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타이핑]엄기영 목사님 | 특강 | 출애굽기 3:5 | 내가 선 곳 거룩한 땅  [2024.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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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3:5]

5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세종한빛교회에서 같이 말씀을 나눌수 있다는 게 하나님께는 영광이 되지만, 저한테도 너무 큰 기쁨이 됩니다. 제가 여러 번 이야기했지만 저는 상하이에서 21년을 목회를 했는데, 우리 상하이교회는 상사 주재원들이 모이는 교회에요. 젊은 분들이 많았는데, 상하이 교회하고 가장 분위기가 비슷한 데가 세종한빛교회인 거 같아요. 그래서 아 더 친근한 마음도 있고 또 우리 김완규 목사님하고 같이 이야기하다 보면 너무 좋아요. 진솔하고 솔직하고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 늘 겸손하게 엎드리며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그 태도가 너무 귀하고 그래서 제가 부족한 사람이지만 세종한빛교회가 이 시대 한국 교회와 열방을 향해서 아름답게 쓰임 받도록 하는데 정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으로 이 집회의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우리는 목금토 계속 이야기하면서 천국과 하나님 나라는 같은 말입니까? 다른 말입니까? 같은 말이에요. 그렇죠. 천국과 하나님 나라는 같은 말이에요. 같은 내용이에요. 그래서 천국이라는 말은 무슨 말이냐? 광활한 우주 천체 천문학자들에 의한다면 10에 23승이 넘는 이 광활한 행성들 광활한 우주에 있는 많은 별들 그래서 초 은하들, 여전히 팽창되어 가는 이 광활한 우주 천체를 내가 만들었고 내가 다스린다. 이 말을 천국이라고 말하는 거지. 거기 들어가 산다이 말을 말하는게 아니다. 이야기 드렸죠? 이 광활한 우주 천체를 내가 만들었고 내가 다스려. 내가 왕이야. 이 말이 천국이라는 말이에요. 천국. 이 말 이게 무슨 말인가? 죽어서, 내세로만 아셨던 분들은 목요일 서부터 진행됐던 거를 이게 녹화도 돼 있지 않나요? 예, 그래서 꼭 들어가셔서 아마 들어 보시면은 아 이게 지금 내가 기독교를 이렇게 알았구나. 내가 이렇게 배웠구나. 그런데 여러분 지금 제가 하는 말이 충격쓰럽게 다가오시는 분들 꼭 들으셔야 되고요. 아니면 그거는 어 제 실력을 뭐 이렇게 인정할 수 없다. 그러면 헤르만 리델보스 쓴 더 커밍 오더 킹덤이라는 그 책을 보시면 돼요. 그리고 한국 책에도 너무 많이 말하고 있어요. 그런 책 그래서 책 보시면 됩니다. 그래서 제가 이단이 아니고 특별한 말을 하는게 아니라, 이미 많은 도매상들이 이야기했던 말들입니다.

 

그런 하나님의 나라 그런 하나님의 나라가 현재 우리 가운데 임했어요. 예수님이이 땅에 오셔서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해야 있다라고 말씀하셨던 것처럼 하나님 나라가 이미 우리 가운데 도래 되어졌습니다. 그러나 아직 미래적 하나님의 나라는 임하지 않았어요. 그것을 오스카 쿨만이라는 신학자는 D-day와 V-day로 헤르만 리델 보스는 아브라함의 언약의 성취와 완성으로 이야기합니다. 그 말을 쉽게 이야기한다면 현재적 하나님 나라는 3일 독립이 선언되었어요. 아직 8.15 광복은 오지 않은 거에요. 그래서 반드시 광복의 날이 올 것이라고 그런 믿음을 가졌던 사람들이 만주 벌판과 상하에서 임시 정부를 수립하면서 그들이 살아갔던 것처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내 마음의 구주와 주님으로 모셔 드림으로 말미암아, 내 삶이 천국, 하나님 나라는 시작되어 있어요. 그러나 예수님의 재림으로 완성될 그 나라는 not yet 아직은 아니라는 거에요. 이런면 속에서 오늘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현재적 하나님 나라와 미래적 하나님 나라 사이에 우리가 살고 있는 거에요. 그 사이에 살고 있기 때문에 크리스천의 삶은 어떤 삶이냐? 존재론적으로 우리는 고난일 수밖에 없어요. 예수를 믿는다는 자체가 고난인 거에요. 독립군으로 살아간다는 자체가 고난인 거에요. 아직 광복의 날이 오지 않았기 때문에 그러나 3일 독립이 선언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는이 땅에 오셔서 죄 문제를 해결하시고 우리의 삶의 왕, 주가되어 주셨어요. 그 하나님이 반드시 당신의 열심으로 예수님은 재림하실 거고 미래적 하나님 나라는 완성되어질 것이라는 거에요. 그러면 크리스천들은 이미와 아직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될 것인가? 어떻게 살아가야 되는가? 영적 독립군으로 살아야 되는 거에요. 우리는 영적 독립 우리가 친일파로 살아갈 수 없는 것처럼 친한파로 살아갈 수가 없는 거에요. 죄송합니다. 친 세상파로 살아갈 수가 없는 거에요. 친 세상 파로 살아갈 수가 없는 거에요. 그런 이미와 아직 속에 오늘 우리를 공격하는 것들이 뭐냐? 사단이 있다.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무저갱에 사단을 잡아넣을 때까지 사단이 우는 사자처럼 우리를 공격해 와요. 그런데 그 사단의 특성은 거짓의 아비라는 거에요. 예수가 메시아인 사단은 우리를 어떻게 속여요? 아니야, 돈이 메시아 과학이 메시아, 이오가 메시아라고 오늘 우리를 속이는 거에요. 여기에 속으면 안 되는 거에요. 그런데 이대 가 메시아가 아니라는 것은 이미 역사 속에서 이제 드러났기 때문에 우리가 뭐 무슨 그런 어 이념 싸움 사회주의 국가로 가지는 않겠죠. 우리가 전체주의 국가처럼 가진 않겠어요. 그러나 오늘날은 돈이 메시아라고 하는 이 사단의 속임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속고 있는 거에요. 뿐만 아니라 또 어떤 속임이 있어요? 넌 크리스천들과 같이 살아야 된다라고 하는 넌 크리스천들과 같이 살다 보니까, 우리는 하나님이 왕인데 예수가 없는 사람 하나님이 없는 사람은 돈이 하나님이라고 그래서 돈에 사로잡혀 있게 되어지죠.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은 이미와 아직 동안안, 아직도 우리는 이 육체 육신을 지녀야 돼요. 근데 단순히 육신의 연약함으로 병만 걸리는 것이 아니라 죄에 길들여지는 것들이 우리 가운데 있어서 우리의 신앙생활에 걸림돌이 있다고 하면서 어저께 그런 우리를 위해서 주어진 것이 바로 교회라는 공동체를 주셨다. 여기까지이야 이야기를 했어요.

 

이제 오늘부터는 이 교회를 이야기해야 되는데 이런 이미와 아직을 살고 있는 오늘 그리스도인들이 직면하는 게 조금 전에 말했던 것처럼, 거짓의 아비가 이렇게 뿔 달리고 드라리고 큐처럼 이렇게해서 피흘리면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사단은 광명의 천사로 가장할 수 있는 것처럼, 오늘날 어떤 사상을 통해서 우리의 신앙을 흔들어 놓는 거에요.

