만들어서 거기다 두고
다음에 또 재미있는 것은 금 쥐 5마리를 만들락도 해요.
왜냐면 쥐에 대한 피해가 컸기 때문에 그렇겠죠.
독종에 피해와 쥐의 피가 컸기 때문에
그 피해를 막을 도리를 궁리한다는 것이
금으로 만들어서 그 다섯 마리 쥐와 다섯 마리 독종을
법궤 옆에 두고 돌려 보낸다는 것입니다.
돌려 보내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 오늘 재밌게 나옵니다.
어떻게 돌려 보낼 것인가?
이 사람들은 머리를 썼어요.
왜냐하면 이게 우연인가?
하나님께서 실제로 이 벌을 내리신 것인가?에 대해서
자기들끼리 서로 의논이 분부하니까,
그러면 이 법궤를 싣고 이스라엘 땅으로 한번 보내보자.
법궤와 속건제 재물을 갖다 놓고
이걸 싣고 가냐? 안가냐? 보자는 거죠.
그래서
첫 번째는 멍에를 매 본 적이 없는 소를 골라요.
왜냐하면 목에를 맸다는 건 길들어져 있다는 뜻이에요.
그래서 길을 보고 길 따라 가게 되어 있습니다.
학습이 되어 있어서 그렇습니다.
근데 멍에를 메지 않은 소의 목에다가 멍에를 씌어 놓으면
발광을 하거나 뭐 난리를 치며 안 가는 것이죠.
블레셋 사람들이 고도의 머리를 쓴 겁니다.
이 자들이 머리를 써가지고 보내고 싶지 않은 거예요.
그렇게 고통을 겪고 난리를 겪어도
어떻게 하면 이걸 한번 테스트해 볼 건가 해서
멍에를 매지 않은 소에게 멍에를 매게 해요.
다음 두 번째는 조건은 젖소에요.
새끼 젖소, 송아지를 난 젖소는 새끼를 띄는 순간 울고불고 난리예요.
안 떨어집니다.
그러니까 송아지를 떼어 놓으면 안 가고
자기 새끼를 찾아간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멍에를 믿지 않은 그런 저서 젖소 두 마리를 갖다가 붙여놓고
이제 가나, 안 가나 보자는 거예요. 안 가기를 바라는 거지요.
그래서 이게 그냥 우연히 생긴 일인지,
법궤 때문에 생긴 일지를 가리고 싶은 심정은
솔직히 법궤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해서 한번 보내 봤더니.
이제 곧장 갔다. 이게 오늘의 이야기입니다.
소들이 송아지를 집에 뛰어났는데 울지도 않고,
그리고 멍에를 매 본 적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냥 큰길 따라 쭉 가는 거예요.
‘벧세메스’란 유다 지역 접경지역의 성읍인데
유다 지역의 성읍 가운데서 레위 지파에게 할당된 성읍이에요.
레위인들이 성읍 이름을 ‘벧세메스’라고 지은 것부터
이게 사람들이 정신이 좀 혼미해진 거예요.
유대인들은 히브리인들은 태양을 숭배하거나
태양과 가깝지 않습니다.
그 뒤쪽 가나안쪽, 종교의 영향을 받았다는 뜻이에요.
레위인들이 자기 할당받아 성읍 이름을 ‘벧세메스’라고 지은 것
자체가 별로 탐탁지 않은 일이에요.
여러분들 ‘벧’자 들어가는 얘기에 ‘벧스’란게 ‘하우스’에요.
그래서 우리가 ‘벧엘’하면 ‘하나님의 집’이란 뜻이죠
‘베들레헴’ 한면, ‘떡 집’이라는 소리에요.
‘벧세메스’라는 뜻은 ‘태양의 집’이라는 뜻이에요. 태양의 집
태양이라는 이름을 갖다 붙인 걸로 봐서는 이 ‘벧세메스’라는 게,
블레셋과의 접경지역 이지만은 가나안의 많은 영향을 받은 레위 지파의 성읍이라는 것이죠.
법궤를 싣은 수레가 곧장 같다는 것입니다. 오늘 여기까지입니다.
만약에 이 법궤를 돌려 보내지 않고
이 다곤 신은 이게 헛것이구나.
법궤만 옆에 있었다는 이유로 그냥 쓰러지고
목이 댕강 떨어지고 손과 발이 떨어지며 파손되어 떨어지면
이거 아니구나. 이걸 돌이켰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근데 이 점쟁이들이 용하게도
지도자들에게 이렇게 협박을 해죠.
