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NCZEWCHzPqw?feature=shared

 

 

 

[설교타이핑]창세기창세기 3:9 | 네가 어디 있느냐? 김완규 담임목사님(세종한빛교회) | 주일예배 | [2023.06.11]

 

[창세기 3:9] 
9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큐인은 질문을 많이 합니다. 그래서 질문을 많이 하는 것을 통해서, 질문을 통해서 사실 저희들이 나를 바라보고 사람들을 보면서 생각들이 좀 열리는 것들이 많죠. 챗봇이 등장하는 순간부터 저희는 이제 질문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끌려갈 수밖에 없는 삶을 살 수밖에 없어요. 이제 교사들도 이번에 기사가 이렇게 나왔더라고요. 내가 교사인지 스마트 기계 AS 기사인지 잘 모르겠다. 이제는 뭘 가르쳐 줘야되고, 어떻게 풀어가야 될지에 대해서 정말 고민을 해야 되고, 뭐 한 달 뒤에 한 달 뒤에 어떤 것들이 나올지를 예상을 하지 못하니까, 질문을 던진다라는 게 뭔지를 질문하지 않는 사람들은 이제 어떻게 해볼 길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저희 다음 세대에서 계속 질문 던집니다. 심지어는 질문을 너무 많이 던져서 힘들어하는 친구들도 처음에 있었어요. 지금은 굉장히 익숙해져 가고 있는 모습이 참 감사한데, 예전에는 이렇게 질문하는 교육을 한다는 것이 그러면 좋지요, 그리고 이제 점점 했었는데요. 지금은 그렇게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때가 됐어요. 그렇게 하면 좋긴 하겠네요가 아니고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아이들이 살아남을 수가 없는 거죠. 저희가 이제 그런 큐인 교육으로 이제 우리 아이들을 키우고 또 교사들 역시 그렇게 피드백을 받고 나가려고 하는 거죠. 질문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질문하시는 거 너무 귀하죠. 오늘 본문도 그렇죠.

 

예수님이 저희들에게 질문하시죠. 요한의 아들 시모나 내가 나를 사랑하느냐? 내가 너를 사랑하는데 내가 십자가에서 죽을 만큼 사랑해? 그거 알아? 근데 너 잘 모르지? 그 사람이 뭔지 잘 모르지? 내가 그건 너한테 이제 앞부터 알려줄 게라는 말이 이 질문 안에 들어가 있는 것 같아요. 예수님이 또 우리들에게 질문하시죠.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나는 너를 알아. 창세 전에 내가 너를 택했고 너의 이름을 불렀어. 지구 있기 전에 나는 너를 봤어, 지금 네가 사는 걸 알고 네가 앞으로 갈 걸 나는 알아. 너의 앞길을 내가 알라. 계획했어. 너의 모든 걸 세팅하고 있는 나를 너는 어떻게 받아드려? 너는 나를 아니?라고 이제 질문하시는 거예요. 너는 날 잘 모르지? 그래서 성령께서 나를 통해 나를 너에게 알려 주실 수 있도록 내가 성령님께 의탁하고, 너에게 다가갈 거야라는 말이 이 질문 안에 들어가 있는 거죠.

 

아담아 내가 어디 있느냐? 여러분 어디 계세요? 여러분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김 집사님은 어디 있어라고 물으시면 뭐라고 얘기하실 거예요? 지금 다정북로 227. 주님이 그게 궁금해서 질문하신 건 아니잖아요? 지금 너의 영적 상태는 어때? 아담아, 왜 나를 네가 등을 돌렸어? 왜 숨어? 왜 내 발자국 소리를 듣고 막 사스러치게 놀라서 도망가는 너의 상태는 지금 왜 이렇게 된 건지, 너 자신이 보여? 생명인 나, 모든 걸 공급한 나를 거부하면, 어떻게 살려고 그래? 왜 네가 나를 거부하는 상태까지 되는 거야? 너의 상태가 느껴져?라고 물으시는 거 아니겠어요.

 

두 번째라면 이제 그런 자리에서 내가 너를 그 다음, 그 다음으로 인도해 나갈 거니까. 나를 따라올 수 있겠지라고, 또 우리들에게 초청하시는 것이 이 질문 안에 사실은 들어가 있는 거죠. 너는 지금 어떤 상태니? 그래서 1번 하나님이 우리에게 질문하시는 거예요. 같이 한번 볼까요.