 

포스트모더니즘이 과학주의가 사단은 아니라 사단은 포스트모더니즘을 이용해서 오늘 우리의 신앙을 흔드는 것이죠. 포스트모더니즘? 뭐 여러분들 잘 아시겠지만 절대적 진리라고 여겼던 것 속의 퀘스천을, 그래서 어떤 절대성이 아닌 다양성으로 가는게 이 포스트 모더니즘입니다. 그래서 포스트모더니즘이 우리에게 가져다준 유익은 어떤 경계와 벽이 무너지고 새로운 열림과 기회의 시대를 우리가 21세기에 살아간다. 이건 큰 축복일 수 있어요. 그런데 이 포스트모더니즘을 사단이 사용할 때 어떻게 오게 되냐? 절대성을 퀘스천마크로 보고 다 상대성을 만들어 버리니까, 왜 하나님만 참된 신이냐? 다른 것도 신이야. 다 신중에 그 중에 하나님도 신일 수 있어. n분의 1로 가는 것처럼, 왜 예수님의 십자가에 죽음과 부활로 구원이 있다고만 말하냐 말이야. 그래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구원도 있을 수 있어 그러나 다른데 구원도 있다는 거에요. 내가 그 길 진리의 생명이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그런 절대성을 고집하려 하지 말라는 거에요. 상대성. 왜 성경만 진리냐 그래 성경도 진리 중에 하나야. 그러나 다른데도 진리 있다. 그런데 기독교는 하나님만이 참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구원 있고 성경만이 진리인 거에요. 정말 그 하나님이 시퍼렇게 살아 계신다면 이건 진리이기 때문에 우린 타협할 수 없는데 이 포스트 모델인 즘은 여기에다가 퀘스천을 붙여서 다양성으로 가자라는 거에요. 그래서 어떻게 하냐? 그래, 너 교회 다닌다고? 너 예수 믿는다고? 내가 너 비난하지 않을게 너도 내 종교를 존중해 달라는 거에요. 얼마나 합리적인 말이에요. 여기에 젊은 애들이 뻥뻥 넘어 떨어지는 거에요. 나는 절대적으로 교회를 배웠는데 밖에 나가면 딱 어떻게 나와요? 그래, 너 교회 다니 거 내가 뭐 비난을 안 할게. 너도 내 종교를 존중해 그래서 종교 어떤 대화를 하고 종교가 화목하게 같이 지내자라는 거에요. 얼마나 합리적이고 멋있게 보입니까? 근데 기독교는 그럴 수가 없다는 거에요. 왜냐? 하나님만이 신이기 때문에. 성경만이 진리이기 때문에.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구원이 있기 때문에 그렇다는 거에요. 그런데 사단은 끊임없이 이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왜 기독교는 그렇게 독선적이고 배타적이 왜 너만 옳다고 그러냐?라고 이야기 하는 거에요. 그런데 기독교인 우리 속이 좁아서 아니라 정말 하나님만이 신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 절대성을 양보할 수가 없는 거에요.

 

여러분 우리는 절대로 동성애자들을 차별해서는 안 됩니다. 동성애자들을 무슨 혐오한다든지, 동성애자들을 무슨 괴물처럼 보는 절대 그래서는 안 되죠. 그들도 우리처럼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어진 사람들이에요. 그분들도 사랑을 받아야 돼요? 왜 동성애자들을 차별해요? 절대로 동성애자를 차별하면 안 되죠. 그들도 존엄성을 갖고 있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이기 때문에 동성애자들을 혐오한다는 동성애자들을 뭐 별난 사람처럼 바라본다든지, 마귀처럼 바라본다는 절대 그래서 안 되는 거에요. 그런데 문제는 뭐냐 성경은 남자와 여자만 창조했다고 하는 것이 절대성이 그런데 이 포스트모더니즘은 왜 남자와 여자만을 창조했냐는 거에요. 작게는 16가지 성 젠더가 있을 수 있고 크게는 72개의 젠더가 있다라는 거에요. 이거는 성경의 진리의 절대성을 무너뜨리는 다양성. 그래서 성적 취향의 다양성을 인정하자는 거에요. 왜 내가 남자인데 꼭 여자하고 결혼해야 되냐? 남성에 대한 취향을 가질 수도 있고 여성이 여성에 대한 취향을 가질 수 있다라는 거에요. 이런 다양성들을 인정하자는 거에요. 근데 우리는 기독교는 그렇게 할 수가 없는 거에요. 우리는 동성애자들을 존중해요. 그들의 인격을 그들의 삶을 우리는 비판하거나 차별하지 않아요. 그러나 성경은 남자와 여자에 외에 이루어지는 성 행위를 죄라고 이야기하기 때문에 죄라고 말해야 되요.

 

포괄적 차별법이 뭐냐면? 우리가 개별적 차별법 기독교도 이거는 찬성하죠. 우리가 장애인이라 노인이라는 다른 성을 차별하면 안 돼요. 근데 이 포괄적 차별법은 뭐냐? 그런 성의 취향을 가진 사람을 죄라고 말하면 그게 법으로 걸리는 거에요. 그래서 교회에서 죄라고 말하면 이게 법에 걸리게 돼요. 그래서 교회가 어 이건 우리가 동의할 수 없다라는 거에요. 동성애자들을 우리가 혐오한다든지, 그 사람 인격을 그들의 어떤 존엄성을 차별하는게 아니라, 그런 남자 여자 이루어지는 성의 어떤 부분은 성경은 죄라고 하는 이 절대성을 이야기하는데 그걸 절대성을 말하지 말라는 거에요. 다양성으로 가자라는 거에요. 그래서 우리 기독교는 그럴 수가 없는 거에요. 왜냐? 성경은 남자와 여자만을 하셨기 때문에 그런 거에요. 이게 오늘날 기독교를 공격하는 이 포스트모더니즘 거거든요. 이런 부분 속에서. 그래서 여러분 동성애 자체가 지금 문제가 아니라 이게 지금 거대한 다른 문제도 마찬가지로 이 포스트머더니즘은 모든 것을 전부 상대화 시키겠다고 하는 거에요. 그래서 즘에 유익한 점이 있지만 우리의 기독교를 공격해 오는 이런 부분들 속에서 우리가 정신 차려야 되는 부분이 있는 거에요. 기독교는 절대로 과학을 배타적으로 여기지 않죠. 과학이 발전되기를 하나님이 원하시는데, 과학주의에 사로잡힌 사람들, 그런 과학주의에 사로잡힌 사람은 과학만능주의, 과학에 대한 왜곡된 생각 속에서 과학으로 설명돼ㅑ지만은 팩트로 받아들이려고 하는, 그리고 마치 자기는 지 지식인이라고 여기는 것들 속에서 기독교인들이 왠지 그렇게 과학주의에 사로잡힌 사람 만나면, 내가 좀 비지성인 거 같고, 내가 어떤 이런 종교적인 거에메여있으면 뭔지 나는 좀 자적이지 못한 것처럼 눌리는, 이런 거에 속아서는 안 된다라고 하는 거에요. 이런 거에 속아서는 안 되는 거죠.

 