너희들 바로와 애굽 소식 모르냐?
애굽과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들 안 보내 주다가
어떤 그런 재앙들을 겪었는지를 기억해 봐.
그리고 고집부리지 말라고 얘기해 줘요
여러분 오늘 우리가 들어야 될 말 중에 하나는
고집부리지 말라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귀가 어두워 지면은
하나님 안 믿는 사람들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성경 책 잘 안 보면
여러 가지 현상이 나타나는데
그 중에 하나가 안 믿는 사람들을 통해서 말씀하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경을 열심히 읽어야
하나님이 친히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얘기 하시는 것을 듣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모르고 성경을 안 읽으면,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말씀하시고
특별히 안 믿는 사람들 통해서 말씀하세요.
그래도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도 환상을 통해서도 말씀하시죠.
왜냐면 글자를 잘 안 보니까.
그림을 보여주는 거예요.
그럼 환상 보는 거 그렇게 즐거워 하지 마세요.
책 잘 보면 안 볼 텐데,
하도 책 잘 안보니까.
그림책을 봐야 하는 아직 어린애 수준이라.
동화책 보여주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너무 그렇게 환상의 그렇게 매료되지 마십시오.
우리 꿈 이야기 그렇게 자꾸 할거 아닙니다.
꿈도 개 꿈이 더 많이 섞여 가지고
자꾸 모든 꿈을 하나의 꿈으로 이렇게 여러분들 해석하지 마십시오,
이게 고집 부리지 말라는 거예요.
고집 부리는 바람에 백성들이 일곱 달 동안 고생했습니다.
여러분들도 보가 고집 부려서
자녀들이 얼마나 고생한 줄 아십니까?
저도 참 제가 회개 많이 한 것 중에 하나가
고집스럽게 한 게 있거든요.
제가 회사생활하면서 제일 제가 지금 회개 많이 했던 게
제가 안먹겠다는 사람들을 고집스럽게 술을 먹였어요.
제가 언론계 어록이 하나 있습니다.
조정민 선배 왈 해가지고
술 안 마시려면 기자를 왜 하냐?
술 못 마시면 기사를 누가 뭐 쓰냐?
이런 말을 남겼다고 지금도 언론사 회자가 되고 있어요.
고집스럽게 술을 먹인 거니까.
그래 가지고. 그 사람들을 힘들게 만들고,
그런데 여러분들 고집스럽게 사람들을
딱딱하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너무 고집부리지 마십시오.
성령 충만한 사람들은 고집이 사라집니다.
고집이란 원칙 없는 자존심이에요.
내가 지나놓고 보니까.
고집이라는게 아무 원칙이 없어요.
그냥 자기 자존심만 기준일 뿐이에요.
저는 여러분들의 인생에 고집을 꺾고
말씀에 순종하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고집이 없는 사람 부르면
‘예’ 제가 여기 있습니다.
이렇게 대답하고 고집이 있는 사람은 ‘왜?’ 이렇게 대답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제발 부를 때 ‘왜요?’라고 답하지 않고
‘예’ 제가 여기 있습니다라고 그렇게 순종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우리가 이 말씀을 보고
저는 세 가지 기도 제목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첫 번째는 고집스러운 지도자들을 위해 기도해야 됩니다.
정말 백성을 사랑하면 고집을 꺾어요.
얼마나 북한 지도자들이 고집스럽습니니까?
얼마나 무서워 숙청을 버리고 있습니까?
그래서 저는 남과 북의 지도자들 위해서 함께 기도해 주기를 바라고,
두번째는 오늘 이 말씀을 따라 보면
내가 고집을 꺾어야 된다는거예요.
신앙 안에서 점점 고집스러운 사람들이 많습니다.
제가 오죽하면 지난 주일 설교 때 자폐증 환자 라고 했겠어요.
그런 신앙은 고집 꺾는 일입니다.
자존심 벌이던 일이에요.
우리가 신앙 안에서 믿음이 주는 원칙과 준거를 지키는 건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고집을 꺾자는 거예요.
내 안에 있는 못된 고집이 있다면 올랐던 드러내놓고
하나님 꺾어 주시기를 기도하고
그리고 우리가 3월부터 시작되는 이 불신자를 위한 전도 예배,
오후 5시에 시작되는 예배,
여러분들 누구 체면도 데려오지 마십시오.