 

 

1. 나의 영적 상태를 알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 아담의 영적 상태가 어떤 상태냐면, 사단의 공격을 받은 상태입니다 여러분 사단은요. 디아볼로스라고 하죠. 마귀를. 디아하고, 볼로스라는 단어가 합쳐진 거예요. 어 퍼트 떨어뜨려 놔서 지나가 버렸다라는 뜻을 갖고 있어요.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갈라놓는 자,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갈라놓는 자를 마귀라고 부르는데, 그래서 이 마귀는 자기의 속성대로 하나님과 하와를 갈라놓는 지금 일을 하게 된 거죠. 여러분 하나님이 진짜 생명을 죽이 원하시는 그 소원을 가지고 우리에게 다가와 주셨는데 사단의 특징 중에 하나예요. 같이 한번 읽어 볼게요.

 

[요8:44]

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의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에 아비가 되었음이라.

 

거짓말을 창조하는 존재라는 거죠. 그래서 야, 하나님이 정말 먹지 말라고 그랬어? 야, 먹어도 돼, 절대로 안 죽어. 거짓말하기 시작하는 겁니다. 여러분 마귀가요. 하와에게 찾아왔을 때 창세기 2장에 하나님이 창조의 역사 속에 계속 등장하는 단어가 뭐냐면,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단어예요. 여호와 하나님이, 여호와 하나님이, 여호와 하나님이, 여러분 여호와라고 하는 단어가 등장할 때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가 언약 관계 속에 있을 때 그 등장하는 언어거든요. 근데 뱀이요. 하와에게 말할 때 뭐라고 하냐면 여호와를 딱 빼버려요. 그리고 하나님이라고 하는 어떤 신, 어떤 존재라고 툭 쳐버려요. 그래서 하와가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는 언약의 관계, 나를 나대게 하신 것은 하나님과의 언약 때문에 내가 여기 있는 존재라는 걸 잊어버리게 만들어 버리는 거죠. 그리고 어떤 신이 너한테 뭐라고 그랬어? 잘 들어 너도 그 어떤 신이 될 수 있어. 그러면서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처럼 된다고 거짓말을 하기 시작하는데, 하와가 거기 넘어가 버려요. 결국 하와는요. 생명이 지난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는 순간부터 자기가 먼지인 걸 알게 됐다고 우리 저번 시간을 배웠죠. 그 두려움 속에 들어가죠. 그리고 첫 번째 또 느껴지는 두 번째 느껴지는 그 아픔의 관계가 뭐냐면, 너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에 살이라고 했던 부부관계가요. 탁 돌리는 관계가 되어 버리기 말아요.

 

어제도 전 결혼식 갔다 왔는데, 아 결혼식장 너무 멋지더라고요. 멋지고 마지막 그 웨딩마치 하고 나서 전 돌아올 줄 알았더니 안 돌아오고 사진을 찍더라고요. 자 뽀뽀하세요. 그리고 뽀뽀하고, 몇 컷 찍더라고요. 그냥 너 아니면 나 못살어로 바로 바뀌는 거죠. 너 때문에 내가 아주 힘들고 너 때문에 우리 집이 힘들고 너희 집안 때문에 내가 힘들고 내 인생이 억울하고, 바로 그렇게 되는 거예요. 청년들이 빨리 결혼의 환상을 깨는 은혜가 임하기를 축복하고, 진짜 별거 없다라는 걸 빨리 알 때, 나는 예수 붙잡고 살아야겠다 독신이 아니고,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가 떠나가는 순간부터 이제 문화라는 것으로 치장하기 시작하지 않습니까? 떨면서 무화과나무이 만든다고 살겠어요? 근데 그거 만들어 보는 거 아니겠어요? 만들어서 그러면 살아갈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만들지 않습니까? 근데 여러분 진짜 심각한 건 뭐냐면, 정녕 죽으리라라고 하는 하나님 말씀이요. 에덴동산 안에 인간들의 삶 속으로 들어와 버렸다는 거예요. 선과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으면 정녕 죽으리라. 그래서 죽음이 이제부터 시작됐다는 걸 얘기하는 거죠. 이제 아담과 하와는 죽음이라는 게 뭔지 몰랐던 이 사람들이요. 죽음이라는 걸 이제 받아들이면서 사는 삶을 시작하는 겁니다.

 

제가 강다니엘 선생님이었던 최병호 선생님에 대한 간증을 예전에 한번 나눈 적이 있어요. 이 최병호가 학생일 때 최병호 선생님이 학생일 때, 불교 집안에서 자랐거든요. 불교 학생회장까지 한 친구인데 고등학교를 부산에 있는 브니엘고등학교로 배정을 받습니다. 그래서 불심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손에 이따만한 염주들을 끼고 이제 학교에 등교하는 거죠. 성경을 가르치는 시간이 있는데, 그 성경 가르치는 교사를 초코파이 아줌마라고 부르면서 막 이렇게 놀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참 재밌게도 말씀을 들었는데 머리로 듣지 않고 거부했겠죠. 머리론. 이성에서는 그런데 그 말이이 최병호 학생 심령에 살짝 자리를 잡은 것 같아요. 요한계시록 21장에 둘째 사망에 대한 이야기를 전도사님 성경 가르치는 여자 전도사님이 말씀해 주셨는데, 둘째 사망은 두려워하는 자들, 믿지 않는 자들, 점술가들 그리고 흉악범들, 음행자들, 우상숭배자들, 이들이 가는 곳이 둘째 사망, 이렇게 이제 말씀해 주시니까 뭐라고 했냐면, 여러분 목숨이 있는데 그냥 목숨이 떠나는 죽음 말고, 내 영혼이 영원히 저주받는 둘째 사망 속에 들어가지 않기 위해서 생명이신 예수님을 믿어야 돼요라는 말을 던지고 갔단 말이에요.