또 우리는 이 세상에 하나님이 없기 때문에 저들은 끊임없는 이 맘모니즘, 돈이 전부예요. 왜 갑질을 합니까? 왜 갑질 돈이 힘이기 때문에. 우리는 실용주의 자체가 건 아니지만 잘못된 이 프라그마티즘, 이 실용주의가 결국 돈만이 있으면 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는 거에요. 그래서 인간을 목적으로 대하지 않고 인간을 수단으로 대하기 때문에 나는 회사에 한 부속품처럼 여겨지는 인간 상실, 인간 소유로, 여김을 받게 되어지는 거죠. 그래서 그렇게 회사에서 일 잘하는 사람이 어느날 없어지는 거에요. 나중에 보면 자살고. 왜냐? 나라는 존재를 찾기가 어려워지는 이런 잘못된 실용주의가 판을 치기 때문에 결국 돈돈돈 이런 맘모니즘, 여기에 기독교인들도 맘모니즘의 가치 속에서 자기는 하나님의 사랑을 못 받았대요. 하나님은 나를 안 사랑한데요. 왜? 하나님이 나를 안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 집은 경제적으로 어렵고 그래서 나는 좋은 학교를 못 나왔고 또 나는 이홍열처럼 생겼고. 나는 이렇게 키가 작고. 전 이런 생각으로 인해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못 받았다라고 생각하는 거에요. 이홍열 이야기했는데 왜 웃으세요? 예. 많은 분들이 그럼 요번 집회 참석하신 분들이네요. 웃는 것 보니까. 이홍렬씨 잘생겼어요. 저 제가 이홍렬 닮아서 그랬다는 게 아니라. 이런 부분들 속에서 우리의 열등하다. 우월하다고 하는 그 잣대는 맘몬의 잣대지 하나님의 잣대가 아닌 거거든요. 여기에 이미와 아직을 살아가는 크리스천들이 너무 허우적거리고 있는 거에요. 너무 허우적거리는 거에요. 근데 그 허우적 거림이 어디를 흔들어 놔요? 사단이? 하나님이 나를 안 사랑하고, 하나님이 내 기도를 안 들어 주신다는, 왜? 스펙이나, 부나, 사회적인 위치나, 외모나, 인맥이 나는, 그 힘이 없어. 세상은 하나님이 없기 때문에 그런 힘의 논리 있는 거에요. 여기 기독교인들이 속아서는 안 되는데, 때로는 기독교가 도리어 이 만물의 가치를 부라 축복이라고 여겨서 우리를 몰아가고 있기 때문에 이게 도려 안타까운 거에요. 그래서 도려 어떤 문제가 되냐?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것처럼 예수를 믿어도 아무리 기도를 열심히 해도 경제적으로 어렵고 힘든 일을 당하는 사람이 있어요. 이런 사람들이 어떻게 돼요? 아 하나님은 나를 안 사랑하고 정말 나는 구원을 안 받았나? 하나님은 나를 안 축복 하나? 그래, 내가 죄를 너무 많이 저었고 살아서 그러나 아니야? 내가 더 기도가 부족해서 그런가 봐? 그래서 더. 이런 잘못된 그 생각들 속에 사로잡혀서 그냥 기도를 해야 되는 것이 마치 고행하듯이. 그래서 내가 기도를 안 했기 때문에 이런다라는. 여러분 “지성이면 감천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사람이 아니에요. 우리는 하나님을 감동시킬 수가 없어요.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오시는 게, 이걸 기독교는 은혜라고 말하는 거에요. 우리는 기독교는 지성이면 감천이 것처럼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사람이 아니에요. 내가 착한 일을 많이 하고 교회 봉사를 많이 하고, 기도 열심히 하나님을 감동 시켜서 복을 받는 그런 어떤 샤마니즘 아니에요. 기독교는. 나는 하나님 앞에서 제가 말을 할게요. 쌍놈, 쌍시옷 니은 그런데 나를 찾아오신 하나님의 그 은혜의 사랑을 감격하고 찬양하는게 기독교지. 내 열심히 하나님을 좌우하는게 기독교가 아니란 말이에요. 그런데도 오늘 이런 맘몬의 가치 속에서 우리는 자꾸 내가 기도를 더 많이 해서 하나님. 여러분 알라딘 램프에 나오는 마음도 한 번만 문지르면 나와서 “주인님, 뭘 도와줄까요?” 그러는 거에요. 하나님이 그만도 못해 가지고 그래서 기도를 열심히 해야지 “그래, 기영아 내가 뭘 도와줄까?” 이런 하나님이 아닌 거에요. 이런 종교화가 되어 가지고 잘못된 그래서 기독교가 하나님을 이렇게 왜곡시키고 하나님을 메이크업 시킨 걸 벗겨내서 하나님을 하나님 되도록 해야 되는 거에요. 너무나 이 세속화 되었다는게 뭐냐? 이 맘모니즘 속에 이 잘못된 왜곡된 신용주 속에서 교회가 하나님을 잘못된 메이크업을 시켜 놓은 거에요. 그래서 제가 흥분하는 거에요. 하나님 때문에. 기독교는 그런게 아니기 때문에.

 

그리고 우리가 육체를 갖고 있는 것 속에, 우리는 옛 성품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는데도, 이미와 아직을 살아가는 동안은 옛 성품들이 자꾸 웅크 웅크 일어나는 거에요. 우리가 그리스도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새 성품으로 살아가야 되고, 성령을 따라 살아야 되는데, 자꾸 옛 성품이 주인 노릇 하려그러고, 지가 왕노릇 하려고 그러고 자기 중심으로 살아가려는 거에요. 이 싸움이 이미와 아직, 현재적 하나님 나라와 미래적 하나님 나라 속에 2024년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 속에 있는 거에요.

 

그러면서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대로 살아가는 쾌락주의 이런 삶들이 있는 이런 갈등들 속에서, 노아 홍수가 일어날 때 세상이 어떤 죄로 관영의 많아졌어요? 하나님의 아들들, 하나님의 아들들은 여전히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해야 되는 그래서 아벨이 죽은 다음에 셋, 에녹, 에노스 이렇게 이어지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예배해야 되는데, 어? 가인의 문화를 바라보니까 가인의 문화는 목축업이 시작되어지고, 수금과 퉁소를 치는 예술이 있고 그리고 청동기, 철기 문명이 시작되어지면서 그들이 부해지는 거에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아들딸들이 세상의 아들딸들이 부러운 거에요. 가인의 문화가 부러운 거에요. 그래서 단순히 결혼했다는 시집장가 같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 딸들이 정체성을 상실해 버리는 거에요. 내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기 보다는 가인의 문화에 물질이 더 좋은 거에요. 그래서 시집가고 장가가서 섞여 버리니까,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의 아이덴티티를 이 정체성을 잃어버리니까, 이 사람들이 잊었어요. 그것이 노아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게 되어지는 거죠. 왜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왜 심판을 받아요? 하나님은 특별히 이스라엘을 구분해서 열방의 제상 나라로 하나님만이 참된 하나님이라는 것을 눈에 보이는 왕이 없지만 하나님이 직접 이스라엘을 다스리시고,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가 담겨진 율법을 지킴으로 말미암아 질서가 있는 나라로 드러내 보이기를 원했어요. 근데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가지고 가나안의 종교 바알과 아세라 신을 섬기는 거에요. 왜 바알과 아세라 신을 섬기 됐다고 그랬죠. 예. 농업 사회로 바뀌었잖아요.

 

그 전까지는 이스라엘은 무슨 사회였어요? 유목 사회였단 말이에요. 근데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농사를 지어야 되고 만나가 끊겨야 되는 거에요. 만나가 없어지니까 당장 먹을게 없어지니까 어떻게해요? 가나안 땅에 농산물이 있어야 되잖아요. 그러면 풍년이 들어야 되는 거에요. 근데 농사를 안 지어봤어요. 어떻게 하면 풍년 들어요? 태양과 물을 주관하는 바알신, 남성 신과 다산의 여신, 아세라 신을 섬기면서 거기서 종교 의식이 성행위라는 거죠. 암컷과 수컷이 결합하면 비즈니스 돈이 생기는 것처럼, 그 성행위가 부를 갖다 달라는 거잖아요. 그런 가난한 종교를 쫓아 가니까 하나님이, 하나님이 그래서 계속 선지자를 통해서 농경 생활로 표현해주자. 아니야. 이른비와 늦은비를 주는 게 나야. 너희들이 나를 섬기면 황충과 메뚜기가 먹지 않고 포도나무와 감람나무의 소출이 많게 할 거에요.라고 하나님이 농경 생활의 표현으로 하지만, 이스라엘이 그 하나님을 져버리게 되자, 이스라엘이 아스와 바벨론에 멸망을 당하는 거죠.

 