그게아니라 정말 여러분 한 달간 기 하고 어떤 영혼을 놓고 정말
애타게 기도 하셔야 합니다
정말 내 생명을 들어도 좋을 만큼
그렇게 간절히 기도하면 안 들어오겠 씁니까?
그리고 그렇게 기도하지 않은 사람 그냥 건성으로 데려오지 마세요.
와 봐야. 그럼 여기 와서 시험 만들고 가요.
오래 기도하시고 어떻게든지 그분 한번
주님 맛나게 도와 드리겠다.
그리고 우리가 사랑하는 방법이
예수님 만나게 하는 것보다
인간을 더 사랑하는 방법은 없습니다.
애절한 마음으로 그분이 혹시 부모님이건,
그분이 형제건. 그분이 친구 건, 오래 만나지 못한사람이나,
직장 동료 건 그렇게 데려오기 바랍니다.
우리 저 길은주 자매 맨날 데려와 가지고
오늘은 안데려왔네 처음 데려온 사람을 새벽기도 부터 데려와 가지고
교회는 당연히 새벽부터 오는 모양이다.
이렇게 생각하게 만드는 언사가 있는 자매인데,
하여튼 저는 그렇게 해서 우리가 이렇게 참 전도의 열정을 갖게 되기를 바랍니다.
제가 심하게 할 때 그러잖아요.
전도 한 사람도 못한사람은 교회 떠나세요라고 그랬는데,
너무 그렇게 얘기할 것은 아니지만
여러분들이 애타는 마음으로 기도하길 바랍니다.
[같이 기도하십니다.] 세 가지 기도제목 놓고 같기도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이 정말 하나님 주신 이 땅의 평화를 누립니다.
그러나 이 땅을 이끌어가는 지도자들을 주님 붙들어 주셔서,
저들 실족하지 않게 하시고 완악하지 않게 하시고,
강팍하지 않게 하시고 고집스럽지 않게 하셔서,
주님 저희들의 심성 가운데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
하나님께 전심으로 무릎 꿇는
그런 놀라운 예배의 삶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이 땅의 정치인들이 주님을 두려워하게 해 주시옵소서.
폭력의 정치인들이 주님을 두려워하고
주님께 무릎 꿇는 정치 자들 되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내 안에 고집스러운 것들있다면 내 죄가 드러나기를 원합니다.
주님 앞에 내 고집을 꺾기를 원합니다.
주님 원칙 없는데 자존심 내려놓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3월부터 예배가 열립니다.
전도 예배를 통해서 이 땅에 불쌍한 영혼들,
잃어버린 영혼들, 주님이 애타게 찾으시는 영혼들이
주께로 돌이키는 놀라운 일들이 있게 해 주시옵소서.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주님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눈물로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애통으로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주여,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저희들을 주께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만나게 해주시옵소서.
예수를 그리스도라 고백하게 해주시옵소서.
십자가를 바라보게 해주시옵소서.
저희들에 한 영혼, 그런 영혼들이 주께로 돌이키는
그런 예배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날마다 주마다 하나님께 붙들린 자 되게 할 수 있도록
전심을 다하여 기도할때 하늘 문을 여시고 저희들에게
하늘의 쏟아 붙는 축복을 경험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마무리 기도]
하나님 아버지 이 땅의 모든 지도자들 완악하고 강팍하는 심령을 버리고
주님께 무릎 꿇는 그런 거룩하고 겸손한 지도자들 되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이 우리 안에 있는 고집스러운 것이 있다면 줄임 뿌리째 뽑아 주시고꺾어 주셔서
주 앞에 늘 순종하는 자세로, 주님 부르실 때 이해 쳐야 저 여기 있습니다.
그렇게 답하는 저희들 되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3월부터 저희들 전도 예배를 시작하고자 합니다.
주님께서 예비해 주시고, 주님께서 찾으시는 영혼들
그 예배에서 주님을 고백하는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놀라운 기적 같은 일들 일어나게 하여 주옵소서
[축도]
이제는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크신 사랑과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우리 안에 있는 완악한 것들, 고집스러운 것들 다 내려놓고,
주님께 늘 순종으로 달려가 길을 결단하는
이 자리에 고개숙인 모든 믿음의 지체들 위해
지금부터 영원까지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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