 

그런데 이 말이 최병호 학생 가슴에 심령 가운데 이렇게 딱 스쳐 지나갑니다. 불교 학생회장으로 범어사에서 종교 이렇게 활동을 좀 했던 때에 주지스님께 묻는 장면이 있었대요. 그 tv로 이렇게 찍었었는데 불교방송에서 자기가 물었대요. 대표로 죽음이 뭡니까? 주지스님이 유에서 무에서 되는 거지. 근데 그 얘기를 듣는 순간이 친구 마음속에 이거 아니 생각이 올라갔대요. 말씀에 근거하니까 우상숭배까지 우리 하고 있는데, 우리는 진짜 지옥 간 인생 맞겠는데, 어 말씀에 근거해서 못 살겠는데가 그냥 몇 마디 대화를 했는데 자기에게 찾아오더라는 거예요. 근데 그 다음이 놀라워요 성령께서 이 깨달음까지 주고 있는 것 뿐만이 아니라 지옥 중에 지옥 갈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부터실제 지옥문 앞에 있는 자신을 보게 만듭니다. 막 그런 거 있죠 저기 가면 안 돼서 안 가려고 막 밤 발버둥을 치는데 점점점 막 들어가는 자신, 근데 이걸 벗어날 길이 없어서 막 어떻게 발버둥을 치고, 그러나 계속 끌려가고 근데 이 상태가 눈을 떠도 보이고 눈을 감아도 보이는데이 무서움이 온몸에 오기 시작합니다. 덜덜 떨고 있다가 미칠 것 같아서 초코파이 아줌마한테 가야겠다. 이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날은 아줌마라고 안불렀대요. 전도사님이라고 불렀대요. 전도사님 나 좀 살려주세요. 나는 불교 집안에 태어나서 이렇게 살고 살아왔는데 선생님 통해서 죽음의 대한 것을 들어보니 정말 믿겨져요. 제가 지옥문 앞에 있는게 느껴져요. 눈을 감아도 보이고 떠도 보여요. 너무 무서워요. 저 같이 나쁜 놈도 천국은 둘째치고 내 눈앞에 보이는 지옥 안 갈 수 없나요. 제 지옥 좀만 좀 안 가게 해주시면 제가 다 할게요. 그러자 이제 전도사님 예를 붙잡고 영접 기도를 하는 거예요. 예수님 나의 생명 되어 주십시오. 예수님 내 안에 오셔서 영원한 생명 되어 주십시오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기도하는 순간에이 친구의 최병호 학생의 마음속에 주의 음성이 들리는데 귀에 들리는게 아니라 온 몸으로 주의 음성이 들리기 시작하는데, 병호야 네가 하나님을 몰랐으니까 진짜 가짜 인생 살았지? 이제 나를 알았기에 진짜 생명 있는 인생을 살아보자, 그 음성이 막 온 육체 가운데 임하기 시작하더라는 거예요.

 