그런 것처럼 2024년을 살아가는 이 세종 이 땅에서 살아가는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으로 세상 나라와 섞여서 안 된다는 거에요. 세상 나라의 그 만문 가치와 혼합되고 동합 섞여서 안 되는 거에요.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의 정체성을 잃어버려서 안 되는 거에요. 우리가 조선 사람이라는 것에 정체성을 잃어버려서 안 되는 것처럼, 우리가 친일파로 살아갈 수 없는 것처럼, 우리가 영적 독립군으로 우리는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살아가야 되는 거에요. 그 길이 고난의 길이요. 십자가의 길이요. 가시 길 할지라도 이것이 진리이기 때문에 우리는이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을 우리는 크리스천이라고 이야기하는 거에요.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런 이미와 아직 속에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 교회예요. 그 교회를 바라보면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하는 거에요.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사도 바울이 너희 성도들을 위해서 받는 괴로움을 기뻐한다는 거에요. 그러면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해 내 육체에 채우노라. 내가 교회에 일꾼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해 내게 주신 직분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라. 여러분 지금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자기 육체에 채우겠다는데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기절했어요? 죽었어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었죠. 그럼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 뭘까요?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 아직 거듭나지 않았기 때문에 성령의 역사가 없으니까, 이제 이런 말이 어려울 거에요. 그냥 여러분 힘들죠. 하나님이 여러분 도와줄 거에요. 이런 메시지를 들으면 좋을 텐데 이게 지금 막 이렇게 피하면서 이렇게 하니까 이게 어려울 텐데. 그러나 이게 너무너무 중요해서 그래서 지금 혹시 눈 감고 계신 분 때문에.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 뭐예요?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 뭐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셨잖아요? 그런데 뭘 남겨놓은 고난이 뭐 있냐라는 거에요.? 그 남겨놓은 고난이 뭐냐 말이에요? 이미와 아직 속에 우리에게 준게 뭐냐? 교회라는 공동체를 줬어요. 그런데 교회의 머리는 누구죠? 예수님은 부활 승천하셔서 승리하시고 존귀케 됐어요. 그러면 예수님의 몸은 누구죠? 예수님의 몸은 누구예요? 우리들이 이제 우리들은 아직이 땅에 있어야 되는 거에요. 예수님의 몸인 성도들은 아직 이 땅에 있는 것이 그리스도의 남은 거 아는 거에요. 그래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사도 바울이 내 육체에 채워 내가 교회 일꾼 됐다라고 말하는 거에요. 그렇다면 교회는 누가 교회냐?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부름받은 하나님의 백성이요. 동시에 세상으로 보낸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 하나님의 백성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 성도를 교회라고 말하는 거에요. 지금 여러분 세종한빛교회는 누가 한빛교회죠? 여러분들이 세종한빛교회예요. 그러면 이 건물은 뭐죠? 이거는 그냥 예배당 위에 오늘 우리들을 모이게 하는 하나의 시설이지만 이 건물이 교회의 성전이 아니잖아요. 누가 성전이에요? 우리가 성전이요. 예수님을 내 마음에 구주와 주님을 모신 우리들이 성전이고 우리들이 교회인 거에요. 그래서 여러분 혹시 여러분들 가운데 나는 세종한빛교회를 너무 사랑해요. 그리고 옆에 성도들과 싸워, 그러면 이게 모순이 되는 거에요. 자 재직분들 우리 집사님 그다음에 장로님 권사님들 또 여러분 교회에서 어떤 중직을 맡고 계신 분들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들 세종한빛교회를 사랑하시죠. 그리고 옆에 중직자들이고 제직하고 싸운다? 그건 모순이다. 그래서 나는 사랑한다는 말을 안 해야 돼요. 왜냐? 교회는 건물이 아니고 어떤 시스템이나 메카니즘이나 조직이 아니라 우리가 교회인 거에요. 옆에 있는 직분자들이 교회예요. 그래서 내가 교회를 사랑한다는 건 옆에 있는 직분자를 사랑한다는 거에요. 사람을 성도를 사랑한다라는 말이에요. 그래서 교회를 열심히 하는 사람이 교회에서 싸운다? 그러면 열심히 하지 말아요. 왜냐? 교회는 우리가 교회이기 때문에. 그러니까 이게 모순이에요. 이게 그러니까 교회를 자꾸 제도나 어떤 건물이나 우리의 사람들이 모이는 어떤 것으로 자꾸 생각해서 그런 거에요. 그게 아니라 우리가 교회인가 우리가. 여러분 주일날 우리가 여기에 지금 세종한빛교회라고 여기에 모였어요.

 

그러나 여러분들이 지금 어디냐? 여러분들이 교회면 집에 가도 여러분들이 뭐예요? 교회요 여러분들이 직장에 갔어요. 교회예요. 그러니까 지금 여러분이 통전부의 행정부에 또 뭐 교육부에 지금 여러분 들어가서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근무한다 거기가 세종한빛교회인 거에요. 그러니까 여러분 세종한빛교회를 여기 모여는 여기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세종 전체를 바라보는 거에요. 지금 우리 세종한빛교회가 저기서 운영되고 있잖아요. 저기서 돌아가고 있는 거에요. 여러분의 가정뿐만 아니라 여러 부처 속에서 여러 또 여기서 편의점을 하든 여러분들이 무슨 음식점 식당을 하더니 거기에 여러분들이 교회 달려 걸고 십자가 걸렸다고 해서 그게 여러분 교회가 아니라 거기 그 주인이 거기서 일하는 홀에서 일하는 서빙하는 그분이 교회인 거에요. 그분이 세종한빛교회인 거에요. 그렇죠? 그래서 여러분들이 세종한빛교회 교인답게 산다는 것은 여러분의 가정과 일터 속에서 교인 답게 살아가는 거에요. 그래서 교인들은 우리는 세상으로 부름받은 하나님의 백성이요. 세상으로 보낸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라는 거에요. 그렇게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에 갖는 특권이 있어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일방적으로 찾아오심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의 이 축복이 특권이 신분과 특권을 누려가는과 동시에 우리는 세상으로 보낸 자로서의 사명이 있다라고 하는 거에요.

 

이렇게 교회를 옛날서 지금까지 오고가는 시대속에서 예수님을 자신의 마음을 구주와 주님으로 모신 사람들을 우리는 교회, 우리는 그것을 유니버셜 처치라고 이야기하는 거에요. 한국이든, 미국이든, 아프리카든 인도든 어느나라든, 그런데 그런 우주적 교회가 로컬처치로 우리는 한빛교회로 모이는 거에요. 한빛교회는 어디로 모인가? 세종한빛교회는 어디를 향하여 가야 되느냐? 세종한빛교회는 목표가 뭐예요? 지금 3,000명 모이니까5,000명이 세종한빛교회 목표죠?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가 뭐예요? 예배당 자리가 없어서 보좌 의자 갖다 놓는데, 이제 뭐예요? 더 그래서 우리는 더 큰 예배당, 더 큰 사람들 모이는 거에요.? 근데 안타깝게 세종에 사는 인구가 적어서 안타까워서 서울로 갈까? 이런게 우리 세종한빛교회 목표가 아니란 말이에요.

 

그럼 세종한빛교회 목표는 어디에 있어요? 세종한빛교회가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에 확장과 성숙에 들여질 것이냐. 왜냐?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시켜 가는 공동체를 위해 하나님이 교회를 두신 거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미와 아직 속에 하나님은 이 교회를 통해서 당신의 나라를 이어가기를 원하시는 거에요. 그래서 세종한빛교회로 우리가 모이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한다. 확장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통치의 영역이 넓어 가지는 거에요.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겠다는 천국의 통치를 받겠다는 사람과 영역이 넓어져 가는 것을 확장이라고 그러고 하나님 나라의 성숙이라는 것은 그 천국의 다스림에 더 순종하겠다고 하는 하나님의 통치에 순종하는 깊이를 성숙이라고 말하는 거에요. 그래서 세종한빛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확장과 성숙이 있는 거에요. 여기 앉아 계신 여러분들은 뭐 때문에 여기 앉아 계시냐? 하나님 나라의 확장과 성숙을 위해서 앉아 계신 거에요. 그런데 그 일을 누가 하냐?

 

여러분 안에 거하시는 세종한빛교회에 거하시는 성령님이 해가시는 거에요. 근데 성령님이 응 여러분 안에서 이렇게 응 그러면서 확장과 성숙 이렇게 하나님 성령이 하냐? 성령이 사람을 통해서 그 일을 하는 거에요. 그 사람이 누구냐? 교회 일꾼, 목사를 세우시는 거에요. 아까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위해서 내가 교회 일꾼 됐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하나님은 교회 목사를 세우셔서 이 일들을 이어가게 하시는 거에요. 그다면 여러분이 교회와 목사를 삼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여 봉사를 하도록 하게 하시는데요. 여러분 이 교회가 거듭난 성도들이라면, 그러면 여러분들의 신앙의 목표는 뭐냐? 우리의 신앙의 목표는 내가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됐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 백성다운 삶, 하나님 나라의 백성다운 성숙한 사람, 고마워요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사람다운 사람인 것처럼, 하나님 나라의 백성다운 삶을 살아가는 거에요. 하나님 나라의 백성다운 삶, 그 백성 다운 삶을 성숙하게 이뤄가자라는 거에요. 이게 우리 크리스천들의 신앙의 목표에요 내가 어떻게 하나님 나라 백성다울까? 내가 엄마 아빠의 자식다운 거, 내가 한국 사람다운 거, 이런 것처럼 하나님 나라 백성다운 삶을 살아가는 백성다운 성숙한 삶을 살아가자. 이 일을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백성답게 사냐? 성령님의 열심히 우리를 그렇게 하나님 나라 백성답게 만들어 가시겠다는 거에요.

