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타이핑] 베이직교회 조정민목사님 | 말씀노트

히브리서 12:4 | 선악과를 따먹는 것이 죄가 되는 이유 [2019.05.15]

 

히브리서 12:4

4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

 

 

예수님께서 이 땅 가운데 죄를 우리가 해결할 수 있었다면 오실 이유가 없죠?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할 수 없는 것, 이 세상이 800m 고층 건물도 지을 수 있고, 바다 밑에 10,000m 밑에 내려갈 수도 있고, 별의별 것을 우리가 다 하지만 그러나 예전이 21세기가 되어도 우리가 할 수없는 문제, 다룰 수 없는 문제, 우리가 할 수 있는 영역 밖에 있는 문제가 뭡니까? 이제 죄 문제라는 겁니다. 여러분이 죄를 우리가 가볍게 여기는, 이른바 다원주의 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다원주의 시대란 뭡니까? 죄의식 자체를 무너뜨리는 가장 교묘한 사상이에요. 다원주의란 어떤 것도 기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에요. 하나님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하나님을 배제하고, 하나님을 거부하기 위해서 제일 손쉬운 생각해 볼까요? “진리는 없다”에요. 하나님 없어도 상관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인간이 지금 돌이킬 수 없는 길로 접어드는 까닭은 뭘까요? 하나님을 우리가 벗어나고자 하는 클라이맥스에 와 했어요. 그러면 죄는 하나님을 떠나는 데서 시작해 된 거죠.

 

하나님께서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과실을 먹지 말라고 그럴 때 크게 하나님과 붙어 있는 유일한 실낱같은 생명선이에요. 그래서 하나님께 이게 옳습니까? 옳지 않습니까?를 물어야 하는, 마지막 한 가지 질문, 그것을 하나님께 드려야 되는데, 그것을 내가 관장하기 시작한 거예요. 그걸 하면은 하나님이 필요 없어집니다. 하나님하고 상관이 없는 삶이 시작돼요.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하고 멀어진 삶을 점점 살기 시작하면서 우리가 일어난 것이 살인, 사기, 강간, 절도, 뭐 이런 범죄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거죠.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과실을 먹지 말아라. 내가 선과 악을 판단하는 주관자가 아니라는 세부 지침이 십계명이에요. 뭡니까? 첫째, 나 이외의 다른 신을 섬기지 마라. 두 번째 우상을 만들지 말아라.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아라. 안식일을 지켜라. 부모를 공경하라.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말하지 말라. 이웃의 것을 탐하지 말라. 이걸 하나님께서 10가지 계명으로 주시고, 이걸 지키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지켜준다고 말씀 하신 것이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과 계속해서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조건이 새롭게 주어진 것입니다. 요거 지키면, 10가지 지키면 그러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마땅히 살아갈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죠. 이거 지켰습니까? 모세 잠깐 산에 올라간 사이 금송아지 만들었다가 또 난리를 치죠.

 