여러분 내가 어디서 너 누구야라고 얘기할 때 나 진짜 어디 있는 걸까요? 아담은 자기가 어떤 상태인지를 정확하게 고백을 해야 돼요. 정말 하나님의 영이 떠나고, 하나님의 보호가 떠나고, 하나님의 생명이 떠나서 정녕 죽으리라의 상태로 내가 들어가고 있는데, 이걸 내가 거부할 수가, 막 몸부림치고 어떻게 해보려고 막 온몸으로 방어를 다 해봐도 점점 내가 죽어가는 게 느껴지는데, 하나님 어떻게 하면 좋죠?라고 지금 자기 영적 상태를 이야기를 했어야 되는 거죠. 내비게이션 23장에 보면 속죄일을 지키라고 우리 토요일 날 큐티 말씀해 주신 거거든요. 모든 노동을 멈추고 속죄일을 깊이 잃고 지키라고 말씀해 주시는 거예요. 왜요? 속죄하지 않으면 죄를 용서받지 않으면 살 길이 없는 인생인 것을 너희가 인정하라고 하시는 주님의 부르심 아니겠어요. 이 죽음에서 내가 건진 받은 것이 너의 삶이야라는 걸, 어떤 삶과도 비교하지 말고 다 멈추고라도 이 속죄를 지키라고 말씀하세요. 여러분 이스라엘의 유월절 아십니까? 유월절 날 죽음의 천사가 애굽 저녁에 와서 각 가정마다 사람들의 목숨을 가져가죠. 그때 이스라엘 사람들이 발랐던게 뭐예요? 어린양의 피를 발라요. 문방과 인설주의 어린양의 피를 바르자. 죽음의 천사가 패스 오버했다. 넘을 월 넘을 유해요. 넘어갔다라는 거예요. 그래서 지나갔어요. 그럼 만약 이 피를 바르지 않았다면 이스라엘 가정들은 어떻게 됐을까요? 똑같이 죽음을 맞이하는 거예요 죽을 인생인데 주님이 살려주신 사람들이 너라는 거예요. 여러분 유월절에 어떤 절기인 줄 아세요? 이 날을 그해의 첫 달로 삼아라 1월 1일로 그날부터 시작하라고 되어 있어요. 너의 시작이 뭐냐? 죽음에서 건짐 받아 살았어 이게 너의 삶의 시작이라고 말씀하세요.

 

여러분 성전에 들어가자 성전에서 첫 번째 스텝이 뭐예요? 번제단이예요. 번제단이 뭐 하는 곳이에요? 짐승의 피를 흘려서 도저히 하나님 앞에 태워서 향을 올려 드리는 그곳이 번제단이에요. 태울 번 자예요 내가 거기서 죽어야 되는데 짐승이 되신 죽어서 내가 하나님 앞에 받쳐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첫 번째 스텝이란 말이에요. 여러분 나의 인생에 첫 번째 하나님에 대한 나의 첫., 나내 나를 소개할 때 뭐라고 소개를 해야 될 것 같아요? 나는 죽을 인생이었는데 주님이 살려줘서 지금 살고 있습니다가 나라고 고백하고 시작해야 된다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내가 뭘 자랑할까요? 여러분 저는 오늘 위임을 받아요. 다들 축하하는데 사실 제가 개척한 교회기 때문에 위임받는 것에 대해서 막 그렇게 어떤 큰 무게감 같은 게 많이 느껴지진 않아요. 그러나 다들 축하해 주시고 계세요. 제가 위임받는 목사님을 자랑할 수 있을까요? 우리 끼리는 축하한다는 말을 할 수 있지만, 하나님 앞에서 나에게 뭔가 더를 주신 직분이 있다면 그게 자랑할 일일까요? 여러분 많이 맡긴 자에게는 많이 찾겠다고 그랬어요. 내게 직분이 맡겨지면 주님은 분명히 찾으세요. 감당 못하면 하나님께 혼나는 거예요. 내게 주어진 직분이 많아질수록 자랑할 건 없어요. 사명감당하라고 주신 거니까. 내가 장로임을 자랑할까요? 내가 목사임을 자랑할까요? 너는 죽을 인생이었는데 너 살아 있어 내가 살렸어. 그리고 너 없애지 않고 내일을 너에게 맡겼어. 그러니 내일을 너와 함께 나는 할 거야. 나에게 하나님의 일을 맡겨 주신 것이 자랑인 거 아니겠어요? 여러분 내가 자랑할 것은 나를 살려주신 예수님이 나의 자랑 되시기를 축복하는 거예요. 진짜 사랑할게 뭐가 있을까요 예수를 놓쳐버렸기 때문에 우리는 직분 자랑하고 봉사한 거 자랑하지만 봉사할 힘을 주신 분이 누구시고, 봉사할 수 있는 시간을 주신 분이 누구시며, 봉사할 수는 영적 부위를 주신 분이 누구신 걸 안다면, 한번 생각해 보세요. 주님이 만물을 다스리는 걸 못 하셔서 우리에게 맡겼을까요? 주님의 모든 걸 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주님의 영역을 맡겨 주신 것 아니겠어요? 주님이 혼자 다 하지 않으시고 내가 너랑 같이 할게 너는 내 친구야라고 하시면서. 나를 그렇게 대우해 주시는 하나님, 여러분 내가 누군가요? 나 오늘 죽고 버림받을 인생, 죽이지 않으시고 살려주셔서 지금 살아있고 살아있는 것 자체가 주의 은혜이고, 이런 나에게 하나님의 일을 맡겨 주신 것도 은혜이고, 여러분 주님 자랑하는 은혜가 주님 드러내는 은혜가 일을 하고 계신다면 그 사역을 통해 맡기를 원하시는 주님이 소원이, 내 속에 자랑 되어지고 주님들을 하시기를 축복하는 거죠. 내가 죽을 인생이었다는 게 고백이 되어지세요? 여기서 시작하지 않으면 교회는 사람 냄새나서 못 삽니다. 주님 아니면 누굴 드러내겠어요?