 

근데 성령님이 누구를 통해서? 사람을 통해서 그 일을 이어가겠다. 그래서 교회의 일꾼이 있는데 그런 교회 일꾼으로 누굴 세웠어요? 목사님. 목사님을 세웠어요. 근데 목사님이 사람이에요. 예수님도 인간의 몸을 입고 있을 때 12제자 밖에 못 했어요. 예수님이 24명 뭐 막 120명을 키운게 아니라 12명이었던 것처럼 우리는 물리적인 한계가 있어서 목사님이 어떻게 다 성도를 온전케 할 수가 없어서 그 일을 함께할 동역자로 부교역자를 세우는 거에요. 또 부교역자를 갖고도 다 안 돼서 여러분이 교회 어떻냐? 목사님과 부교역자들은 성도들을 온전케할 수 있는 교회 일꾼을 세우는 거에요. 교회 일꾼을 장로, 권사, 집사라고 말하기도 하고, 더 중요한 교회 일꾼이 누군냐? 목자, 초원지가 되는 거에요. 교사가 되는 거에요. 여러분 교회에 가장 중요한 것이 누냐? 교회는 우리가 교회이기 때문에 교회를 교회답게 하는 것은 이 한빛교회 가운데 목자가 어떻게 목자로서 역할을 할 것인가? 초원지기가 초원지기로서, 교사가 교사로서 어떻게 성도들을 섬기냐? 성도들을 잘 섬겨 온전케 하라고 재직을 세우는 거고, 교역자들, 그래서 목사님들이 있는 거에요. 목사님이 북치고 장고 치는 걸 여러분들이 관중으로 아 목사님 잘하신다 아유 오늘도 은혜 받았어요. 오늘 북 잘 치시던데요. 이게 교회가 아니에요. 북 치고 장구 치는 게 누가 쳐야 돼요? 여러분들이 교회예요. 여러분들이 북 치고 장구 치도록 어떻게 잘 칠까, 그걸 도와주는 사람들을 교역자라는 거에요.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자꾸 목사들이 자기 1인자로 자기가 다하고 성도들이 관중이 돼 버린 거에요. 청중이 돼 버린 거에요. 방청객이 돼 버린 거에요. 그러니까 한국 교회는 영향력을 잃어버리는 거에요. 탁월한 목사님이 있으면 그 교회는 많이 모이지만, 성도들은 탁월하지 않는 거에요. 왜 한 지도자 때문에 그 사람이 보면 교회는 다 이게 건강한 교회가 아니에요 여러분들의 교회이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탁월해져야 된다는 거에요. 여러분들이. 그렇게 탁월하지도 돕는 사람들을 교회 일꾼인 거에요. 그래서 여러분 신앙이 성숙하면 성숙할수록 여러분들은 뭐냐? 교회 일꾼이 돼야되는 거에요. 어떤 교회에서 집사가 되고 안수 집사가 되고 장로가 되는게 계급장을 타는게 아니에요. 내가 교회 일꾼으로서 성도들을 더 잘 돕기 위해서 그런 교회의 질서의 공동체 속에 그런 직분을 갖는 것들이에요. 그래서 장로 권사 집사인데 목자를 안 한다? 교사를 안 한다? 그건 집사가 아니라 잡사에요. 잡사지, 집사는 뭘 하는 사람들이냐? 교사가 되는 거에요. 부모가 아이들을 그냥 주일학교 맡겨 놓고 거기다가 위탁 시키는 그런게 아니라, 부모가 내 아이를 신앙으로 양육해야 되는 것처럼 다른 집 아이들 그래서 부모가 교사가 돼야 되는 거에요. 내 아이만 맡기는 게 아니라, 부모가 직접 가서 내려가서 교사가 돼서 1부 때 엄마가 2부 이제 그리고 엄마는 2부 예배드리고 또 아빠는 1부때 들리고 2부때 내려가서 교사하고, 부모들이 교사가 되서 아이들을 내 집 아이들은 저 집 아이들은 다 하나님의 나라의 다음 세대 들이기 때문에, 그리고 이 소그룹은 교회가 단순희 목회 관리하려고 소그룹을 두는 게 아니라, 소그룹 속에서 이게 대중을 상대로 하는 거잖아요. 이렇게 해서는 진정한 교육이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들이 소그룹 속에서 이 대화가 나눠져야 되고 삶이 나눠져야 되고 아픔이 나눠져야 되잖아요. 거기서 함께 교회라고 하는 본질이 소그룹 속에서 나눠져야 되잖아요. 그러니까 누가 중요해요? 목자가 얼마나 중요한 거에요. 그니까 여러분 한빛교회 모일 때마다 박수쳐야 될 사람들은 목자와 교사인 거에요. 그리고 이분들 수고와 헌신에 대해서 여러분들이 계속 응원하고 기도해 줘야 되는 거에요. 그런데 우리는 주의 종 그래서 목사님만 이렇게 되면 그거는 건강한 교회가 아닌 거에요. 목사님을 귀중하게 여기는 것은 목자가 목자 되도록 교사가 교사 되도록 헌신하고 수고하니까 우리가 그 이유, 그리고 질서적 권위로 하나님이 담임 목사를 세웠기 때문에 우리가 존경하고 기도하는 것이지, 교회 본질은 여러분이 교회요. 여러분이 교회라고 하는 거에요. 그리고 교회는 여기에만 모여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러분이 일터 속에서 여러분이 세종한빛교회를 넓혀 가고 있는 거에요. 그러니까 세종한빛교회가 지금 얼마나 넓은 거에요. 여러분이 가 있는 다 청주에서도 지금 일하시는 장로님이 계시니까 거기가 한빛교회잖아요. 지금 거기서. 그래서 교회 일꾼이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참여하는 자들이요. 교회 일꾼이라 이미와 아직 현대적 하나님 나라와 미래적 하나님 나라 현대적 천구와 미래적 천국 사이 이미와 아직을 살아가는 성도들을 섬기는 사람들을 교회 일꾼이라고 이야기하는 거에요.

 

그렇다면 이 교회는 왜 존재하냐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와 사명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존재하는 거에요. 예배를 통해서 련 통해서 말씀의 양육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는 것을 통해서 우리는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존재해요. 우리가 성부 하나님이 우리의 구원을 계획하시고 성자 예수님이 구원을 십자가에서 성취하시고 성령 하나님이 우리에게 구원을 적용하는 이유가 뭐냐?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은혜를 찬송하리 함이라. 그렇기때문에 여러분 교회는 모일 때마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찬양하는 거에요. 여러분들이 일주일의 삶을 살다가 오늘이 주일날 모여서 뭐냐? 하나님 하나님만이 창조 주십니다. 하나님만이 구원자입니다. 하나님만이 역사의 주인이십니다. 하나님만이 영광과 찬송을 받으실 하나님이십니다. 할렐루야. 이걸 주일 예배라고 그러는 거에요. 예배는 여러분들이 이렇게 방청객처럼 앉아 있어서 그리고 목사님이 설교를 잘해야 되는 이게 아니라, 여러분들이 예배자에요. 예배자라는게 뭐냐? 하나님 하나님은 영광과 찬송을 받게 합당하신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이거를 표현하는 걸 예배라고 그러는 거에요. 그런데 이게 종교화 되어지면서 어떻하냐? 성도들은 이렇게 목사님, 내가 방해는 안 할테니까 앞에서 좀 잘해 보셔서 찬송가도 내게 은혜가 되게 하고, 기도도 내게 은혜 되하고, 설교도 내가 은혜 되게 하고 축도 나가 은혜 되하고, 그래서 일주일 동안 교통사고도 안 나고 무탈하게 건강하게 지낼 수 있도록 날 좀 해달라. 그건 종교의 종교. 그냥 종교가 돼버리는 거에요. 기독교는 하나님이 시퍼렇게 살아계신 우리는 종교라는 카테고리에 들어가지만 기독교는 종교가 아닌 거에요. 하나님을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시기에 이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 하나님만이 영광과 찬송을 받기에 합당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창조주십니다. 구원자입니다. 역사해 주십니다. 이거를 노래하는 그래서 정말 예배를 잘 드리는 사람들이 얼굴는 어떻냐? 북한에 이렇게 보면 TV 보면 김일성이나 김정은 할 때 예배드릴 때 그런 표정이 되셔야 돼 거에요. 하나님 하면서. 그러면서 그 가운데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높일 때 임하시는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을 경험하는 거에요. 그 하나님의 임재. 그래서 여러분 예배가 은혜가 있다는 건 뭐냐? 그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이 있는 거에요.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을 경험하는 거에요.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인 것을 기뻐하는 거에요. 그 말은 뭐냐? 우리가 이미와 아직 속에 우리는 이 땅에 두 발을 딛고 있어요. 비록 우리가 이 땅에 두 발을 딛고 있지만 이렇게 예배 공동체로 모일 때 하나님을 예배할 때 하나님 내가 이 땅에 두 발을 딛고 있지만 나는 이 땅에 속한 자가 아니라 하늘에 속한 자입니다라고 하는 나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거에요. 그래서 주일 예배는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는 거에요. 일주일의 삶 속에서 넌 크리스찬들과 같이 어울려 있다가 나는 이 땅이 있지만 비록 어려움이 있고 고통이 있고 문제가 있지만 나는 하늘에 속한 하나님의 나라야. 하나님의 백성이야. 이거를 확인하는게 주일 예배인 거에요. 그래서 서로를 바라보면 기뻐하고 격려하고 우리가 함께 왜냐? 우리 모두는 하늘에 속한 자기 때문에 그래서 주일 예배를 빠질 수가 없고 주일 예배는 너무너무 중요한 거라는 거에요.