그래서 이 10가지를 지킨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유대인들이었어요. 그리고 잘 지키기 위해서 법을 더 세분화했죠. 안식일 규정은 300여 가지로 늘렸습니다. 얼마나 걸어야 안식인가? 얼마나 걷지 않아야 하는가? 뭘 들어야 하는가? 그래서 것들 다 만들어서 철저히 지키겠다고 했는데 그걸 지킨다고 하는 것들이 무거운 짐이 돼서 지키기는커녕, 더 많은 선과 악을 판단하는 기준이 된 거예요. 놀랍게도 십계명을 가지고 사탄이 어떻게 장난을 치는 거냐? 하니까, 10가지 선과 악을 판단하는 재료로 만들어 버리는 거예요. 유대인들이 613가지로 늘리니까, 613가지의 기준을 가지고 선과 악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는 것이에요. 여러분 죄란 이렇게 무섭게도 번식하는 것입니다. 요걸 한순간 바꾸면 금방 인간을 속일 수가 있는 거죠. 하나님께서 아무리 선한 걸 줘도 그것을 비틀어 놓는 거예요. 약간 각색하는 거예요. 방향을 살짝 바꿔 놓는 거예요. 지켜라. 남보다 더 잘 지켜라. 남보다 철저히 지켜라. 네가 그 사람보다 나아야 하지 않겠냐? 선과 악을 그렇게 판단하지 말라고 했는데, 그걸 더 판단은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한 것은, 가장 중요한 일이, 이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죄 문제, 이제 문제를 죄의 뿌리째 안고, 끌어안고 십자가에서 죽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십자가를 경험한다는 건 뭡니까? 예수님과 함께 죽음을 경험한다는 얘기예요. 예수님과 함께 죽음을 경험한다는 것은? 예수님이 끌어안고 죽은 죄 문제를 우리가 같이 끌어안고 죽는 거예요. 그러면 예수님이 끌어 않고 죽은 죄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옳고 그러고를 판단하는 버릇 습관 사고 체계 삶의 방식 그걸 모두 다 끌어안고 죽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는 만나 사람은 뭐해야 해요? 옳고 그리고의 판단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거예요. 여러분 신앙의 길이란 다른 게 아니에요. 옳고 그름으로부터 벗어나는 이 놀라운 자유를 경험하지 않으면 우리는 크리스천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크리스천들이 옳고 그러고를 가지고 싸운다? 이것은 덫에 걸려도 단단히 덫에 걸린 것이죠. 왜 싸워요? 누가 더 옳은가를 놓고 싸우는 것이죠. 누가 더 옳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뭐예요? 내가 판단자의 입장에 가겠다는 것이죠. 다시 한번 말하면 내가 하나님의 자리에 간다는 거죠. 여러분 내가 하나님의 자리에 가 있는 게 죄 뿌린 데, 크리스천으로 10년, 20년을 살았는데, 그 뿌리는 여전히 살아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날마다 들여다봐야 해요.

 

근데 이게 세례받고 나면, 죄를 들여다보지를 않아요. 의인 된 줄 알아요. 세례를 받고 나면 점점 점점 죄 민감해져서 죄가 상상할 수 없이 눈에 띄기 시작하는 게 크리스천의 삶이에요. 내가 술을 끊고 나서 후각이 회복되고 나니까, 전에 못 맞든 냄새를 맡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게 회복되었다는 뜻이에요. 구원이란 회복되었다는 뜻이어서, 죄에 대한 민감성이 살아났다는 뜻이에요. 누구 죄에 대해서? 내 죄에 대해서. 남의 죄에 대해서가 아니라, 내 죄에 대해서 예민해지고, 민감해져서 나를 들여다보고, 나를 또다시 내려놓고, 나를 깨뜨리고, 그래서 기도 제목이 뭐에요? 하나님, 나 좀 깨주십시오. 나 좀 짓이겨 주십시오. 나 좀 용각산 되게 해주십시오. 완전히 가루가 되어 소리 안 나게. 흔들어도 소리가 안 나게. 이 죄인들이 모이기만 하면 소리가 나니까. 죄인들끼리만 모이면 부딪치니까.

 

구원받은 자에 삶은 놀랍게도 죄의 너무나 예민해지는 삶이 되는 거예요. 그런데 그게 내 죄의 집중이 돼야 한다는 거예요. 나한테 관심을 가진다는 게 아니라, 내 죄의 관심을 가져야 되고, 내 죄성에 관심을 가져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Self-Interested Nature(자아 관심 본성)을 그야말로 Sin Interested Nature(죄 관심 본성)로 바꾸는 게 우리 구원의 핵심이라는 거예요. 그랬을 때 우리는 날마다 Sanctification. 성화의 과정을 밟아 가는 거, 그 성화의 과정을 살아가는 걸 구원을 이루는 삶이라고 해요. 그 구원의 현재 진행형이에요. 우리는 과거의 구원 받았어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어요. 그러나 이 생명을 날마다 누리고 살아가는 삶의 궤적을 성화라고 하는데, 이 성화는 날마다 우리가 죄 민감하게 깨어 있어서, 죄와 피를 흘리기까지 싸워야 한다는 거예요. 안 그럼 우리 금방 가 버리니까. 간 줄도 모르고 가요. 돌아간 줄도 모르고 우린 돌아가 있어요. 그래서 우리는 전혀 예수님하고 또 상관없이 살아가는 거예요. 그러면 더 못된 죄인이 되어 있는데, 모르는 거예요. 저 죄인을 욕하는 거예요. 그게 지금 오늘날, 이 교회들이 겪고 있는, 마치 우리는 다 의인 된 듯이 살면서 이웃들을 판단하고 정죄하면서 이런 심각한 문제들이 생기기 시작한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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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XVSFExmmFDQ&t=163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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