 

두 번째예요. 아담아, 어디 있어라고 부르실 때, 나는 너가 내가 열어 놓은 길을 오기를 원해, 네가 그 길에 가기를 해라고 부르시는 하나님의 소원이 담겨져 있는 거죠. 같이 읽죠.

 

 

2. 하나님의 계획 속으로 들어오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입니다.

저는 여기서 우리 한 가지를 좀 찾고 가고 싶은데, 그건 히브리 언어에 be동사에 대한 부분이에요. 여러분 영어에도 be 동사가 있어요? IS WAS WERE로 쓰이죠. 히브리에도 be동사라는 게 있어요. 근데 참 재밌게도 히브리어 be 동사는 하야동사라고 부르는데 이 하야 동사를 사전을 찾아보면 존재, “생성, 작용, 유지, 강화, 계속”이라고 하는 뜻으로 쭉 나와요. 예를 들어서 빛이 있으라. 그러면 빛이 없었어. 빛이 없는데 빛이 있어야 되는 거고, 그 빛이 내 예를 들어 태양아 있어라. 그러면 타향이 없다가 있어라라고 하는 그 말씀에 의지해서 그냥 존재, 생성, 유지, 강화, 지속, 계속이 되는 거예요, 지구가 있어, 그리고 너는 땅, 너는 바다, 경계를 지켜, 동식물들은 거기 있어, 날짐승들은 거기, 물고기들은 거기 있어라고 선포해 버리시는 순간, 그들이 없다가 생겨나서 바로 맡겨진 그 자리에서 존재, 유지, 생성, 강화, 지속이 되면서 그대로 흘러가게 만드는 것이 하야 동사의 특징입니다. Let there be light! 빛이 있으라! There was light! 빛이 생겨버리는 거죠. 존재하고 있는 거예요. 근데 그걸 굳이 바꾸자면 Let there haya light! 빛이 있으라는 거예요. 그러면 There haya light 빛이 생성, 유지, 강화, 지속에서 쭉 있게 된다는 걸 말씀해 주시는 거예요.

 

여러분 주님이 뭐 예를 들어서 우리 학생이었는데 졸업 했어. 그러면 졸업해버리는 순간 학생이 아닌데, 하나님은 그렇게 표현 안하세요. 학생 그러면 계속 학생이어야 되는 거예요. 하나님이 사용하신 말씀이 너 복이 있으라. 그러면 복이 없다가 복이 생각이 생겨야 되고 생성 유지 강화 지속 그것으로 보기 쭉 직진해 나가는 것, 멈추라 할 때까지 그 복이 계속하는 것이 하야동사의 특징입니다. 문제는 정녕 죽으리라라고 하는 말에도 하야 동사가 들어 있습니다. 이게 무슨 말인지 아세요? 에덴동산에 뭐가 없었어야 돼요. 죽음이 없었어야 돼요. 그런데 정녕 죽으리라가 시작이 되어 버렸어요. 그럼 죽음이 없다가 이제 뭐가 시작될까요? 죽음이 존재, 생성, 강화, 유지, 지속, 계속해서 나가는 것을 이야기하는 거예요. 언제까지요? 하나님이 멈추라 할 때까지 죽음은 계속된다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정녕 죽으리라라고 하는 말씀이 생겨나면서요. 아담과 하와는 막 사이가 갈라지기 시작하고요. 창세기 4장쯤 가잖아요. 가인이요. 아벨이 예배 잘 드렸다고 죽여버려요. 구약의 모든 사람들의 가는 길 한번 볼까요? 이거 볼게요. 죽음이 하야가 이루어지니까, 죽음이 계속 진행되는 거예요. 같이 한번 볼까요?

 

아담은 930세 뭐 했어요? 죽었어요.

무드셀라는 969세 뭐 했어요? 죽었어요.

노아는 950세에 세상을 떠나요.

 

우리를 오래 살아서 좋겠다는 얘기하지만, 구약이 얘기하고 싶은 건 뭐냐면, 아무리 오래 살아도 죽는다라는 거예요. 죽음이 이제부터 왕 노릇 하기 시작했다라는 걸 얘기하는 거죠. 여러분 누구까지 죽는 줄 아세요? 우리의 세상 죄를 짊어지신 누구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오시는 순간 예수님까지 죽여버리지 않습니까. 놀라운 건 예수님이 그 죽음의 해를 딱 정면으로 맞아 버리시면서 죽고 죄 값을 지으시고 나서,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냐면, 나를 믿는 자는 정령 살리라. 이제 하나님이 뱉어 버리신 그 말씀 이제부터 죽음은 내 앞에서 끝이 날 것이고 나를 분기점으로 해서, 나를 만나는 모든 자들은 뭐 할 것이다? 생명이 시작이 되는데 생명이 생성, 존재, 강화, 유지, 지속되는 것을 나를 통해서 너희가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얘기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첫 번째 모델이 되셔서 죽음 가운데서 어떻게 되는지를 자기를 통해 드러내시는데 같이 읽죠,

 

[마28:6]

6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또 읽어 볼까요.