 

또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을 존재할 때 훈련 왜 훈련이 필요하게 되어요? 아까 말했던 것처럼 오늘도 이런 세상이 이런 사상으로 이런 것으로 우리를 그리스도인답지 못하게 살아가도록 하나님 나라 백성답게 살지 못하도록 공격해 오는 거에요. 그렇기 때문에 끊임없이 우리의 정체성을 잃어버리도록 하려고 하는 이런 것 속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온전해지지 않으면 경고하게 쓸 수가 없어요. 여러분 한국에서 제일 큰 이단이 어디라고요? 하나님의 교회가 제일 큰 이단이요. 하나님의 교회는 기도할 때 어떻게 해요? 안상홍의 이름으로 기도해요. 그런데 한국에서 제일 큰 교회예요. 제일 큰 이단이고 신천지 얼마나 커요. 그런데 그 사람들이 어디서 왔냐? 교회 다니던 기성 교인들이 이단한테 빠지는 거에요. 왜 그러냐? 일주일 내내 성경 한번 보고 교회에서 성경 훈련 안 받고 그냥 큰 교회 대형교회 가면 1부에도 5부 부예배 육간대청부 예배 있어요. 그게 주일날 있어요. 그런데 설교는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이 함께하신다. 놀라지 말라. 물론 그것이 우리의 삶에 필요하지만, 그런거고 내가 신앙으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성경은 뭘 말하는지 나는 어떻게 살았는지, 배우지 못하는데, 이단들이 와서 자기 논리로 딱 하니까 넘어가는 거에요. 여러분 교회에서 말씀의 양육을 안 받는다? 그러면 너무 영적인 베이비입니다 예수 믿은지 20-30년 됐는데도 내가 영적 베이비에요. 너무 어린애로 있는 거에요. 왜? 말씀의 양육과 훈련을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러는 거에요. 그런데 왜 하나님이 목사를 교회에 세우셨냐?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여 봉사일을 하게 하는 거에요. 근데 여러분 목사는 그래서 무슨 일 하는 거에요? 여러분을 온전케 하고 여러분들을 미니스트리 사역을 하도록 하는 거에요. 목자 교사가 되도록 하는 거에요. 이 봉사라는게 그냥 이렇게 단순한 서빙이 아니라 지금 이 원문에 보면 이 봉사가 미니스트리 사역을 하도록 하는 거에요. 교사가 되고 목자가 되도록 하는 거에요. 어 성도를 온전케 해서 목자가 되도록 교사가 되도록 해서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거에요. 그런데 뭘 갖고 온전케 하느냐?

 

여러분 성경의 역할이 뭡니까? 성경이라는 것은 성경은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성경이 성경의 기능과 역할이 뭐냐?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여 아까 목사도 뭐예요? 온전케 하고 성경도 온전케 하여. 저쪽은 봉사일. 미니스트리 한다. 여기는 선한 일을 행할 능력 선한 일. 미니스트리 사역을 할 능력을 갖추는 일. 이게 성경이 그렇기 때문에 목사는 성경을 갖고 성도들을 온전케 하는 일을 하는 거에요. 그래서 사역을 하도록 돕는 거. 그 사도 바울도 뭐라고 말하냐? 그리스도의 일꾼이 됐다라고 말씀하면서 내가 그를 예수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각 사람을 가르쳐서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니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한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에요. 그래서 교회 일꾼은 누구냐?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워가는 자들을 우리는 교회 일꾼이라는 거에요. 그래서 말씀의 양 훈련은 너무너무 중요하다는 거에요. 말씀의 양육과 훈련을 안 받고 있는 분 교회 어떤 교회 말씀의 양육과 훈련에 프로그램에 안 들어가 계신 분들 그냥 여러분들은 그냥 영적 베이비에 이걸 모르면 근데 여러분 운전을 배우기 위해서도 운전 교습서 가서 이걸 해야 되고 피아노를 배우기 위해서 바이 챌린지를 해야 되는데 어떻게 영적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아무 교육을 안 받고 어떻게 되겠어요? 여러분 왜 우리가 아 이렇게 결혼하면 아픔을 경험하게 되죠. 아빠가 되는 걸 언제 어디서 교육 받았어요. 엄마가 되는 걸 우리가 언제 교육 받았어요. 남편이 되는 걸 교육 받았어요. 아내가 되는 걸 교육 안 받고 몸만 커서 결혼하니까 이게 완전히 금성에서 오고 이게 뭐 뭐 달나라에서 온 사람들이니까 안 싸우는게 비정상이죠. 다 싸울 수밖에 없죠. 이걸 이해가 할 수가 없는 거잖아요. 그런 교육을 어디서 받았어요? 우리가 그냥 그런 거만 교육 받았지 그런 건 안 받았으니까, 당연한 것처럼 기독교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성경은 뭘 말하는지를 배워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해 몸만 컸다고 그래서 그 교회를 오래 다녔다고 해서 그 사람을 성숙한 신자라고 말하겠어요? 도리어 교회 성숙한 신자 뭐 하냐 교회 와서 일을 많이하냐? 여러분 기독교는 being이 먼저에요 doing이 아니에요. 일을 먼저 하는게 아니에요. 내가 누군지를 알게 될 때, 그 누군지가 앎이 나로 하여금 doing을 하도록 만드는 거에요. 그냥 일만 열심히 하면 나중에 그 사람은 뭐냐? 목사님이 나를 안 알아줘? 저 사람이 나를 저게 그래서 싸움 거리가 되는 거에요. 도리어 교회에서 제일 목소리 큰 사람이 누구예요? 제일 일 열심하는 사람. 왜냐? 종교적으로 의가 있잖아요. 나는 부엌에서 허리가 부러지도록 일을 하는데, 근데 이 젊은 것들은 와서 뭐 싱거워? 뭐 짜게 됐다고 이것들이 정말. 이게 이게 교회의 문제가 그런 거잖아요. 어 내가 주차장에서 오가는 매연 가스를 마시면서 수고했는데 응 장로들은 맨 앞에 와가지고 예배만 드려? 나는 교회 온지 얼마됐다고 나 신앙을 날 무시해? 여러분 주차장 봉사는 처음 교회 오신 분이나, 아직 신앙이 어리신 분을 하시면 안 돼요. 장로님, 안수 집사님들 그래서 오늘밤 죽어도 난 천국 갈 확신은 그분들 나가서 하셔야 되고요. 그런 확신이 없는 분들이 요 앞에 앉아야 되는 거에요. 그렇잖아요. 이게 거꾸로 돼 있잖아요. 여러분 교회에서 봉사할 사람들이 전부 성가대가 앉아 있어. 교사 사람이 없는데 다 성가대가 앉아 있어. 왜 그냥 봉사 애들 제일 일꾼들이 다 거기 앉아서 그리고 그 섬김. 물론 그 찬양도 귀한 섬김의 한 개지만 어떤 면해서 목자가 되고 교사가 돼야 된다고요. 그 섬김이 더 중요하다면 때로는 성가대 없이 그분들이 교회에서 활동을 하고 그 나가서 그 성가대 쓰는 거보다 주차장 봉사하시고 스미마생. 너무 진하게 말씀을 전했나요? 예.