 

[막16:6]

6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또 바울이야 말한 얘기를 들어볼까요.

 

[고전15:3-4]

3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4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사

 

여러분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흘립니다. 레위기의 핵심 가르침은 피 속엔 생명이 있다는 거 아니겠어요. 그래서 죄 값을 치루려면 생명을 내놔라. 그래서 짐승들의 피를 흘려서 하나님께 나가는 거거든요. 우리의 죄 값을 치루기 위해서 예수님이 뭐를 흘리시는 거예요? 피를 흘리세요. 그러면 예수의 피를 흘리는 순간 어떤 일이 벌어져요? 예수의 생명이에요. 예수님 뭐라고 하시죠? 유월절 식사하시면서, 내 피는, 이 피는 너희를 위한 바 내 언약을 이루는 나의 피, 죄 사함을 이루는 나의 피, 언약의 피다. 이걸 먹고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시면서 그분의 피, 그분의 생명을 우리에게 주시잖아요. 여러분 예수의 피 속엔 예수의 생명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의 생명 속엔 예수의 영원한 생명 능력이 들어 있는 거예요. 예수를 피를 믿는 자, 우리가 고백해보죠. 예수의 피를 의지합니다. 예수의 피를 의지합니다. 여러분 내가 예수의 피를 의지한다는이 고백 속에 어떤게 들어 있는 거예요? 영원한 생명이 내 속에 임하기 시작했고, 내 죄가 용서받았다라고 하는 신앙의 고백 아니겠습니까. 이제부터 내가 죽음이 끝나고 정녕 살리라로 우리가 바뀌어지기 시작하는 겁니다. 예수님이 죽음을 끝내고 영원히 영생하는 것 같이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롬8:1-2]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누가 정죄할 수 있는가? 여러분 예수의 피 예수의 생명이 들어오는 순간부터, 죄를 이길 힘을 우리에게 주시겠다고, 말씀해 주시는 거 아니겠어요. 그리고 죽음을 이길 힘을,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생명의 하야가 이제부터 존재 생성 유지 강화돼서 너희 속에서 진행된다는 걸 너희가 잊지 말라고 말씀해 주시는 거예요. 여러분 내 안에 생명의 사야가 선포되었음을 믿습니다. 내가 예수를 믿는다라는 건 내 안에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생명력이 나를 이끌고 끊임없이 간다는 거 아니겠어요. 여러분이 생명이 여러분 속에 폭발하기를 예수님을 축복합니다. 왜 신앙생활의 목적을 거룩에 두는가? 이 귀하고 귀한, 예수의 생명이 있으면 내가 살지만 나와 부닥치는 자들도 살아냅니다. 내가 입을 열어 예수를 전하는 순간, 생명이 전달되는 순간 그 사람 영혼까지 살아납니다. 그래서 전도하는 거예요. 이 거룩한 생명을 증거하는 일을 경험하게 되면 내 안에 예수의 생명이 전달돼서 살아난 걸 보게 되면, 내 육체의 버려지고 없어지고 사라질 내 육체, 내 시간, 내 물질, 내 재능이 생명을 살리는데 쓰임 받을, 그 영광을 누리기 위해서 거룩을 유지하며 생명의 역사 속에 통로가 되고 싶은 거예요. 어떤 분이 이렇게 얘기하더라고요. 마음껏 흠탕, 진탕, 놀려고 먹고 살다가 죽기 바로 하루 전에 세례 받고 그러고 가는게 제일 멋지지 않겠냐, 여러분 내 속에 있는 예수가 영혼들을 살려내고 살려내는 것을 경험해 본 사람은요. 내 육체와 내 시간을 그렇게 주님께 드려서 쓰임 받고 싶은 소망으로 가득한 거 아니겠어요? 내 몸을 그런데다가 이렇게 쓰라고 맡겨요. 내 시간과 뇌물죄는 그런 곳에 쓰라고 맡기냐구요. 생명 살리는게 뭔지 안다. 우리 한번 같이 읽어 볼까요. 여러분 억지로 착하게 사는 거 아니에요. 오늘 여기서 신령하게 사는 것처럼 아니요. 예수의 생명이 내 안에 있으면 나도 살고 너도 살고 살아내고 싶은 소원이 넘쳐나서 혼자 있으면서도 찬양하고 혼자 있으면서도 야동이 끊어지는 은혜가 있기를 남자분들 아멘. 우리가 같이 읽어볼까요.

 

[고후5:4/현대인]

4우리가 육체의 집에 있는 동안 집을 지은 것처럼 탄식하신 것은 이 몸을 벗고 싶어서가 아니라 하늘의 몸을 입어서 죽을 몸이 영원히 살기 위한 것입니다.

 

내가 지금 원하는 것은 하늘의 신령한 것을 덧입고 싶은 건데, 여러분 우리는 이 영원한 생명을 내가 갖고 있다라는 경험을 우리가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누구에게 영생이 있을까요? 불교에도 구원이 있다고 얘기하고, 유교에도 구원이 있다고 얘기하고, 마음에 또 구원이 있다고 얘기하지만 우리의 구원은 영원한 생명의 하야를, 생명의 하야를 우리 속에서 말씀하고 계시는 예수님께 있으면 믿습니다. 우리 같이 한번 읽어 볼까요,

 

[요3:15]

15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할렐루야 예수를 받아들이는 순간부터 영원한 생명이 내 속에서 그대로 흘러가고 있다는 걸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싶으신 거죠. 여러분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면 내가 영원히 산다는 것을 받아들여지고 믿어진다면, 우리 어떤 삶을 살게 될까요? 최병호 학생은 가족 몰래 교회를 다니다가 걸립니다. 근데 하나님을 향한 그 뜨거움이 있으니까, 사촌 형들이 다 불심이 강해서 그런지 저녁 7시부터 10시까지 때렸대요. 3시간씩 맞는데 실신할 때까지 때렸다고 그래요. 뭐 이게 정상적인 생각이 아니라 또 악한 영의 역사한 거죠. 그런데 예수를 만나고 나니까 최병호 학생이 이게 이걸 바꾸고 싶지 않은 거예요. 영원한 생명이 있는데 내가 뭘 바꾸는가? 그리고 학교에 돌아왔는데요. 학교에 와서 이런 대학 노트를 사 가지고 매직으로 크게 씁니다. 교회 다니지만 나에게 교회 가자고 한탄 한마디도 하지 않은 나쁜 놈들, 그래서 이런 자기 친구들 이름을 적는 거죠. 1반의 누구 쭉 졌고 2반의 누구 그래서 도장 깨기처럼 쉬는 시간 되면 그 반에 들어가서 너 누구누구 나와 왜 너 내가 누구야? 너 불교 학생회장. 나 불자지 나 죽으면 어디가? 지옥. 너 예수 믿어? 어. 너 왜 나보고 예수 믿자고 안 했어? 너 좀 맞자. 그리고 때리고, 2교시 때는 2반, 3교시 때는 쉬는 시간마다 전도사님이 애가 타서 불렀어요. 그게 아니고 병호야 너나 잘해. 네가 예수 만났으면, 이제 네 인생을 한 예수님께 어떻게 드릴지 좀 생각해 봐. 그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알아서 할 거고 이제 네가 어떤 삶을 살지 좀 생각해 봐. 저 복음 전하며 살게요. 어떻게? 내가 가진 직업 가진 이 자리에서 그 일을 할게요. 그래서 지금 브니엘 고등학교 수학 선생님으로 복음을 전하고 있다고 하죠. 여러분 우리는 세상 떠날 때 어떨까요? 우리 같이 한번 읽어 볼까요.

 

[요6:54]

54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마지막 날 내가 살리겠다는 거예요. 우리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아날 거예요. 영원한 생명의 하야이신 예수를 내가 품었기에 이 길을 간다는 거 아니겠어요. 같이 읽죠.

 

[계20:6]

6 이 첫째 부활의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 동안 그리스와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

 

둘째 사망이 없다는 거예요 그 둘째 사망 속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두려워 떨었는데, 너희들에겐 그게 없다고 말씀하시는 거 아니겠습니까. 먹으면 죽으리라 먹으면 죽음의 하야가 너희 속에 역사하리라. 같이 한번 읽죠.

 

[롬6:23]