 

교회 존재 이유 또 하나는 증거에요. 증거라는 것은 우리는 세상으로 보냄받은 제자 사명이 있어요. 그래서 교회는 존재론적으로 교회는 선교입니다. 여러분 교회 DNA 예수가 부활했어요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크리스천이라고 말하는 거에요. 예수가 부활하셨음을 선포하지 않는 사람은 거듭난 사람이 아니에요. 예수님은 살아 계십니다. 그 사람이 그 예수님은 살아계세요. 부활해요. 이걸 선교라고 말하는 거에요. 그래서 그 예수님은 지금도 살아계십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시켜 가는 거에요. 그래서 교회는 하나님 나라를 실현시켜 하는 교회예요. 그래서 교회는 존재론적으로 교회는 선교인 거에요. 예배도 선교거. 훈련도 선교고, 교회는 존재론 쪽으로 선교인 거에요. 왜, 예배가 선교죠? 여러분들이 이 시간 여기 왔을 때 동네 교회 안 다니는 사람은 어유 김 선생님 어디 가세요? 교회가. 저 사람들은 일요일 날 왜 저기를 가지? 저 사람들은 예수가 오늘도 살아 계시데. 그거를 알리는 거에요. 그래서 예배가 존재론적으로 선교인 거에요. 우리는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이게 예배 아아 그래서 우리는 존재론적으로 섬기고 훈련도 선거고 전부 다 교회의 움직임이 점수도 끝까지가 다 선교 예수가 부활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누가 교회라 그랬죠? 우리가 교회이기 때문에 미션을 처지. 교회가 선교적 교회가 된다는 것은 여러분이 미션 라이프 선교적 삶을 살아갈 때 교회를 미션을 처치하고 말하는 거에요. 미션을 처치 선교적 교회는 여러분들이 선교적 미션널 라이프, 선교적 삶을 살지 않는다면 선교라는 프로젝트를 하는 거에요. 일을 하는 거에요. 그래서 선교비도 보내고 선교지에 여러 가지 할 수 그건 일이지 여러분이 미션널 라이프 선교적 삶을 사는 거는 건 아니에요. 물론 그냥 헌금을 낸다. 기도한 그건 부분적으로 미셔 라이프의 한 부분이기도 하지만 내 삶 자체가 미션널 라이프에 내가 내 크리스천으로서 내 존재 자체가 선교적 삶을 살아야 된다는 거에요.

 

그 선교적 삶을 산다라는 것이 그러면 다 우리가 어디로 가요? 선교지로 들어간다는 것이 아니라 이런이 선교 명령을 우리가 받았고 예수님께서도 그러잖아요. 내 아버지께서 나를 보 너를 보낸다라고 했는데 이걸 우리가 선교 명령이라 그래요 우리가 어 마태복음과 요한복음에 있는 걸 선교 명령이라 한다면 이걸 창조문화 명령이라고 하죠 그래서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는 자 그렇게 이제 이야기 하시는데요. 왜 2부 예배때 더 시간이 없어졌지 이상하네요. 뭘 더 했죠? 아까 1부보다. 그래서 우리는 이 창조문화 명령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나다워지는 것이고 그리고 우리는 이 성부 성자 성령이 일제가 사회성을 갖고 있으면서 하나가 된 것처럼 교회도 우리가 학교에서는 우리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을 하는데 하나님은 우리를 존재론 쪽으로 공동체로 우리를 다루십니다. 우리를 더불어 살아가도록 만드신 거에요. 그런데 이 세상의 만물의 가치 속에서 우리가 개인주의가 되고 이기주의가 되는데 성경은 너는 나다. 내 이웃을 그래서 내 몸처럼 사랑하라고 말씀하시면서 우리를 하나님이 대리 통치자로 삼은 것을 창조 문화 명령이라는 거에요. 하나님은 하늘의 새를 만드셨어요 우리는 새를 보고 비행기 로켓트를 만들고 하나님은 눈을 만드셨는데 인간은 눈을 보고 렌즈를 만들어 내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떤 몸짓을 줬는데 우리는 몸짓을 보고 스포츠 춤을 만들어 내는 이런 것을 창조 문화 명령이요.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성과 과학을 통해서 이렇게 하나님의 명령이 인간의 사명으로 역할을 하도록 만드시는 것들이죠. 그런데 그것을 갖고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섬기도록 하는 거에요. 그러면 우리는 이 창조 문화 명령을 받은 자로서 우리는 직업을 갖고 여러 영역에 들어갑니다.

 

그 직업이 정치 경제문화 예술, 교육과 언론, 미디어, 스포츠, 모든 영역이 들어가서 내 직업은 단순히 생계수단 먹고 살고 입신 양면 성공하고 출세하기 위해서 내가 직업고 노동 갖는 거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내이 직업군에 들어가서 하나님을 하나님 되도록 거기서 내가 선교적 삶을 살아가는 거에요. 그것을 뭐라고 말하냐? 창조 문화 명령과 선교 명령이 통합되어서 나타나는 거에요. 통합되어서 나타나는 거에요. 그래서 창 창조문화 명령과이 선교 명령이 통합된다는 말이 무슨 말이냐면 내 노동과 내 일터에서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셨다고 증거할 것인가? 이게 별개로 나눠지는 것이 아니라 함께 통합되지 거에요. 여러분 오늘 우리가 읽었던 본문 속에서 내가 선 것은 거룩한 땅이 내 발에 신을 시라고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찾아와서 말씀하실 때 모세는 미디안 광야는 모세의 일터 현장이었어요. 양치기로 미디한 광야가 눈에 훤해요. 그런데 떨기나무 밑에서 불이 붙는 거에요. 그 이상하다 꺼지지 않고 그 가서 보니까 네가 선 것은 거룩하니 신발을 벗으라는 거에요. 모세가 쓴 흙이 영토가 거룩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 임재가 임하자 거기를 거룩한 땅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처럼 여러분들이 집에 가서 여러분이 직장에 가서도 하나님의 통치하려 있다면 거기가 뭐예요? 거룩한 땅인 거에요. 거기가 거룩한 땅인 거에요. 내가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이 있기 때문에 거기가 있는 거에요.이 예배당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가정과 일터에 있는 거에요. 그래서 우리가 둘째 날 우리가 금요일 날 이거 얼마나 제가 목 목청이 터지도록 이야기한 것이죠.

 