23 죄의 삯은 그래서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하나님의 하야가 시작되니까 여러분 우리 속에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누리시기를 바라고, 정말 머리도 아니고, 예수 믿으면 천국가, 그건 유년부 여름 성경학교 때 듣는 얘기가 아니라, 여러분 내 영혼에서 날마다 이게 생명이 돼서 뛰기를 바라는 거예요. 이것 때문에 내가 산다. 므두셀라는 969세까지 살았어도 여러분 우리는 영원히 사는 것을 믿습니다. 내가 죽으면 하나님 앞에서는 것이 내가 서 있는 자리인 것을 기억하는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이 생명의 하야가 얼마나 강력한지 예수의 생명을 가진 사도들이요. 그림자만 덮여도 그들의 손수건만 던져줘도 귀신이 떠나고 질병이 치유 받기 시작합니다. 저는 여러분 안에 있는 이 생명의 하야가 얼마나 강력한지 우리가 선포하고 나갈 때마다 여러분의 삶이 변화가 되어지고, 여러분의 집안 속에 흘렀던 저주들이 떠나가고, 우리의 영혼 속에 악한 영들이 떠나가는 능력들을 경험하시기를 축복하는 거예요. 거울을 보고 좀 쫓아보세요. 나한테. 내가 왜 이렇게 화가 나나. 내가 왜 이렇게 음란한가? 내가 이렇게 왜 사람들 말하기를 좋아하나? 거울 보고 한번 쫓아 보시라고요. 남들 하지 말고. 제발. 내 눈 쳐다보고 쫓아보시라고요. 예수님의 생명력이 얼마나 강력한지. 왜 이렇게 부부싸움이 멈추질 않나. 왜 내 감정 다스리는 게 이렇게 힘든가? 왜 나는 똑같은 걸 반복하고, 반복하고, 반복하는가, 이상하리만큼, 무슨 그런 코스웍을 짜놓고 나를 집어 놓고 살게 만드는 것처럼, 삶의 어떤 코스를 벗어날 수 없어서 또 실망하고 또 좌절하고, 또 삐치고, 또 두려워하는 이건 어떻게 되는 건가. 좀 쫓아 보시라고요. 이 생명의 하야가 얼마나 강력한지 여러분의 입으로 우리의 삶으로 한번 경험해 보시라고요. 아멘이 나올 줄 알았어요. 너무 조용한데 마이크가 바뀌어서 적응이 안 돼서. 이 연사 외치고 외치고 있는데,

 

[질문]

- 죽음이 예수 안에서 완전히 멈춰졌음이 인정이 되세요? 아멘

- 여러분 당당히 하늘나라를 소망하는 인생임이 인정이 됐어요?

- 그렇다면 이 땅의 삶을 어떻게 살아갈까요?

 

 

하늘나라는 정해졌고, 죽음은 날 이길 수 없고, 난 너에게 왜 살지? 여러분 우리 하늘나라 앞에서 가야되고 하나님 앞에서야 돼요. 그래서 내가 지금 누구한테 잘 보여야 되는지 잘 생각하셔야 돼요. 레위기 토요일 날 우리 또 큐티엔 속죄일을 지키라고 하고 장막절을 지키라고 말씀하시는데, 장막절이 뭐냐면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장막을 짓고 광야 생활을 하면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를 받았던 걸 기념하는 절규예요. 지금도 유대인들은요 장막절이 되면 광야로 가서 텐트로 생활해요. 그게 안 되면 아파트 베란다에 텐트를 치고 거기서 자요. 아이들이 묻자. 아빠, 왜 여기서 자야돼? 우리 조상들이 장막을 치면서 광야 생활을 할 때 주님이 인도하셨거든. 우리도 인도해 주실 거야. 그거 잊지마.

 

여러분 장막을 치며 광야에서 있었던 사람들은요. 하나님의 약속의 땅을 갈 소망을 갖고 걸어간 거예요. 여러분 우리 인생의 내가 이곳이 다라고 생각하지 않는 은혜가 있기를 축복해요. 나는 누구 앞에 설 것이다. 하나님 앞에 설 것이다. 이게 우리 영혼 속에 고백되기를 바라는 거죠. 나는 그분 앞에 설려고 준비하며 산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주님 물으실 때, 주님 제가 지금 천국을 향해 가는데, 나그네와 거류민 같이 삽니다. 제가 지금 그 길을 가고 있습니다. 나는 주님의 용서가 아니면 죽을 인생인데 나를 살려주셔서 살고 있습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생명이신 예수님의 길 놓치지 않으려고 한발 한발 걷고 있습니다. 여러분 매일 같이 주님이 여러분들에게 큐티를 통해 찾아와 주시기를 바래요. 아담아 너 지금 어디 있니? 너가 지금 어디 있니? 주님이 물어보시고 이 질문을 하시는 주님의 마음이 느껴지세요? 괄호 열고 너 왜 거기가 앉아 있니? 그러시면 안 되잖아요. 너 지금 어디가 있니? 너 지금 어디가 있니? 우리에게 계속해서 말씀하실 거예요. 이 생명의 길 예수의 길 요동하지 않고, 나는 죽을 인생 맞습니다. 그런데 살려주셔서 살아갑니다. 그런 날을 버리지 않고 사명을 주셨습니까? 육신을 주셨습니까? 그러면 내가 지금이 길을 가면서 나에게 주어진 일을 감당하는 인생으로 살겠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고백되기를 축복해요. 우리 같이 찬양하면서 하나님 앞에 나가죠.

 

[찬양 : 예수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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