지난날 우리가 천국으로 배워서 죽어서 가는 내세로 잘못 배웠기 때문에 이런 잘못된 성속의 개념으로 있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 나라로 배워야 된다는 이유가 그거였던 거에요. 우리가 구별된 다라고 하는 것은 거룩은 구별 됐다는 것은 하나님의 통치 천국의 통치를 받느냐? 안 받느냐가 거룩이지, 거룩이냐? 불순종을 이야기하는 것이지, 직분이나 장소를 말하는 것이 아니에요. 그래서 우리는 자꾸 7분의 1만은 생각하고 10분 1만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라고 하는 거에요. 우리가 7분의 1로 주일날 예배드리는 건 뭐냐? 7분이 7이 다 하나님의 통치에 있기 때문에 월요일부터 토요일을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 속에 살아가겠다고 오늘 주일날 모이는 거에요. 그래서 여러분이 교회로서 7분의 6에서 교회 역할을 하는 거에요. 십일조를 내는 것은 10개가 다 하나님의 거라고 십일조를 내는 거에요. 그래서 10분의 9를 낼 때 정신을 차려야 돼요. 이게 하나님의 거기때문에. 여기서 어떻게냐? 그래서 열개가 다 하나님의 통치 아래에 있어야 되는 신앙과 삶이 통합되어서 나타나는 거에요. 그런데 이런 교육을 우리가 그동안 잘 못 배웠기 때문에 우리의 신앙에 문제가 있었던 거에요. 그동안은 우리는 일제시대와 유교와 새마을 운동으로 먹고 사는 게 힘들었고 민도도 낮았기 때문에 우리는 그냥 기도해서 축복을 받는 거였어요. 그래서 한국 교회는 축복을 받았어요. 그런데 이 축복에서 패러다임이 안 바뀌니까, 그냥 한국 교회는 세속화 되어지고 다 돈돈돈돈 교회가 더 돈돈돈 거리고 하나님을 끌어들여서 더 우리가 세상에서 잘되려고 하는 것으로 바뀐 거에요. 그러다 보니까 7분의 6에서 10분의 9에서 더 욕을 얻어 먹는 거에요. 7분의 1과 10분의 1은 교회에서 만나요. 넌 크리스천들과 만나는 건 7분의 6과 10분의 9가 넌 크리스찬과 만나는 거에요. 여기서 어떻게 하나님 나라를 이루 가느냐는 거에요. 여러분들이 교회이기 때문에. 그런데 우리는 다 교회로 전부 그래서 큰 건물 지었고 예배당에 사람들이 많이 모였지만 한국 기독교는 욕먹는 기독교가 돼 버린 것들이라는 거에요. 우리는 모든 일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야 되고, 무슨인지 말에나 일에나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해야 되는 거에요.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삶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가정과 일터와 사회 모든 영역 속에서 하나님의 통치가 들어나는 영적 예배자로 살아가는 거에요. 우리는 영적 예배자로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해내는 이런 통합적 삶을 살아가는 거에요. 신앙과 삶이 분리되고 앎과 행함이 분리되고 복음과 빵이 분리되고 말과 행실이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통전적으로 통합적으로 어떻게 나타나는 삶을 살아갈 것인가? 이런 삶을 통해서 우리는 선교적 교회, 미션을 처치로 그리스도의 미션 라이프, 선교적 삶을 살아가는 이 총체적 구원 총체적 선교를 이는 거에요. 그런 기업을 우리는 비즈니스 애즈 미션이라는 거에요. 라이프라는 말보다. 미션이라고도 이야기해요 근데 라이프라는 말보다는 접적으로 우리 일터와 조금 더 가깝게 하기 위해서 우리가 비즈니스 애즈 미션, 아트 애즈 미션, 에듀케이션 애즈 미션, 뭐 여러 가지 직업을 다 집어넣을 수 있는 거에요. 그러니까 비즈니스 포 미션은 크리스천 오너가 내가 노동을 통해서 얻어진 돈을 갖고 구제비나 선교비 하는 거에요. 이거는 비즈니스 포 미션이에요. CBMC나 이랜드 같은 기업이에요. 근데 비즈니스 애즈 미션은 내 노동 자체가 하나님의 일이 되도록 하는 거에요. 이 비즈니스가 하나님의 일이 되도록 하는 거에요. 그래서 비즈니스 애즈 미션. 선교로의 기업을 하는 것들이에요.

 

그런데 이 선교로의 비즈니스를 할 때 우리가 그렇다고 해서 이제 비즈니스 미션은 이런 건데요 언제 이것만 따로 우리가 언제 해야지 됩니다. 이런 것들이 다 통합되어 것을 비즈니스 애즈 미션이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들인데요. 그래서 이렇게 정의하는데 그냥 그림만 보고 넘어가는 걸 하고요. 그 그래서 BAM 기업은 재정유지가능해요. 우리는 NG0나 우리는 비영리 단체가 아니라 돈을 벌어야 돼요. 그래서 재정 유지가능. 근데 돈 보는 과정을 성경적으로 하겠다는 거에요.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쓰는 것이 아니라 돈 보는 과정을 정승처럼 해서 정승처럼 써야 되는. 왜냐? 우리는 크리스천이 때문에.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내 일터 속에서 돈 버는 과정에서 드러내는 거에요. 어떻게 성경적으로 돈을 버는지. 그러면 돈이 잘 벌릴까? 안 벌릴까? 잘 안 벌릴 수도 있지만이 길을 걸어가는 걸 고난이라고 이야기하는 거에요. 그런데 때로는 그것이 성공할 수 있는 거에요. 그냥 여러분들에게 믿기를 던지듯이 여러분 그것이 고난이 하나님의 도려 축복할 것입니다. 그런 부분도 있지만 다 부자가 되지 않아요. 절대 그렇지 않아요. 도려 망하는 사람도 있어요. 망하는 사람도 있어요. 그런데도 왜 망하냐? 그게 기독교인들의 고난인 거에요. 내가 정직해야 되기 때문에, 내가 성경적으로 돈을 벌어야 되기 때문에, 내가 이윤을 정말 합리적으로 남겨야 되기 때문에, 그러니까 어렵죠. 여러분 식당에 가면 교회 달력 있고 십자가 걸렸는데 서비스도 엉망이고 음식도 막 그런다. 그러면 도려 욕 먹죠 그런데 식당에 가면 기독교 냄새가 하나도 없어요. 근데 홀에서 일하는 사람들 기쁨이 있고 뭔가 음식도 그렇고 어이 집은 왜 이렇게 하지? 뭐 논밭 팔아 가지고 장사하나? 왜 이렇게 잘하지? 아 오너가 크리스천이라 한빛교회 다닌데, 아 한빛교회 다니시는 분들은 식당을 이렇게 운영하는구나. 그걸 비즈니스 애즈 미션이라고 이야기하는 거에요. 그런데 거기에 베트남 사람들이 아니면 뭐 어 우즈베키스탄에서 오신 분들이 종업원으로 일해요. 그래서 그 사람들이 와 우리 사장님은 왜 이렇게 장사를 하지? 크리스천은 이런 거에요. 그래서 베트남 사람이, 중국 사람이. 우주벡 사람들이, 몽골 사람이 거기서 예수를 믿게 된다. 그걸 비즈니즈 애즈 미션이라고 이야기하는 거에요. 그런 크리스천 기업이 돼야 된다는 거에요.

 

그런 크리스천의 노동이 돼야 되는 거에요. 그래서 낮은 곳을 향하여 하나님 나라의 선한 영향력을 들어내는 이런 선교적 교회 이런 삶을 살아가는 미션널 라이프. 그래서 이제는 미전도 종족은 비행기 타고 차 타고 가면 돼요. 어떻게 미전도 영역 어떤 직업군의 게임 산업 영업에 행위 예술의 영 영역에 기독교인이 적다면 기독교인들 가운데 행위 예술 하시는 분 게임 산업에 일하시는 분들이 그 게임 산업 그래서 유럽이 됐든 중앙아시아가 됐든 오세아니가 됐든 아프리카가 됐든 미국에 됐든 동남아시아가 됐든 이 지구 전체의이 직업군 속에 내가 이 직업 속에 부르실마다 어떻게 이 직업군에서 선교사로 살아갈 것이냐? 그런데 특별히 어떤 영역, 미전도 영역이 있는 거에요. 거기에 내가 직업을 갖고 있다면 하나님이 나를이 직업의 선교사로 보는 거에요. 그냥 뭐 캄보디아를 가고 미얀마를 가서 그냥 풀타임 선교사로 있지만 내 창조문화 명령과 선교 명령이 내 일터에서 통합되어 나타나는 삶을 살아가는 증인의 삶인 것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지금도 왕권으로 만유를 다스리시고 그가 다스리는 모든 것에 있는 영혼들은 찬양합니다. 그리고 반드시 예수님은 재림의 주님으로 오실 것입니다. 그리고 목요일부터 지금까지 했던 이론들 너무 빨리 했고 내용이 많다면 내가 선 거룩한 땅이라고 생명의 말씀사에서 나온 책입니다. 저기 MBC 9시 뉴스 앵커였던 엄기영씨와 이름 같은 사람인 제가 쓴 건데요. 그 책를 보시면 됩니다.

 

 

같이 기도하는 마음으로 같이 읽겠습니다.

1. 세종한빛교회가 주의 이름으로 예배드릴 때마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이 선포되며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이 드러나며 우리가 주의 백성 자녀인 것을 기뻐하는 예배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2. 말씀의 양육과 훈련을 통해 영혼들이 거듭나며 치유와 회복의 역사가 있는 교회 다음 세대가 세워지며 교회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3. 세종한빛교회가 세계 선교 열방을 섬기는 교회 되게 하시며 성도들의 일터의 현장에서 복음의 선한 영향력을 드러내는 내가 선 곳 거룩한 땅 사업장 일터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그런 세종한빛교회 그런 성도들 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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